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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Dec 04. 2021

일요일의 음식들

다들 워라벨의 기준이 되는 -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실행하려고 마음에 담아둔 일들 하나쯤은 있을 테다.







나는 그게 감자전이다. 믹서기에 갈거나 채를 썰어 부치는 것이 아니라, 강판에 갈아서 막 부친 감자전 - 깊이가 있는 양푼에 강판을 올려두고서 반복적인 노동 끝에 감자의 식감을 살려 먹는 그 맛이 진짜다. 


그런데 '' 감자전을 먹은 게 벌써 수해 전이다. 상 사 먹으려고 하여도 주변에 그런 감자전을 파는 곳이 없다. 고됨에 비하여 이윤이나 유명세가 따라오지 않으니 그런 곳이 사라지는 일은 자연스러운 이치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 감자전이 먹고 싶다면 집에서 손수 만들어야 했지만 몸이 고되지 않아도 마음이 고되어 드리 눕게 되는  시간이 누적되며 안타깝게도 나는 감자전과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만일,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서 '그' 감자전을 만들어 막걸리를 마시는 날이 오면, 환상적인 워라벨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하다. 








지금 나의 워라벨은 되도록 손수 밥을 지어먹는 식단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써 지켜내고 있는 일이지만, 단 하루는 예외이다. 일요일이 그렇다.


(일요일이 아닌 경우도 있지만)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단 신념을 지켜낸다. 최대한 활동 반경을 좁히며, 단수라도 닥친 듯 씻는 일도 마다하고 소파와 우호관계를 유지한 채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보낸다.


먹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적당히 반조리 식품 정도로 해결을 본다. 희한하게도 완전히 지친 날에는 무언가 주문하는 일도 귀찮기만 하다 - 배달 음식이 도착하는 시간을 무턱대고 기다리기보단 위장에 즉각 반응하며 음식을 섭취하고픈 욕구가 강한 탓일까.







어쨌거나 무턱대고 밀려드는 배고픔을 막을 재간은 없는 노릇이라, 나는 나름의 노하우 몇 가지를 연마해왔다.


 땅속에 묻어 비축해둔 식량을 야금야금 먹는 다람쥐처럼 부엌을 오가며 식빵이나 시리얼, 우유나 견과류, 과일이나 초콜릿 등등을 야금야금 먹는 전략을 펼친다. 간혹 계란 프라이도 해 먹는다. 주말을 대비하여 챙겨 온 파스타 밀키트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냉동피자나 짜장라면 혹은 물만두를 먹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핸들을 확 틀어 경로를 이탈하는 기분이지만, 그래야만 다음 한 주가 정상 가동된다. 그렇지 못하면 퀭한 아우라로 지나가는 무고한 시민을 해치는 좀비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그러니 제가 하루 쉬는 일이 세상에 이로울 수도 있답니다, 정말로)








오분에서 십분 정도의 수고로 일요일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은 나의 워라벨을 위하여 특수 제작된 든든한 지원군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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