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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Nov 20. 2021

Dance Dance

레시피북을 뒤적이다 멈칫할 때가 있다.


파가 캐러멜색이 될 때까지 볶아주라든지, 다진 고기가 연한 회색이 되면 곧바로 불을 끄라든지, 젓가락으로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으로 반죽을 하라든지, (뭐 영화 속 설정이지만)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주문을 외치라든지,..


 때면 한 번쯤은 캐러멜색이나 연한 회색이 정확히 무슨 색인지, 그냥 젓가락으로 찌르면 되는 일이 아닌지 묻고 싶기도 하지만 펜의 두께나 불의 세기 등의 조리 환경이 동일하지 않는 걸 고려한다면 그건 대체로 정확한 바로미터이긴 하다.  하기야 내게 양파가 알맞게 볶아지는 타이밍은 그것이 투명해질 때까지이다.








그래도 주문을 외우라는 건 너무나 주술적이다.


맹세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며 조리를 해 본 적은 아직 없지만,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여 궁극의 재미를 추구하는 인과관계는 이해하는 바이다.


게다 나도 독특한 레시피를 보유하고 적극 공유하고 있어 크게 나무랄 입장은 못된다 - '완성된 파스타는 실온에서 약 7분간 레스팅(뜸 들이기) 후 드셔야 딱새우의 풍미를 제대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라고 <딱새우 비스크 쉬림프 오일 파스타>를 마무리하는 일을 권장하고 있다.


보통 스테이크를 굽고 풍미가 잡히는 시간에 여유를 두는 경우는 있지만, 파스타는 글쎄,.. 나 역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었다.








매장에서 조리하던 메뉴를 누구나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밀키트로 구현할 적이었다.


동일한 재료로 과정을 조금 더 단순하게 바꾸어서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뭔지 모르게 결과물이 달랐다. 작은 부분일지는 몰라도 내게는 확연한 차이였다.


미심쩍은 부분을 수정하며 반복적으로 맛을 보아도 보아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채 일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나는 상심한 마음에  파스타가 담긴 접시를 멀찍이 밀어버렸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한 끼를 때우려는 요량으로 포크로 면을 둘둘 감아서 한 입 먹는데 무언가 익숙했다. 딱새우 맛이 '번뜩' 살아난 것이었다.


시간 차이 때문에 그 일이 발생한 일이란 걸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 후딱 파스타 한 그릇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테스트에 임하는 과학자처럼 초시계를 옆에 두고 파스타를 맛보기 시작했다.


7분 즈음이었다.


파스타 면에 딱새우의 맛이 스며드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일이었다. 괜히 숫자 칠이 좋아서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렇지만, 막상 공식적인 레시피로 공유하려니 이런저런 걱정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그런 시간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이라도 쏟아진다면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내가 고작 생각해낸 일은 칠 분 동안 즐길 수 있는 딱새우 춤을 만드는 것이었다.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딱새우를 본 적이 없어 상상에 의존한 - 손을 가시 발 모양으로 만들고서 파도의 흐름에 순응하는 - 동작이었다.


아무튼 콘셉트는 칠 분간 멈추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Just 7min'이다.







 

다행히, 별다른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른 파스타와 함께 즐길 경우는 먼저 조리해두거나 아니면 플레이팅을 마무리하고 기념촬영을 하며 다들 알아서 척척이다(감사하게도).


분에 딱새우 춤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정말로 한 시름 놓았다. 









epilogue


드셔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설명을 보태자면, 딱새우 육수로 딱새우 오일로 차곡차곡 레이어를 쌓아 만든 '딱새우 비스크 쉬림프 오일 파스타'는 국물이 자작하지는 않지만 면발에 딱새우 본연의 맛을 입힌 새우 파스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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