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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Dec 19. 2021

호불호

희한하게 내가 한 때 호감을 품은 것들은 감쪽같이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스럽지 않은 톤의 노란색 외관의 자그마한 카페도, 동치미 막국수의 슴슴한 맛도, 아무래도 당근으로 소스로 만든 듯한 맛이 나던  떡볶이도, 장시간 발효시킨 반죽으로 두툼하게 만두소를 감싼 만두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희박한 우연들이 연달아 발생했다기 보단 다수가 찾지 않아, 고로 수익이 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아무튼 나의 호불호를 일깨워주며 기꺼이 나만의 수식어가 되어주던 유들은 영영 소멸되어버렸다. 마치 공룡이 살았더라 식으로.

 







(몹시 한정된 수이지만) 내가 아는 한 아이들은 대체로 공룡을 좋아한다. 생전 본 적도 없는 생명체의 기다란 이름을 또박또박 외는 일을 보면 분명 그렇다. 집요하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도 있으나 원체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란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다. 결국, 나는 '아 그래 너는 파키케팔로사우르스를 좋아하는구나.' 하며 백기를 든다.


그토록 빠져든 까닭이 등 뒤로 솟은 뿔 때문인지 상 속 울음소리 때문인지 도통 알 수 없지만, 공룡이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만큼은 알 듯도 했다. 나도 그런 게 하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은 '파르메자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의 줄임말로, 이탈리아의 여느 지방의 이름을 딴 경성 치즈가 '파르메자노'이다.


그것은 여타의 첨가물도 없이 오롯이 공기에 반응하며 시간 발효된 결과물로, 그것은 달고 부드러운 것이 되는 대신에 쿰쿰하고 단단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성품을 존중하는 뜻에서, 파르메자노의 개성을 한껏 살려 파스타를 만든다.








바로 '딱새우 비스크 쉬림프 파르메자노 파스타’이다.


쿰쿰함 덕에 호불호가 판이하게 갈라지며, 행여 사라지더라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끄덕이게 될 공룡에 가까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릇 공룡을 대하는 방식이 그렇듯 나는 적지 않게 은연중에 새어 나오는 마음을 마주하기도 했다.


주문 시 냄새에 관한 - 경고에 버금가는 - 부연 설명에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냐는 물음이나 챌린지에 도전하는 듯한 유연함이 되돌아오기도 했고, 심지어 먹는 도중  파르메자노 리필을 요청하극호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룡이 사라지는 심정을 그 누구보다 아는 탓에 나는 여태 그것을 메뉴에 남겨두고 말았다.






가끔은 일을 끝마치고 쿰쿰한 치즈 파스타를 한 그릇 만들어 와인을 한 잔을 곁들이는데, 파르메자노의 쿰쿰함은 와인의 단 맛을 살려낸다.






아이의 상상 속에서나 숨 쉴 법한 공룡을 세상에 길들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파격적인 모양새로 공룡을 치장해보라든지 치즈처럼 모든 걸 시간에 맡긴 채 살아보라든지 뭐 그런 요령을 속 시원히 일러줄 처지가 아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생명체가 호흡할 방법을 더듬더듬 배워나가는 중이다. '파르메자노 파스타에 후추를 더하면 맥주 안주로 제격이라고 말할 수 있거나, 그 외에도 다양한 메뉴가 얼마든  있다고 말하며.'







여담이지만, 꼭 파르메자노가 아니어도 작아져버린 채 각자의 호주머니 속에 숨어버린 - 각기 다른 이름의 공룡들이 세상에 뛰어오르 풍경을 머리에 그리면 한결 느슨해진 기분에 잠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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