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한국상륙 코믹콘 쉽게 읽기
2017년 8월 4일부터 3일간 '코믹콘 서울 Comic Con Seoul'이 열립니다. 얼리버드 예매는 성황리에 끝났고 지난 17일부터는 일반 예매도 시작했어요. 서브컬처는 물론 대중문화, 언론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행사이니만큼 코믹콘이 어떤 행사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서울 행사는 미디어파트너가 S본부라 너무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습니다.(솔직)
☞코믹콘이 뭔데?
코믹 북 컨벤션(Comic book convention)의 줄임말로 원래는 팬과 창작자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화 박람회를 뜻했지만 지금은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게임, 장난감, 피규어 등 캐릭터 상품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있는 엔터테인먼트 박람회로 그 외연이 확대됐죠. 코믹콘은 1930년대 SF(공상과학소설) 컨벤션에서 비롯된 걸로 봐요. 공식적인 첫 코믹콘 행사는 1964년 뉴욕에서 '만화 팬덤의 아버지(Father of Comic Book Fandom)'로 불리는 제리 베일스(1933~2006) 등 열성적인 만화 팬들에 의해 개최됐습니다. 제리 베일스는 1961년 코믹북 팬덤 및 연구자들을 위한 첫 공식단체인 ACBFC(Academy of Comic-Book Fans and Collectors)를 만들고 격월간 팬 매거진 '얼터에고'를 창간하기도 한, 그야말로 '덕후의 귀감' 같은 양반입니다. 이렇듯 코믹콘은 비영리적인 팬 모임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창작자, 제작자, 업계 관계자, 주요 언론과 영화사들이 총출동하는 국제적인 축제이자 행사로 발돋움했습니다.
☞코믹-콘? 코믹콘?
코믹-콘(Comic-Con)과 코믹콘(Comic Con)은 달라요. 하이픈(-)이 들어간 코믹-콘은 샌디에이고 코믹콘 인터내셔널(이하 SDCC)의 정식등록 상표입니다. 코믹콘 서울처럼 '코믹콘+나라 혹은 도시' 형태인 경우는 해당 지역에서 열리는 엔터테인먼트 박람회 행사 정도로 보면 됩니다. 남미, 유럽, 중동, 아시아, 오세아니아까지 전 세계적으로 연례행사가 개최되고 있고, 특히 미국에서는 뉴욕 코믹콘이나 LA 코믹콘처럼 20개 넘는 대도시에서 독자적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1975년부터 연 2회 개최되는 코믹 마켓(코미케, コミケット)도 이름은 다르지만 일종의 코믹콘입니다. 동호인들의 2차 창작물인 동인지와 다양한 아마추어 창작물 판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코믹콘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
1970년부터 매년 7월에 개최되고 있는 SDCC는 가장 널리 알려지고 대표적인 행사입니다. 일단 코믹콘 계열 행사 중 규모가 가장 큽니다. 행사 기간 동안 13만명(2012년 기준)이 참가하고 이들이 쓰는 돈만 해도 3200만달러에 달합니다. 앞서 설명한 일본의 코믹 마켓은 연 2회 행사 참가자가 110만명(2011년 기준)에 달해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만 행사 성격이 다르므로 직접 비교하지는 않을게요. SDCC가 워낙 입지가 탄탄하고 파급력이 큰 행사다 보니 유명 작가와 배우들이 게스트로 꾸준히 참가하고 있으며 사인회 같은 행사도 끊이지 않아요. 레고는 아예 SDCC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제품을 내놓기도 합니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로 SDCC에서만 공개되는 독점 예고편이 있을 정도고, 마블이나 DC는 자사의 차기작 라인업을 SDCC에서 최초 공개하기도 합니다. 감독 이하 출연진 전원이 패널로 출연해 기자회견을 갖기도 합니다. 또 코믹콘 인터내셔널 인디 필름 영화제도 함께 열리는데, 배급사를 찾는 영화 제작사들과 좋은 작품을 찾는 바이어들이 코믹콘을 찾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SDCC는 엄청난 규모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영리 행사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행사 수익금은 다음번 SDCC 및 관련 행사를 위해 사용된다고 하네요.
