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인장 Jul 15. 2020

에필로그 - 돈에 대하여

저축이 각광받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어?

은행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면 드문드문 기억나는 장소다. 알뜰살뜰 돈을 잘 모으던 우리 엄마는 적금통장을 이율에 따라 여러 종류 가지고 있었고, 가끔은 나를 데리고 은행에 가곤 하셨다. 지금은 보기 힘든 복리이자 적금은 만기가 되면 다시 연장할 수 있었던 시절, 큰돈이 생기면 묶어 두고 생활하던 그 시절 엄마의 월급은 이맘때쯤 내 월급보다 많지 않았고, 나보다 20년 정도 더 사신 우리 엄마는 여전한 습관으로 농협에서 VIP 대우를 받는 입장이 되어 계신다. 

근데 어떻게 나 같은 자식이...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차곡차곡 돈을 모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부모님께 손 벌리기 바쁜 자식이다. 그런 자식이라 부모가 될 생각은 꿈에도 못 꾼다. 노동을 하지 않는가? 그것도 아니다. 나는 꽤나 어렸을 때부터 일을 했던 사람이다. 학창 시절 알바도 했거니와, 수능 끝난 시점부터 꾸준히 일을 했다. 요리사로 일을 했기 때문에 돈 쓸 시간이 없었고, 그런데도 돈이 없다. 항상 수입보다 많은 돈을 사용하고, 미래의 내가 갚는 충동적인 삶의 연속이다.

  그래서 정말 치열하게 고민을 했다. 나는 왜 돈을 모으지 못하는가? 내 급여가 적어서 라고 말하기에 너무 민망한 사실은, 한 순간을 제외하고 어머니께서 나보다 돈을 많이 번 적이 없다. 심지어 같은 일을 해도 남자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던 수제화 제작 장인이며, 30년째 그 일을 하신다. 



  심지어 그 와중에 시대가 변했다. 코로나로 인한 소비 패턴 변화부터, 낮은 성장률과 마이너스 금리,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던 세대와 그를 포기한 세대의 접점. 심지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의 등장은 저축보단 가성비와 가심비, 또 전보다 쉽게 지출을 만들 수 있는 인터넷 결제와 구매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상품과 광고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바쁜 세대가 잘게 쪼게고 쪼갠 급여를 들고 소소하게 즐기는 행복, 또는 ㅆㅂ 비용으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방식으로 소비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소비가 미래를 망치는 일만은 아닌 거다.(물론 미래를 망칠만한 지출을 할 수 있는 건 능력이다.)

  우리는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소비를 행한다. 능력도 없으면서 이런 쓸모없는 물건은 왜 구매하고, 구매한 물건에 대한 애정은 왜 그렇게 금방 식어 버리며, 그렇지 않은 물건은 왜 그렇게 비싸고, 당신이 사람이라면 단백질이 필요하다(모르던 사실도 아니다)는 말에 혹해서(내가 사람이란 사실을 눈치챈 시점부터) 몸을 챙기는데 돈을 쓰게 되는지(그전까지 단백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 없다). 

  필요에 산 노트북은 사실 이런저런 이유가 붙었지만 쓸모보다 약간의 가격이 붙어있는 맥북 프로를 구매하게 되고, 집에 펜이 없길래 애플 팬슬이랑 아이패드 프로도 하나 사고, 여름에도 시린 손목을 위해(시리를 손목에서 소환할 수 있다.) 애플 워치도 한 개 장만하고, 새로 나온 아이폰이 카메라가 또 좋다길래 한 개 산다. 그리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나오자마자 갑자기 주변이 그렇게 시끄럽다. 소음은 귀 건강에 안 좋다. 



 어차피 오늘 내가 쓰냐 10개월 후의 내가 쓰냐의 문제라면,
오늘부터 쓰고 10개월 후의 내가 지불을 하는 게 어떨까?


  이렇게 10개월 후의 내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었던 지출은 오늘도 내가 열심히 살게 된 원동력이자,

 내일을 살게 하는 동기부여이다. 신용카드를 안 들고 다니면 뭐해, 요즘엔 얼굴만 비추면 1년 후 내가 번 돈도 빼 올 수 있는데. 


  그래서 이제 죄책감 안 가지고 정리해 보고자 한다. 어차피 그렇다고 돈 안 쓸 것도 아닌데, 기왕 쓸 거면 의미 있게 쓰자 싶어서 차곡차곡 물건 모으듯이 내 물건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엄마의 저축하는 능력은 지니지 못해 돈을 모으진 못했지만, 엄마가 모으지 못한 물건은 잔뜩 모아 뒀으니까. Flex 까진 아니고.

  

  그러니까, 이건 내 지출의 흔적이자 지출의 증거이며 지출의 변명을 빼곡히 채우게 될, 내 브런치다. 


작가의 이전글 소비꾼의 장보기 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