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가 선수인가? 그들만의 섬을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 놓기.
특별한 구분, 운동부. 운동선수.
저자는 지방의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농구를 통해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선수를 포기한 이후에 다양한 삶의 굴곡을 거쳐 지금은 청소년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운동부의 명과 암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며, 현재는 두 자녀의 학생선수 생활을 뒷받침하며 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학교 운동부 문화의 문제의식과 그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교사와 학교의 입장 또는 학교운동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육청 장학사의 입장에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조금은 있지만, 경험적 지식에 근거한 깨달음이기에 독자들에게는 설득력이 있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저자는 학교운동부의 어두운 측면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몸과 마음에 여러가지 상처를 얻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선수로 살아오면서 형성된 건강하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바탕으로 이를 이겨내며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학생 선수를 일반적인 학생들과 구분짓는 문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잘못된 문화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저항하기도 했다. 또한, 두 자녀를 모두 학교운동부 틀 안에서 농구선수로 길러낸 경험 속에서 학부모들의 다양한 행태도 경험했다. 이를 바탕으로 운동부 문화의 개선점, 학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 등을 하고 있기에 그 내용이 다소 거친 측면이 있더라도 공감이 되며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매일같이 학교운동부 관련 민원을 받아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근본적인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도대체 왜 학생선수를 위한 특별한 규정이 필요하며, 도대체 왜 일반학생들과 구분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은 바람직한 논리로 접근하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손쉽게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현실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 즉, 어른들의 삶이 연계된 하나의 시스템이기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이 시스템이 문제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수십년간 증상만 처방해 오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문제의 해결은 너무나도 간단할지 모른다. 학교는 학교이고, 학생은 학생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될텐데 말이다.
학생선수에게 학습권이란 무엇일까
학생선수들에게 '우리는 특별하다,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다.'는 사고방식을 주입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유망주들에게, '앞으로 너는 운동만 잘 하면 된다.'는 명제를 주입하며 신화적 믿음을 주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실제로 우리나라 학교 교육제도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우리 자녀가 운동선수가 되는 길에 학교 교육제도가 방해가 된다고 믿게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무리 살펴봐도 학교 안에는 더 이상 이런 신화적 믿음을 주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은데, 학부모들은 학생들은 지도자들은 왜 지금도 이런 세상이라고 믿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공식적으로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관련 역사를 통틀어 학생선수가 학교생활에 소흘해도 된다는 정책 방향이 설정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학생으로서 학교 생활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면 강조했지 소흘히 해도 된다고 안내한 적은 없다. 특별히 어떤 규정을 두거나 지침을 만들 필요도 없이, 어떤 학교의 학생이라면 그 학교의 교육과정에 따라 정규 수업을 이수하고 기타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학교운동부는 지도자 개인의 스포츠 팀 운영을 도와주는 제도적 형식이 아니라, 학교장이 책무성을 가지고 운영하는 법령에 근거한 교육활동이다. 따라서, 학생선수의 학사관리도 법령과 지침 그리고 상식적인 선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예로부터 일부 있어왔고, 그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사례들이 구전으로 전파되며 마치 '성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진 역사가 아니었나 싶다. 바람직하지 않은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잘 못된 믿음들 중 가장 대표적인 명제가 바로 '학생선수는 공부를 할 필요 없으며,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운동부' 혹은 '체육특기자'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성인들에게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 혹은 매일 자는 학생이며 밑바닥 성적을 깔아주는 고마운 친구들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학창시절에 (모든 운동부 학생들이 그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험한 운동부 친구들이 아마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며, 학생선수들에게 학교생활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체육특기자 제도의 역사와 성과, 그리고 그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수 차례 미디어의 심층취재 또는 연구논문 등으로 깊이있게 다루어진 바 있다. 나는 사회학적인 측면까지 고려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며 이 제도에 대하여 논의를 할만한 역량은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관련 정책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하는 업무 담당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느꼈던 점 정도는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3년 8월 현재, 대한민국 초중고에 재학 중인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크게 두 가지로 작동한다. 첫번째는 수업 결손을 어떻게 보충할 것인지의 문제다. 법률-시행령-시행규칙-교육부기본계획 순으로 이어지는 제도적 시스템은, 학생선수가 일정 시간 정규 수업에 참여하는 대신에 훈련과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학생선수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규 수업 대신 훈련과 대회 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의 최대범위를 제한함과 동시에, 후에 결손된 수업 분량만큼의 학습을 보충해야만 출석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즉, 이것은 학교라는 교육제도 안에서 유래를 찾을수도 없고 비교할 분야도 없는 '학생선수'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한 규정으로서, 학생선수의 훈련 및 대회참가를 제한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 운영되고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학교 안에서 오직 학생선수만이 특별한 형태의 '학생선수 출석인정결석 허용일수'라는 지침의 진로 지원 정책이 존재하며, 다른 진로 분야에서는 전국의 모든 초중고에 적용되는 이러한 지원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학생선수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학업 성취도를 규정하는 문제다. 구체적으로는 「학교체육진흥법」 제11조와 동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따라 최저학력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은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을 이수해야만 다음 학기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이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학교운동부와 학생선수 문화에 만연한 잘못된 오해로부터 출발한 학생선수들의 불성실한 학교생활에 대한 대책으로 학습의 책무성을 부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선수 출석인정결석 허용일수' 제도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반면에, 이 제도는 학생선수들에게만 적용되는 가혹한 처벌적 조치라는 목소리가 제법 있다. 2024. 3. 24.시행을 앞두고 있는 「학교체육진흥법」 개정안에 따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에는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 관련 내용이 삭제됨에 따라, 최저학력 미도달 시 다음학기 출전제한에 대한 구제방안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현행처럼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 이수로 구제받을 수 있음).
