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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Aug 29. 2024

프로젝트 안암(安岩)

#44. 읊조리기

사는 건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스트레스가 꽤 심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항상 스트레스에 갇혀있는 편도 아닌데, 어느 날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처럼 터져 나온다.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쉽지 않다.


할 일 없이 하루를 보내던 시절에도, 작은 국밥집을 운영하는 지금도 스트레스의 크기는 비슷하게 느껴진다.

큰 기업을 운영하게 되더라도 그럴까? 경험해 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러기 이전에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언제부턴가 나는 미래의 불확실함에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꽤 오래된 일인데,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보니 그런 것으론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만나 좌절했기 때문이기도, 그 능력의 한계를 경험하고서야 그 정도까진 내가 예측할 순 없는 일들이 가득하구나 하기도, 또 현재의 문제가 내 능력의 범주를 넘어서서 미래까지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러니까 좋든 싫든 결과적으론 선택한 생각을 배제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 봐야 쓸모없는 스트레스는 굳이 받지 않게 되었다. 

물론 현재의 문제가 역량을 벗어나게 존재해서겠지만.


그러므로 나는, 현재의 문제에 매몰되었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이다.

지금 시간대의 내가 짜증이 나거나, 신경질을 부리거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역시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닐 일임에도, 현재의 문제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스트레스로 남는다.

깨끗해 보이는 표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잔뜩 보이는 것처럼,

현재를 미세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입장에서, 그 현재가 주는 스트레스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딱히 어려울 일도 아닐 수 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골머리를 앓는 것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걸 더 경계하는 편이다. 그 스트레스가 문제를 해결해 준 적 이 없기 때문. 

하루종일 아 이게 왜 이러지 싶다가도, 정말 뜬금없는 책을 보다가 답을 얻는 경우도 많으니까.

(물론 하루 종일 고민했기 때문에 답을 얻은 거겠지만.)


사람이 많아지니 생기는 문제들 역시 그렇다.
신서유기에서 고깔을 얼굴에 쓰고 좁아진 시야로 물건을 찾는 게임이 있었는데, 다들 그렇게 있으면서 서로 쟤가 어깨빵 치고 지나간다고 얘기하는 느낌이랄까. 
저 고깔을 쓴 사람이 언젠가의 나처럼 느껴져서 알려주려고 해도, 사장은 심판 같은 입장이라 살짝 공정하지 못한 느낌이거나, 니 탓이라고 얘기하게 될까 봐 조심스럽게 된다.
그 와중에 내가 답을 전부 아는 것도 아니니, 단지 어떤 분위기를 배제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 게임, 현대미술 같은 느낌이 있네.


그래서 좀 더 자주 이야기 하는 부분은, 미래다.

현미경에서 잠깐만 눈 좀 떼 볼래??

하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디테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다고 해서, 현미경 속 세상이 내 세상의 전부여선 안된다.

주변과 문제를 만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둘째로는 입장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게 하는 것.

누구나 자기 감기가 가장 아프다.

힘들 때 남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나 같은 소인배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직원 누구나 할 수 있다.

단지 거기까지 생각할 다양한 경험이 아직 적어서 안될 수 있는 것일 뿐.

그리고 누군가 그래야만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아마 이런 부분은, 이 공간을 벗어나야만 깨달아지는 부분이겠다.

무간지옥은 생각보다 쉽게 내 앞으로 쏟아져 나온다. 

언젠간 그 무간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룹화되어야겠지만.

안암도 사실은 생존하기 위한 그룹, 그 일부분이다.


막연한 것들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막연함에서 희망을 찾는다.

사람들이 달을 보고 현재의 위안을 얻고, 달의 뒷면을 두려워하면서도 상상하고, 그걸 확인하고자 미래를 구체화해 나가듯.


달의 뒷면을 상상할 때다. 내가 멀리봐야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거기까진 볼 수 있다.

커다란 사람을 담기위해선 그 사람이 볼 시야를 내가 가려선 안된다. 그러려면 나는 더 먼 곳을 봐야 한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스트레스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는 달의 뒷면을 상상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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