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날씨 운이 유독 없는 편이다. 시간을 비워두고 크게 마음을 먹고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떠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하늘이 뿌옇다. 그래서일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캠핑은 정말로 근사해 보인다.
그런데 텐트나 코펠 같은 기본적인 장비조차 없는 초심자에겐 살 것이 산더미. 거의 살림살이를 새로 장만하는 수준이었다 - 쇼핑이란 이것저것 구경할 때는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비교할 대상이 눈더미처럼 불어나면 골칫거리가 되어버린다.
인터넷 서핑 한 시간 만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빈티지한 캠핑카를 재까닥 목록에서 지워버렸다(집채만 한 걸 주차해둘 곳이 마땅히 없었다). 현실적 난제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헤집으니 낭만이란 게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지만, 떠나고 싶은 욕망이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초여름의 무더위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어느 날, 나는 대강의 준비가 되어있는 -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캠핑 비슷한 여행을 떠났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위치한 '원데이-아지트'는 푸르른 색.
나는 자리를 잡고서 맨 먼저 모기향을 피우고, 그다음으로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그냥 무엇이든 적당히 할 작정이었다.
느긋이 맛을 보며 적당히 배를 채우니, 모든 게 늘어져 버린다. 유유자적 흐르는 구름의 속도에 맞추어 재생되는 비디오테이프처럼.
그러자 축소된 세계가 펼쳐진다. 손에 잡은 맥주캔도, 유난히 작아 보이던 야외의 테이블도, 매캐한 모기향도 실체를 감춘다. 명상을 한 일도 완전히 지칠 만큼 걸은 일도 아닌데, 집 천장에 들러붙은 듯 짓누르던 무거운 생각도 웬일로 드러나지 않는다.
'두둥실' 모습을 보인 건 건 도무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높다란 하늘뿐.
해가 산등성이를 너머 서자, 유난한 풀벌레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장작 타는 냄새가 나를 붙잡는다. 자연에 사는 일을 찬양하며 자연에 살 뻔한 나를 툭 건드린 건 게걸스럽게 짓는 어느 집의 이름 모를 개 한 마리 - 그것은 인적을 일깨우며 균형감을 부여했다.
캠핑의 맛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다시금 장비를 살까 말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지만...
epilogue
feat. 피스타치오 토마토 라구 파스타
캠핑 초보다운 발상인진 모르겠지만, 그 일엔 토마토 파스타가 어울리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