이러한 학생선수 학습권 보호 제도의 역사는 '학생선수가 학교생활을 등한시하는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하여 법률로서 이를 규정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일반학생들은 아무리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학습을 강제하는 지침이 없는데, 왜 학생선수들만 법률과 지침으로 이런 부분을 규정해야 하냐며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대가 바뀌고 부모들의 의식도 바뀌고 학생들이 운동을 하는 이유도 바뀌었기에 특별한 규정이 없어도, 학생선수들이 학교생활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공감한다.
저자는 본인이 학교운동부 문화에 그렇게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딸이 농구선수가 되려면 유급을 해야 한다는 현실과 유급을 해서라도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딸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보자면, 학생선수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학생이 고의로 '유급'을 선택한다는 것의 맥락은 다음과 같다. 또래보다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학생선수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에는, 즉시 대한체육회 선수등록을 하여 동학년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하기에는 경쟁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지도자는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학교교육을 포기하고 해당 종목의 기본적인 역량을 기르는데 모든 시간을 투자하여 경쟁력을 만들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교육기본법 제8조」와 「초중등교육법 제13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25조」를 명백하게 위반하는 행위다.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호해야 할 보호자의 책무성을 외면하는 것이며, 특히 의무취학 기간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명시되어 있다. 학교장은 이러한 학생을 인지하면 보호자에게 경고를 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읍면동의 장 또는 경찰의 협조까지 받아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단순히 법률을 위반한다는 개념을 접근하지 않더라도, 학생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결정적 시기의 보편적인 경험을 누군가의 판단에 의해 빼앗겨버린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행위를 학교교육의 한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학교운동부 관계자가 직접 제안을 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출석일수가 부족하여 유급을 하는 학생이, 출석하지 않는 기간동안 해당 학교에 나와서 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 누가 보더라도 아주 이상한 상황이다.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바로 이러한 행태들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로 출발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학생선수들을 위해 보호해야 하는 학습권은 단순히 수업에 참여하여 공부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반드시 누려야 할 국가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는 학생으로서의 경험'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러한 내용들을 법령이나 지침 등으로 특별히 규정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자연스럽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학생선수들이 학교교육 안에서 녹아들어가는 것이다. '학생선수'라는 법률적 용어를 학생에 방점을 두고 해석하느냐 선수에 방점을 두고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법률에서도 의무교육기간인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선수와 본격적으로 진로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고등학교 학생선수는 구별하여 다른 방식으로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러한 모든 규정들이 필요없는 바람직한 학교운동부 문화가 일반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운동부도 달라졌다. 지도자도 MZ세대인 세상이다. 학부모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 스포츠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의 언론보도 내용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우리나라 전문 스포츠인들의 문화는 일반적인 시민들과는 구분되는 아주 혐오스럽고 후진적인 세계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분명히 일부의 사례일텐데,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구시대적이고 폭력적인 그들만의 세계'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스포츠 분야에서는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언론이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 같아 아쉽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일부의 사례가 워낙 받아들이기 어렵고 충격적인 일들인데다가, 선진국이 되었다며 우리 사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부끄럽기만 한 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지도자들도 정말 구시대 학교운동부의 이미지 그대로 '무식한 운동기계'가 맞을까. 최근 만나본 젊은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다. X세대 지도자, N세대 지도자를 넘어 학교운동부 현장에도 MZ세대 지도자들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다를테고 달라야 한다. 요즘 젊은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은 느낌이다. 첫째, 매사에 당당하고 쿨한 느낌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학부모들의 청탁도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알고, 부당한 상황에서도 눈을 감고 외면하기보다는 할 말은 할 줄 아는 것 같다. 학교운동부지도자라는 직업에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느낌이다. MZ세대의 특징이 자신의 일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이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둘째, 개방적이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어볼 줄도 알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도 열려있다. 과거에는 선수 출신들이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너희들은 현장을 모른다. 이게 맞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보수적으로 반응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젊은 지도자들은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도 유연하게 반응하는 듯 하다. 아무래도 MZ세대 지도자들은 성장과정부터 그들만의 섬에 갇혀 살아오지 않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동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민감한 것 같다. 물론, 보수적인 시각에서 보면 책임감도 부족해보이고 과감한 접근을 넘어 무리한 시도도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인 흐름과 비슷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가 아닌가 생각한다.
