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으로도, 얼굴 위로도 흰 눈이 쌓이고
오늘도 아프다.
쓸 연차가 떨어져서
무급휴가를 신청했다.
밖을 보니 흰 눈이 내린다.
병원을 방문하려고 채비를 하는데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입술 주위로 흰색이 군데군데 반짝인다.
밤사이 창문을 뚫고 내 얼굴에도 흰 눈이 내렸나 보다.
한가닥 정도 흰 수염이 난 걸 며칠 전에 봤는데
오늘 보니 그새 곱절 이상으로 늘었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희끗희끗해져 간다.
밀린 채무를 더 이상 틀어막지 못해서
한 번에 물밀듯이 쏟아지는 빚독촉처럼.
나이 먹어가는 것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는데
건강 문제까지 겹쳐 삼십 대 중반에
철이 들고 속으로 여물기는커녕
껍데기로, 겉으로만 희끄무레 여물어가고 있다.
누구를 탓하겠나
인과관계 철저한 이 세상에서
원인과 결과
그리고 펼쳐지는 과정만이 있을 뿐
자연(自然)
그저
그 자리에서
스스로(自) 그러할(然)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