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서, 예뻐서, 아름다워서

by 류혜진

매일 보는 것이 산이고, 지겹게 펼쳐진 것이 논이었던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계절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에 사는 기쁨과 감사함이란 먼지만큼도 없었다. 이유는 확실했다.


1990년, 10살이 된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속 도심의 어느 가정에서는 가족끼리 갈비와 피자를 먹으러 식당을 가고, 학교 끝나면 피아노학원과 영어학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라는 장면을 보면서 말이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만든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같은 나이의 어느 여자 아이가, 그러니까 배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아이가 하굣길에 학원 가기 싫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아, 저건 진짜다. 진짜, 저런 세상이 있구나.'


태어나서 줄곧 시골에서 자랐고, 도시에 놀러 간 적 한 번 없던 내게 텔레비전 속 세상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세상에나, 저런 곳이 있구나! 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 서울이 저런 곳이구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방문 열고 나오면 바로 펼쳐지는 산과 논이 답답하고 지겨워진 것이. 국민학교 6학년 때였던가? 친구들과 함께 시내에 나가 영화도 보고, 쫄면도 먹자며 약속을 하고 아침 9시 30분부터 버스를 기다리는데, 1시간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영화는 11시에 시작인데, 버스가 오지 않으니 애가 타다 못해 화가 났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루 세 번 들어오는 버스가 하필이면 내가 영화를 보러 가는 날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돌멩이를 차며 울어버렸다.

그래서 '자연'의 '자'자만 들어도 달갑지 않았다. 도시에서 사는 친척들이 일 년에 몇 번은 놀러 오는데, 올 때마다 하는 말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심이었으나,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머, 이 꽃 좀 봐. 사계절 다른 꽃을 보고, 어느 미술작품 못지않은 풍경을 보면서 사니 정말 복 받았다. 게다가 깻잎이며, 호박이며, 먹을 것이 천지에 있고 다 유기농이야. 얼마나 행복하니? 정말 복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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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이북 독서논술 원장/[숨은고수] 글쓰기 강사/ 문학심리상담사 1급/ 글쓰기 독서지도사/ 꾸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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