학생선수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지금의 학생선수 학부모들은 70~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40~50대 세대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학창시절 학교운동부의 모습을 폭력과 촌지가 난무하는 세계, 부당함이 있어도 참아내야 하는 세계, 학교 안에는 존재하지만 학교와는 다른 이중세계인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섬'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부모의 입장에서 선수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자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일반적인 대학입시와는 다르게, 스포츠 분야는 종목별로 좁디 좁고 폐쇄적인 접근하기 어려운 좀처럼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불안한 마음들은 정보에 접근하거나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유발한다. 학교운동부의 고질적인 비위들은 대부분 이런 맥락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분명한 것은 학교운동부 문화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대교체의 흐름이 일반적인 조직보다는 다소 느릴지 몰라도 학교운동부 현장에도 젊고 당당한 지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검은 유혹에 넘어가는 지도자들보다는 소신껏 당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일반적인 MZ세대들도 더 많은 보수를 주는 곳보다는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불합리한 것을 견디며 불편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마음 편하게 일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학부모들도 이런 맥락으로 달라지고 있는 학교운동부를 바라보고, 미래지향적인 학교운동부 문화를 위해 학부모들이 먼저 구시대적인 문화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운동부를 학교와는 다른 이중적인 문화를 가진 곳으로 바라보고 그 문화 속에 있다가 어려운 순간에만 학교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학교운동부 역시 학교에서 책무성을 가지고 운영하는 다른 교육활동과 다르지 않다는 시각에서 접근했으면 한다.
학교운동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 사회에서 학교에 기대하는 역할도 변화하고 있다. 체육특기자 진학 시스템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준비된지 오래다. 하지만, 아무리 바람직한 시스템이 도입되었다고 해도 그 속의 사람들이 이를 악용한다면 그 취지를 실현하기 어렵다. 이제는 체육특기자 10명 모집하는 학교에 10명만 지원하는 일, 내가 원했던 학생이 아닌 다른 학생이라며 사실상 그 학생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열쇠는 학부모들이 쥐고 있다. 모두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바람직한 문화를 함께 만들어갔으면 한다.
이 책의 저자가 학부모들에게 당부하는 내용도 비슷한 것 같다. 첫째, 경기가 끝난 직후 학생들을 격려해주라는 것이다. 그 날의 경기와 관련된 반성과 성찰은 학생과 지도자의 몫이며, 학부모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학생을 혼란하게 만들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지도자와 술먹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는 것조차 구차하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셋째, 다른 학생이나 지도자에 대한 뒷담화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모의 한 마디로 인해 학생간의 갈등, 지도자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넷째, 선물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라. 자녀의 담임교사에게는 절대로 하지 않는 명절 선물, 경조사 선물이다. 운동부 지도자에게만 유독 선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안주고 안 받는 것이 진정으로 지도자와 내 자녀를 존중하는 일이다.
이 책은 학생선수 대상 인권교육 자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읽었던 기억이다. 학생선수 학부모와 학생선수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물론, 저자가 겪었던 학교운동부 문화와 지금의 학교운동부 문화도 다르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안의 상당한 부분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제도적으로 실천되고 있기도 하다. 과거와는 다른 학생을 과거와는 다른 지도자가 과거와는 다른 환경의 학교운동부 속에서 지도하고 있다. 이 속에 있는 모두가 행복한 밝고 건강한 학교운동부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