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리 Nov 26. 2021

당신과 같은 생각이라 기뻤어요

그를 살린 말

 기가 쎈 사람이 있다. 아니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있다. 아니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신념이 강하고 자신이 판단한 것이 대부분 맞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또한 순전히 그의 생각일 뿐,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완전무결하게 사는 것 같지는 않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이다. 소위 기가 쎄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하면 옳고 다른 사람이 하면 틀리다는 생각을 한다.


 솔직히, 나는 내가 기가 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남편이 그러는 거다. 우스갯소리로,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어지르면 '누가 그랬어? 어서 치워.'라고 말하고 내가 그러면 조용히 치운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나를 혼내며 닦을 수도 없지 않는 노릇 아닌가? 문제는 그게 아니다. 남편이 그런 말을 내게 했다는 것에 있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 그러니까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엄마와 아내의 자리에 있는 여성들이 억울한 부분 중에 하나가 이거다. 집안을 정리하고 아이들이 올바른 습관을 갖도록 리드하는 총책임자의 입장에서 하기 싫어도 잔소리를 하게 된다. 방 좀 정리하라고, 쓰레기 좀 주우라고, 물건 좀 제자리에 놓으라고, 밥풀은 좀 떼라고......  솔직히, 여자들도 그런 말 자질구레하게 다 하기 힘들다. 어떤 때는 모른 척 넘어갈 때도 있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잔소리 안 하고 넘기면 정말 쓰레기장이 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순간 말이다. 그때 잔소리를 한다. 좀 치우자고!!!!!! (참았던 만큼, 강력한 언어가 튀어나갈 위험성이 높다.)


 이를 기가 쎄다고,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내로남불이라고 말한다면 앞으로는 집 안이 어떻게 되든 입을 다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정말 잔소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더니 큰 아이 방은 책과 옷이 함께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고, 작은 아이 방은 레고 조각들과 색종이들이, 안방과 옷방은 남편이 벗어던진 옷들과 짝 없는 양말들이 소리 지르고 있었다. '여기가 맞냐고, 정말 우리를 여기에 방치하는 것이 맞느냐고!' 그럼 나는 애써 못 본 척, 내 컴퓨터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 하고만 대화한다. '너만 안전하면 된다고! 너만 이 자리에 있으면 된다고'말이다.


 그렇게 나는 기가 쎈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반납해가고 있다. 그랬더니 가족들과 싸울 일도 없고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겠는 감정에서도 벗어났다.


 진즉! 이렇게 살 걸 그랬다. 무슨 모델하우스처럼 살겠다고 정리를 하고, 신경을 리도 써댔는지....  괜히 가족들에게 인심만 잃을 뻔했다. 문제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어질러진 집에 속이 터져 본연의 모습을 보이고야 마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다행인 게 어쩌다 한 번의 쎈 모습이라 그런지, 가족들이 그런대로 이해하며 치우는 척이라도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내 이야기이고,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모임에서 만나는 어느 언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 언니도 기가 쎈, 아니 자기주장이 강한 분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반론을 하면 눈빛과 표정으로 말한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그 눈빛과 표정이 너무 강해서 대부분은 그 언니의 눈치를 본다.(카리스마라고 해야 하나... 아우라라고 해야 하나...) 나 또한 그 언니의 그런 태도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평소 재미있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대화 중 나도 모르게 다 같이 웃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면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럴 때마다 이 언니가 싸늘한 눈빛을 보이며 대화 자체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를 눈치챈 나는 눈치껏 대화를 멈추고 다음 대화에 동참한다. 처음에는 나의 오해라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있던 두 사람이 나를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괜찮은거냐고.


 그때 무너졌다.' 아아... 나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이후, 그 모임에 갈 때마다 그 언니 앞에서 나는 농담 비슷한 것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나도 모르게 자꾸 코믹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려는 성향이 있어 의도치 않게 잘 안 되는 경우도 있긴 했다. 어쨌든, 나는 그 언니와 가급적이면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했다. 너무 다른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언니가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의 생각과 다르자, 이번에도 역시 싸늘한 눈빛으로 대화 자체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간 것이다. 그 사람 역시 나와 같은 기분을 느꼈으리라. 아니 확실히 느꼈던 것 같다. 그 사람의 표정이 서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잠깐! 그 언니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 언니는 모임의 리더로서 어떻게든 팀원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다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 그렇군요. 당신의 생각은 그렇군요. 분명 당신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어요. '라고 부드럽게 말하고 넘어가도 될 텐데, 그것을 잘 못하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2년 가까이 함께 하는 그 언니와의 모임에서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모두 그것을 이해해주는 분위기였다. 그것 빼고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어쨌든, 상처 받은 그 친구의 눈빛을 확인한 나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모임이 다 끝나고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라고. 나와 같은 생각이라 깜짝 놀랐다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당신처럼 좋은 사람과 생각이 같아서 무척 기쁘다고'


 나의 문자가 얼마나 그에게 가 닿았을지,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임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분명 긍정적인 작용을 했으리라 믿는다.


 반면교사!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떤 사람의 행동과 말을 통해 반대의 교훈 그러니까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하는 가르침을 주는 것을 뜻한다.


 나는 그 언니를 통해 신념과 책임감을 갖고 나아가는 리더십을 배우는 동시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부드럽게 포용해야 할 필요성을 배웠다. 이는 나의 가정에 적용되어, 잔소리만 하는 엄마와 아내로부터 조금이라도 탈피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첫째 아이가 방을 잘 안 치우는데 굳이 내가 치워주지도 치우라고 잔소리하지도 않다. 대신 물어봤다. 엄마가 치워주면 좋겠냐고? 그랬더니 싫단다. 치우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대로도 불편함이 없단다. 그래서 더 이상 아이의 지저분한 방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안 그래도 이것저것 배울 것 많은 학생인데 집에서조차 엄마한테 시달리게 하지 않게 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 방은 지저분하다. 대신 바닥에 먼지는 쌓이지 않도록 청소는 해준다. 청소해주고 어질러진 물건은 고대로 둔다. (이것도 쉽지 않다.;;;)


 인간관계에 갈등이 없을 수가 있을까?
 가정이든, 사회든 갈등은 반드시 있다. 그 모든 갈등에 맞서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잠시 물러서는 것이다. 물론 대단히 비도덕적이고 양심에 어긋난 일 앞에서 물러서면 안 된다. 굳이 맞설 필요가 없는 일들, 예를 들어 나와 생각이 다른 그 어떤 사소한 일에 대해 목숨 걸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머릿속이 아주 간결해졌다. 오로지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가 쎄다는 것!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것! 신념이 강하다는 것!
 
 그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것이 아니라면 굳이 쎄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안 그래도 신경 쓸게 많은 세상, 편하게 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 출간 소식] 글 쓰는 직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