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보람 Feb 24. 2024

청첩장, 꼭 필요할까?!

청첩장 - 1탄 | 청첩장을 버리는 마음


| 청첩장 :  결혼 따위의 좋은 일에 남을 초청하는 글을 적은 것.



청첩장을 받으면 곤란해진다. 결혼식에 참석해야 해서가 아니라, 이 소중한 종이를 언젠가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고 그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선물 받은 꽃다발이 시들었을 때 일반 쓰레기통에 넣는 그 죄책감처럼.


어제 동료에게서 청첩장을 받았다. 표면이 도톨도톨한 연분홍 고급 봉투에 빳빳하고 하얀 내지가 고이 접혀 담겨있었다. 수많은 청첩장을 살펴보고, 샘플을 배송받아보고,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고심해서 골랐을 정성 어린 청첩장이다. 청첩장이 무척 예쁘다고 말했더니 그가 수줍게 웃으며 열심히 골랐다고 답했다.



거의 모든 청첩장의 콘텐츠는 이렇다. 




1. 인사말

주로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여정의 시작에 부디 자리하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의 멋진 문구가 등장한다.


2. 결혼 관계자와 당사자 이름

신랑의 아버지 - 신랑의 어머니 - 신랑 이름

신부의 아버지 - 신부의 어머니 - 신부 이름

위 순으로 쓰여있다. (예외는 본 적 없다.)


부모님 이름과 혼인 당사자 이름 사이에는 '장남', '차남', '장녀' 등으로 자식 내에서의 서열을 안내한다. 


이때 고비가 찾아온다. 내가 여성이고 위로 오빠가 있으면 나는 장녀인가 차녀인가? 내가 외동딸이면 장녀인가? 포털 검색창에 '외동딸인 경우 청첩장 장녀' 등으로 검색해 보면 숱한 사람들의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표기와 혼인 당사자들이 원하는 표기가 달라 갈등하는 글도 보았다. 신랑의 부모님은 신랑을 '장남'으로 표기하길 원하시고, 신부 부모님은 신부가 외동딸이라 '장녀'라고 할 수 없으니 장남, 장녀 등의 표기 대신 '아들', '딸'로 표기하길 원하신다는 글이었다. 

아.. 머리가 아프니 3번으로 넘어가야겠다.


3. 행사 날짜와 장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행사 날짜와 시간, 장소다. 


4. 오시는 길 안내

식장의 주소와 자가용, 버스, 지하철 등으로 오실 때의 방법이 각각 안내되어 있다. 나에겐 지도앱이 있으니 이 부분을 읽어본 적은 없다. 


모바일 청첩장의 경우 여기에 신부/신랑의 연락처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삽입되어 있다.




필요한 콘텐츠들이 정중하고 간결하게 쓰여있는, 목적이 명확한 글이다.



모바일 청첩장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청(모바일 청첩장) 없이 결혼하는 커플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종이 청첩장과 모청을 둘 다 받는다. 모청에 더 많은 정보들이, 더 편리하게 작성되어 있는데 왜 여전히 종이 청첩장을 제작해야 할까?


전자책이 나와도 종이책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건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독자들은 각자의 편의나 취향에 따라 전자책과 종이책을 선택하여 읽지만, 종이 청첩장과 모청은 늘 둘 다 전달하니까.


내 생각에 종이 청첩장은 어떤 '예의'나 '형식'인 것 같다. 행사에 소중한 이를 초대하는 사람의 예의를 표현하는 수단 또는 초대하는 주체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형식. (아니면 결혼의 여느 절차가 그렇듯 모두가 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없이 당연하게 제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종이 청첩장을 버릴 때마다 죄책감이 들고, 받을 때마다 '종이 청첩장이 왜 필요하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청첩장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는 '청첩장 - 2탄'에.




작가의 이전글 스드메 없이 제주에서 웨딩 스냅 촬영하기(촬영 당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