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니는 마흔한 살, 나랑 동갑내기 친구다. 직장 다닐 때 1년 동안 같이 자취를 할 정도로 친했다. 물론, 같이 살아보니 안 맞는 부분이 참 많았다. 서니는 깔끔하게 청소하기를 좋아하고 저녁을 먹으면 같이 산책하거나 두런두런 이야기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던 나는, 1분 1초가 바빴다. 그래서 같이 저녁을 먹은 뒤 내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아버렸다. 특히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를 해야 했기에, 방문 닫고 집중할 시간이 꼭 필요했다. 당시 서니는 그 점을 무척이나 서운해했다. 아니 자주 삐졌다. 서니가 삐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풀어줄 수 없었다. 풀어주려면 시간을 내어 같이 무엇인가를 해야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투룸 재계약 기간이 되었을 때 각자 살아보자고 먼저 제안했다. 서니는 또 서운해했다. 서니와 함께 살며 나는 생각했다. '아, 나는 누군가랑 같이 사는 건 안 되겠다. 열심히 돈 벌어서 혼자 살아야지.'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서니와 절교하며 헤어진 것은 아니다. 각자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해해주며 헤어졌다. 그런데 서니는 나와 헤어지고, 또 다른 친구와 같이 살기로 했다. 혼자 살면 무섭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아, 정말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 서니는 외로움이 많은 아이라 혼자 살기는 어렵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내가 당시 일과 학업을 병행하지 않았다면 서니와 함께 마트도 가고, 함께 운동도 하며 각자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내 인생 가장 바쁜 시절에 서니와 함께 살았기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때'가 있다. 공부할 때, 일할 때, 쉴 때, 살 뺄 때, 살찔 때, 잘 때, 놀 때, 노력할 때, 마음껏 누릴 때, 반성할 때, 기도할 때, 잠자코 있어야 할 때.........
함께 하는 사람이 그 '때'가 잘 맞으면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도 하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관계가 되기도 한다. 당시에는 서니랑 헤어지고 혼자 사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혼자 자취를 시작했다. 옆에서 놀아달라고 귀찮게 하거나 삐지는 친구가 없으니 참 편했다. 그러나 그 편함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심심했다. 지루했다. 말할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 게다가 나는 학교 졸업은 물론이요, 직장도 그만 두어 백수 상태였다. '아, 이럴 때 서니랑 같이 살았다면 참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 아쉬웠다. 그러나 서니는 함께 살기 시작한 친구와 함께 청소를 하고, 마트를 가고, 운동을 하느라 바빴다. 조금 질투가 났지만, 질투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랬던 서니가 얼마 전 전화를 했다. 서니는 최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만학도의 삶을 살고 있다. 기말고사를 보고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 시절, 공부한다고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던 내가 생각이 났단다. 일하고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놀고 싶은 것을 참고 묵묵히 공부하느라 얼마나 외로웠을지 이제 알겠다고 했다. 아, 서니는 지금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신혼 상태인데 같이 안 놀고 공부한다며 남편이 그렇게 삐진다고 했다. 그리고 17년 전의 어린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고 했다. 친구가 놀자고 해도 공부하는 마음이 어땠을지, 직접 경험해보니 알겠다는 것이다.
찡했다.
17년 만에 다시 공부하는 네 마음은 어떻겠냐고, 어린애들과 함께 시험 보고 졸업까지 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냐고 외로 해줬다. 너는 정말 대단하다고! 내가 아는 마흔한 살 중 제일 영(young)하다고!
"고마워........"
서니의 끝말이 작아졌다. 아마도 눈시울이 붉어졌거나 울컥한 듯했다.
나도 같이 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