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리 Aug 02. 2021

인어공주, 공주 씨

<인어공주 그 후> /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공주? 공주라고요?"
 "네, 제 이름은 공주에요."
 
 이름을 한 번만 물어보는 사람이 없기에, 공주는 담담하게 대답해주었다. 공주의 담담한 표정에 다소 장난스러웠던 윤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성이 공이고 이름이 주에요?"
 "네, 그렇습니다."


 공주는 이런 상황이 늘 있었는지, 더욱더 진지한 표정으로 윤을 바라보았다. 윤은 공주의 당당한 눈빛에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떨구었다.


 "들어가시죠. 공주 씨."


 윤이 매너 있게 문을 열어주었다. 공주는 조금 떨리는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공주가 마이크 앞에 서자, 윤이 문을 닫고 나가려다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공주가 떨고 있었다. 입술과 두 다리가 통제되지 않는지, 무척 당황스러워 보였다. 윤은 공주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녹음실 뒤편에 자리해 있던 의자를 가져와 공주의 두 다리에 닿게 놓았다.


 "너무 힘들면 앉아서 하셔도 됩니다."


 윤의 친절한 목소리가 삭막한 녹음실에 따뜻함을 뿌리는 것 같았다. 공주는 윤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나직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윤은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두 평 남짓한 녹음실에 공주를 놓고 나갔을 때, 당장이라도 공주가 쓰러지거나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본 공주에게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이 이상했지만, 윤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윤!! 뭐 하는 거야? 어서 나와!"


 신경질적인 목소리 아니 왜인지 화가 난 것 같은 만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들려왔다. 윤은 만여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거친  만여의 목소리를 스피커로 들으니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윤은 공주가 걱정되어 흘깃 살폈다. 공주는 눈을 감고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윤은 공주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응원할게요."


 윤이 나가고, 공주는 고개를 떨궜다. 눈물 한 방울이 공주의 발등에 떨어졌다. 공주는 심호흡을 깊게 하고, 두 손을 모았다.
 
 핀 조명이 켜졌다. 어둠 속에서 공주가 홀로 마이크 앞에 섰다.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전주가 나오고, 드디어 공주의 입이 열렸다.


 밖에서 지켜보던 윤은 공주의 입을 통해 나오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공주가 하는 노래는 아니, 목소리는 이 세상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천사의 속삭임 같았다. 윤은 자기도 모르게 조렸다.


 "아름답다."


 윤을 남몰래 짝사랑하던 만여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일개 가수 지망생에 불과한 공주에게 유독 친절한 윤의 태도가 무척이나 신경 쓰이기도 했다. 만여는 윤 모르게 기계를 조작했다. 그러자 '삐이익~~~~'소리가 녹음실 전체에 퍼졌고, 한창 노래하던 공주가 끔찍한 소음에 놀라 두 손으로 귀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윤은 공주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얼른 녹음실로 향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녹음실 문이 열리지 않았고, 당황한 윤은 계속 문고리만 흔들어댔다. 윤은 떨고 있던 공주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어쩐지 혼자 안에 두고 나오고 싶지 않았더랬다. 처음 본 공주에게 왜 그런 마음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다. 윤은 당장 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공주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문 앞에서 낑낑대는 윤을 지켜보던 만여는 그 꼴이 너무나 보기 싫었다. 그래서 기계를 더 조작했고, 소음의 데시벨이 더 높아졌다. 그러자 녹음실 속, 공주가 어쩔 줄 모르며 힘들어하다가 윤이 놓아준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공주의 다리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공주는 다리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놀라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공주는 꿈속에서 왕자, 윤을 만났다.


 꿈속에서 공주는 배 위에 있는 왕자를 바라보며 물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다리가 물거품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공주는 사라지는 다리를 보며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퍽' 소리가 났다.


 왕자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윤이 녹음실 문고리를 뜯고 들어왔다.


 왕자가 공주의 손을 잡았다.
 윤이 공주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공주가 눈을 떴다.
 왕자와 공주가 서로를 애달프게 바라보았다.
 윤과 공주가 서로를 애달프게 바라보았다.


 "왜 말하지 않았소! 왜! 왜! 공주! 내가 그대를 살려내겠소!"
 왕자는 공주를 바다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뜨겁게 안아주었다.

 "생각이 났어요. 공주 씨! 아니 인어공주님! 당신을 알아보겠어요."
 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공주를 안아주었다.


 공주는 결국 왕자, 윤의 사랑을 다시 찾았다.

 

 마녀와 만여는 독기를 품고 노려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들의 사랑을 또다시 훼방 놓고 싶었으나, 시간을 초월해 다시 만난 엄청난 사랑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왕자, 윤을 향한 공주의 사랑은 억만 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목소리와 다리를 잃어도 괜찮은 사랑, 그런 사랑이 가능한 사람은 오직 인어공주, 공주 씨 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여전히 진행 중인, 쉽고 편한 아둘맘의 한글교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