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유튜버 꿈꾸는 비인간 아이돌 '펭수'
[쉽게 읽는 서브컬처-76] 덕통사고를 당했다. 중상이다. 기왕지사 입덕했으니 신자를 늘려야 한다. 포교에 나섰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대신 최애돌 사진을 쓰고 관심을 보이는 주변 사람들에겐 커피까지 사줘 가며 매력을 설파한다. 늘어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를 매일 확인하며 흐뭇해한다. 소속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굿즈 좀 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여느 아이돌 덕질과 다르지 않다. 그 대상이 남극에서 온 거대 펭귄 '펭수'라는 점만 빼고 말이다.
☞"펭-하(펭수 하이라는 뜻)." 못 말리는 펭귄이 왔다
EBS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와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펭귄 캐릭터 '펭수'가 화제다. 자이언트 펭TV는 EBS의 어린이 예능 프로그램이자 동명의 유튜브 채널 이름이다. 뚝딱이, 방귀대장 뿡뿡이, 뽀로로를 이은 차세대 인형탈 캐릭터로 독특한 설정과 출구 없는 매력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지난달 19일 방영된 'EBS 아이돌 육상대회'(이하 E육대)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말 그대로 아이돌급 인사가 됐다. 특히 유튜브 구독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13만명(10월 4일 기준)을 넘어섰다. 사인회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팬들이 몰렸고 EBS의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펭수 굿즈를 내달라는 성화가 줄을 잇는다.
펭수는 최고의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남극 출근 펭귄이다. 나이는 열 살. 남극유치원 졸업했다. EBS 최초의 연습생이자 새내기 유튜버다. 키는 210㎝, 몸무게는 93.9㎏이다. 큰 키 탓에 남극에서 따돌림을 당해 한국으로 왔다(그래서 왕따나 따돌림을 매우 싫어한다). 특기는 요들송. 인형탈 캐릭터는 몸짓 연기자와 후시 녹음 담당 성우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펭수는 몸짓 연기자가 목소리도 직접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버라는 방송 콘셉트에 맞게 유명 유튜버와의 협업도 잦다. 개그맨 듀오 흔한남매, 만화가 이말년, 체형 교정 운동법 전문 유튜버인 피지컬갤러리의 빡빡이 아저씨 등과 콘텐츠를 만들었다.
☞신흥 짤 부자로 등극한 남극 펭귄
펭수의 불붙은 인기에 기름을 붓는 건 수많은 짤방들이다. 기본적으로 웃는 상인 선배 캐릭터들과 다르게 펭수의 얼굴 무표정에 가까워 자막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애초에 요즘 유튜브 포맷을 의식한 제작진이 캡처하기 딱 좋은 자막을 통해 짤 생성을 유도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하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방영될 때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신선한 짤들이 산지직송으로 올라온다. 펭수 팬들끼리 서로의 애장짤들을 메신저로 교환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온갖 밈(유행)을 적극 활용한 덕분에 일상생활에서의 활용도도 높다.
☞EBS를 파괴하러 온 EBS의 구원자
'EBS답지 않은'. 펭수를 수식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다. 생긴 것부터가 사백안(四白眼·눈동자가 작아서 사방에 흰자위가 보이는 눈)인지라 아이들을 위한 캐릭터처럼 보이지 않는다. 성격도 남다르다. 교훈 대신 호통, 동요보다는 힙합, 정정당당보다는 꼼수다. 걸걸한 목소리로 솔직한 입담을 선보이다가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매니저(제작진)에게 억지 부리다 '못해먹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한다. 대선배 뽀로로에게 대한 라이벌 의식도 숨기지 않는다. 대선배 전화는 살포시 무시하고 셀카 삼매경에 빠지기도 하는 밀레니얼이다.
펭수는 요즘 아이들을 닮았다. '어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아이다운 아이 말이다. 자신들과 닮은 펭수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열광한다. 자이언트 펭TV를 연출한 이슬예나 EBS PD는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이상적이고 착한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만이 교육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초등학생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면서 펭수의 비(非)교육방송적인 면모를 변호한다.
이 PD는 PD저널에 기재한 글에서 자이언트 펭TV 기획의도에 대해 "어린이들을 아기 취급하지 않는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운을 떼며 "EBS는 아기일 때까지만 재미있는 채널이라는 편견을 부수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획 의도에 충실하게 펭수는 EBS의 선과 어린이 콘텐츠라는 틀을 착실히, 시도 때도 없이 넘는다. 덕분에 펭수의 팬 중에는 초등학교는 물론 대학교도 한참 전에 졸업한 '어른이'들이 많다. 아이와 함께 보다가 부모가 팬이 된 경우도 있다. 어린이 방송인데 괜찮냐는 질문에 펭수는 "전 연령 관람가"라고 응수한다.
펭수가 넓힌 건 EBS의 외연만이 아니다. 기존 EBS 캐릭터들도 펭수 덕분에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캐릭터성을 만들고 있다. E육대의 최대 수혜주는 펭수가 아닌 기존 EBS 캐릭터들이었다. 1994년에 데뷔한 뚝딱이는 선배부심을 있는 대로 부리는 꼰대 캐릭터를 소화하며 '뚝딱좌' '틀딱이'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방귀대장 뿡뿡이는 '선배님은 무조건 옳아'라는 짤과 함께 '알랑방귀대장'으로 불렸다. 영원한 히어로 번개맨은 파란색만 찾는 극한의 컨셉맨이 돼 버렸다. 기존에 구축한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요즘 예능식 양념을 더한 셈이다.
☞펭수의 무한도전은 성공할까
펭수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100만 구독 유튜버와 뽀로로를 넘어서는 초통령이라는 궁극의 목표다. 하지만 '힘든 사람들에게 웃음이 되어주고 싶다'는 그의 다짐은 벌써 달성한 듯싶다. EBS 최고의 스타를 향한 그의 날갯짓을 응원한다. 펭수야 꽃길, 아니 참치길만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