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존엄을 위한 투쟁의 서막
'뿌지…뿌지짉!'
“허흑…!”
아랫도리가 순식간에 따뜻해지며 묵직해졌다.
어째 반응할 새도 없이 잘근 씹은 아랫입술 사이로
외마디 단말마가 흘러나왔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을의 초입에서
한 손으로는 아래를 틀어막고
나머지 손으로는 위를 틀어막았다.
행여 오리라도 된 양 뒤뚱거리며
힘겹게 사무실 바로 앞 화장실까지 도달했지만
애타는 내 마음과 아랫배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잠겨있는 화장실 문고리는 계속 헛돌기만 했다.
그대로 우스꽝스러운 꼴을 해대며 밖으로 나와
다른 건물 화장실이라도 이용해볼까
그대로 비를 맞으며 뒤뚱대며 어슬렁거렸지만
점점 세상 밖으로 형체를 드러내는
이형(異形)의 생명체에게 시간을 내줄 수 없었다.
밖에서 찾기를 포기하고
닌자 어쌔신처럼 숨죽이며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천국의 문이 활짝 열린 양
화장실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전장에서 총탄속을 달려들어 한 발 한 발 떼듯이
무한히 늘어나는 시공간 속을 헤쳐가며
겨우 상륙지점에 도달하였...
'뿌좌좌좌쟈쟈쟉!'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다.
결국 아랫도리를 감싸던 천을
내 구겨진 자존감과 함께 장렬히 순장시켰다.
벌써 세 번째다.
올해 들어서만 해도 그렇다.
방심의 문제가 아닌
건강의 적신호이다.
복강과 둔부 쪽 근력이 약해지니
아차 하면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야 한다.
이런 변(便)을 당하는 것은
어릴 때로 끝나는 줄 알았건만
한창 팔팔하다고 생각한 나이에 당하고 보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며
건강 관리를 단단히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
지쳐서 힘이 없다는 핑계
오늘은 쉬고 내일 하면 된다는 핑계
더 이상 스스로의 방만을 괄시할 수 없어
그대로 사무실 근처 헬스장으로 등록하러 갔다.
다시는 아랫도리 천을 희생시키지 않겠다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내년 여름에는
매끈하고 잘 빠진 육체미를 뽐내겠노라고 말이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 더 이상
배때지가 굵어 슬픈 짐승이 아니라
배때지가 王자여서 기쁜 GYM승이 되겠노라
하루하루 다짐하고 투쟁하는 투사가 되겠노라
온 세상에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