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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 Nov 15. 2021

축하합니다. 잘 하실 거에요.

그를 살린 말

 보험을 한다고 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같은 답을 하셨다.


 "저, 보험 해요. 재미있어요."


 그분의 평소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업종이라 놀랐고, 보험이 재미있다는 말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내게 있어 보험이란, 작고 복잡한 약정서 그리고 지루한 설명이 동반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컸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험 영업할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아이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데 보험영업은 얼마든 가정주부의 편의를 봐준다고 해서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슬쩍 권했다. 아이 학원비라도 벌 수 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 모두 친절해서 좋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점심을 혼자 먹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맞다. 그분은 유난히 밥을 혼자 먹기 싫어하는 분이었다. 낮에 혼자 밥 먹기 싫어 어떻게든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 모임이 일찍 끝나면 그중 한 사람이라도 자신과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는지 눈치를 보시고는 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늘 바빴고 나 또한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모임이지만 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분을 위해 일부러 김밥 두 줄을 싸서 가방에 가져간 적도 있다. 물론 그날 따라 아이가 체험학습이 있어 김밥을 쌌지만, 남은 김밥은 남편 몫으로 남겨두어도 되었다. 하지만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 그분에게 덜 미안하고 싶어 남은 두 줄의 김밥을 정성스럽게 포장해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갔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고, 바쁘냐고 물어보는 그분에게 김밥을 수줍게 내밀었다. 같이 먹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오늘 점심을 같은 것으로 먹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분은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김밥을 들고 가셨다. 그 뒷모습이 무척 신나 보였다.


 그렇다. 그분은 그 정도로 혼자 밥 먹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셨다. 때때로 함께 밥을 먹었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그 마저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 모이던 모임도 없어져, 그 분과의 연락도 뜸했다.


 그러다 우연히 마트에서 만났는데 보험 영업을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말을 다소 느리게 하는 편인 그분에게 보험영업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특유의 친화력 있는 태도와 웃음, 말투가 있기에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보험이 재미있다고 했다. 아는 분이 추천해서 시작했는데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 시국에 혼자 밥 먹는 것을 싫어하는 그분에게 재미있는 일이 생겨 참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벌이도 괜찮다고 하셨다. 은근슬쩍 내게도 교육을 받으러 오라고 하시는데, '나는 글을 쓰겠다'는 말로 정중히 거절했다. 그 대신 축복의 말을 양껏 해드렸다.


 "잘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정말 축하드려요.  사람 좋아하시니 사람들과 소통하는 영업 일을 잘하실 것 같아요. 저도 보험 들 일 있으면 꼭 연락드릴게요. 정말 축하드려요. 무엇보다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동료가 생긴 것 정말 축하드려요....."


 내 축복의 언어는 계속 이어졌다. 그분은 더 크게 웃으셨고, 무척 행복해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해졌다. 작정하고 그분을 기분 좋게 해주려고 했는데 나도 행복해졌다.


 '아, 그를 살리는 말이 결국은 나를 살리는 말이기도 하구나!!'


 그를 살리는 말, 앞으로 계속 해야겠다.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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