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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May 01. 2021

후회 없는 선택이란

티브이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그런 인물을 마주한다 - 온갖 고초에도 자신의 선택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들.


나는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승부 근성이 있는 탓에 끝내는 성공할 것이란 믿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실패 따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타입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내키는 대로 마구 선택하고 후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후회'라는 감정은 살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라며 담담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셈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내게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지는 않았다.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시는 커피이었다.


물론 단번에 결정된 일은 아니었다. 시중에는 다양한 가정용 커피 머신이 존재한다. 드롱기라든가, 스메그라든가... 디자인도 훌륭했다. 형형색색의 머신을 검색할수록 그것이 이미 집안에 있는 기분이 들어 나는 그것의 사용법을 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득 하나의 명제가 떠올랐다 - 엌은 좁아지기 마련이었다. 엄마의 경우를 보아도 주방이 생긴 지 고작 이삼 년이 지났던 나의 경우를 돌아보아도 그랬다. 주방의 공간 부족 사태는 속수무책의 자연재해처럼 기어이 발생해버린다. 에어프라이어만 해도 그렇다. 시중에 판매되는 간편식에는 벌써 에어프라이어 조리법과 전자레인지 조리법이 나란히 기재되어 있다. 에어프라이어-시대가 도래하는 양.


핸드드립 기구는 커피 머신에 비하여 공간을 덜 차지였다. 최악의 비상사태가 닥치더라도 그것들은 언제든 작은 바구니에 담겨서 수납장에 보관될 용의가 충분했다. 그렇다, 그건 순전히 공간의 효율성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시작하였는데, 내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법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어깨너머로 본 적은 있지만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은 탓에 그것에 대한 지식수준은 백지처럼 순수한 상태였다. 블로그와 유튜브 그리고 경험자의 조언에 기대어 하나씩 채워 나갈 뿐이었다. 어떻게 하여도 커피가 추출된다는 놀라운 사실에 조용히 감탄하던 시절이었다.


'타이머와 온도계 그리고 좋은 원두를 믿을 것, ' 나는 최소한의 지침만으로 나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마시는 일에 익숙해져 갔다. 초반에 큰 뜻을 품고 정교한 추출법을 다룬 핸드드립 책도 사두기도 했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깜냥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유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일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삼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제 주기적으로 원두를 구매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바리스타가 되겠다거나 날마다 일정한 맛의 커피를 내리겠다는 지향점 같은 것은 없지만, 차이를 안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종류의 원두를 사는 것이었고, 그다음은 구입해둔 원두가 자연스레 시간에 반응하기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밀폐용기에 담아두어도 공기에 닿은 원두는 변하기 마련이었다. 물의 온도를 다르게 하는 방법도 있었다. 원두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고, 그런 식으로 매 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음이 고요한 어떤 날은, 한 잔의 커피가 반복되는 순간 속에서 차이를 알아차리법을 내게 나지막이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밀폐용기 뚜껑을 열고 커피 향을 음미하면 그날이 꼭 쉬는 날 같고,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들면 커피 마시는 일을 깜박한 경우가 많았다. 커피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등장하면 나도 모르게 눈으로 한번 쓱 보고 모른 척한다(그럴 때면 중독자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지만).





나는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후회가 없는 인생을 살아낸 이들처럼 혹독한 고난이나 시련을 겪은 적은 없다. 드립 서버가 깨진다거나 전동 핸드밀이 고장이 난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후회가 없는 상태'에 대하여 조심스레 말하여 본다면 그것은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의 결과 정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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