덕후의 성지이다 보니 배우 역시 코믹콘 출연에 적극적이에요. 마블의 영화 '어벤져스'에 출연한 배우 톰 히들스턴은 2013년 샌프란시스코 코믹콘에서 영화 속 로키 의상을 그대로 입고 등장해서 명대사를 줄줄 쏟아내며 팬들을 쓰러지게 만들었죠. 같은 해 SDCC에서는 앤드류 가필드가 어설픈 스파이더맨 의상을 입고 관객인 것처럼 있다가 질의응답 시간에 난입하기도 했고요. (귀여움 주의)
☞코믹콘 예매, 험난한 여정
그럼 코믹콘에는 어떻게 가느냐. 그냥 아무나? 입장 티켓만 끊으면 OK? 아닙니다. 배지라고, 입장권 예매를 해야 합니다. 저도 물론 시도해봤습니다. 한국의 입시 지옥도, 취업 전쟁도,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예매 경쟁도 겪어 봤지만, 단언컨대 SDCC 입장권 예매만큼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다.
하루짜리 입장권도 있고, 나흘간의 모든 행사에 입장 가능한 4일 입장권도 판매합니다. 미국 서부 샌디에이고 현지시간으로 오전 9시에 예매가 시작됩니다. 한국은 새벽 1시죠. SDCC 예매 전에 홈페이지(www.comic-con.org)를 통해 미리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만 참여 가능합니다. 예매 기간 중에는 신규 가입을 막아 놓습니다. 그리고 예매 가능한 시간이 되는 순간부터 클릭 그리고 새로 고침 전쟁입니다. 이 치열한 과정조차 예선전에 불과한데, 이 과정을 통과하면 대기방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예매 대기자들이 하염없이 모니터만 보면서 기다리는 무간지옥 같은 곳입니다. 기다리다 보면(새로 고침이나 뒤로 가기를 누르면 도루묵이라고 하네요) 차례가 된 대기자들은 예매 화면으로 이동합니다. 물론 그 전에 매진되면 끝. 티켓은 양도나 판매 불허. (그래도 암표 사고파는 사람은 있는 모양입니다) 과거엔 스태프들이 입장 전에 배지를 육안으로 확인했다고 하는데, 지난해부터는 칩이 내장된 카드를 출입구에 대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당연히 전 실패했습니다. 오직 코믹콘만을 위한 미국 여행 일정도 죄다 계획해놓고, 괜찮은 호텔도 예약해놨지만(몇 달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빈 방이 없음) 실패했어요. 이렇다보니 미드 '빅뱅이론'에서는 덕후인 주인공 일행이 코믹콘 예매를 위해 각자 노트북을 들고 모여 예매 전투를 벌이는 에피소드가 나올 정도입니다. 근데 얘들도 실패.
SDCC가 원조 국밥집이라면 2006년 10월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뉴욕 코믹콘(NYCC)은 신흥 강자예요. NYCC는 2014년 행사에서는 참관객 15만1000명으로 같은 해 SDCC 참관객 인원을 제쳤고, 2015년에는 무려 17만명이 몰릴 정도로 세를 키우고 있습니다. NYCC는 리드팝(ReedPOP)이란 기업에서 주최하는데, 이번 코믹콘 서울 주최 측도 바로 이 리드팝입니다. 행사가 흥하면서 창궐하는 리셀러들(=되팔이)을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부터는 입장권 구매 절차가 복잡해지고 규정이 강화됐습니다. 시무룩.
☞서울 코믹콘 예매했습니다
서울 코믹콘은 그 출발점이 SDCC, NYCC와는 좀 달라요. 팬덤에서 출발한 덕후의 성지가 아니라 2008년 영화 '아이언맨'의 개봉 이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코믹스 원작 히어로물의 대중적 인기가 동력의 중심이거든요. 행사 안내문에서도 할리우드 유명배우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고요. 동시에 인기 애니메이션 성우 미팅과 코스플레이 대회도 엽니다. 1999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동인행사 코믹월드나 지난해 300여 기업이 참가한 서울 캐릭터·라이선싱 페어 등 코믹콘의 '팬덤(덕후) 컨벤션'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더 대중적이고 영화 산업의 영역을 서울 코믹콘이 나눠 가지는 모양새인데, 행사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브컬처 및 팝컬처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저변의 확대가 서울 코믹콘 개최의 밑거름이 된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지나치게 상업적인, 일회적인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오랜 생명력으로 장수하는 행사로 자리 잡길 기원해봅니다. 샌디에이고는 너무 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