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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Aug 09. 2023

1980년대생, 학부모가 되다.

우리는 어떤 학부모인가.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인가?

'1980년대생'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1980년생이고 대학교 학번은 99학번이다. 나이가 많아보이고 싶을 때는 90년대 학번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젊어보이고 싶을 때는 80년대에 태어났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박쥐같이 살고 있다. 세대를 구분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대별 정의에 따르면, X세대라고 하기에는 조금 젊고, MZ세대라고 하기에는 조금 늙었다. 누군가는 그래서 내 나이 대의 사람들을 '낀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젊고 깨어있는 세대의 상징이었던 '386세대'가 정년퇴임을 하기 시작했고, 버릇없는 요즘애들이었던 X세대가 직장 내에서 꼰대가 되어 있는 세상이다. 세상 참 빠르다.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자각하고 있기에는, 속해 있는 조직에서 비교적 젊고 참신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이도 이미 40대에다가 역할까지 완벽한 꼰대가 되어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과거와는 다른 행태를 보이는 학부모' 역시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교사로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민원을 받아내는데 급급하다보니, 내가 내 아내가 바로 초등학생 학부모란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볼 필요성이 있는 듯 하다.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세대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주입받으며 성장했다. 1980년대 출범한 프로야구, 프로축구, 농구대잔치 등을 보며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었던 세대이며, 가정용 게임기로 집에서 게임을 하고 전자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 게임을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유치원은 다니지 않았으며, 국민학교 때도 학원은 거의 다녀본 적이 없다. 국민학교 때 친구들은 웅변학원, 컴퓨터학원, 피아노학원, 주산학원 등의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이후에는 '국/영/수/사/과' 교과의 대형 단과학원 강의를 수강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대학입학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공식에 따라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대형 입시학원에서 만들어주는 대학배치표를 참고하여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입학시험의 형식은 학력고사에서 발전한 수학능력시험이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하는 단계였으며, 수학능력시험 고득점으로 내신 등 기타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당시의 학생들에게는 우리나라 어디에 살던 어떤 학교를 졸업했건 간에 우리나라 모든 학생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문화를 즐기며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학교생활은 구체적으로 어땠을까. 장난이 심한 학생이었던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정서가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선생님들께 참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난다. 혼이 났다는 것은 이른바 '사랑의 매'와 '기합' 등의 체벌까지 포함된 개념이었다. 중학교 이후로는 무서운 선생님이 많아서 그랬는지,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오히려 혼이 나는 빈도는 훨씬 적지 않았었나 싶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체벌을 당하는 횟수도 거의 없었고, 체벌을 당하더라도 크게 기분이 상하거나 마음에 담아두는 일도 더 적어졌던 것 같다. 당시의 일반적인 학교 문화가 그랬기 때문이었겠지만, 학생들이 싫어하는 선생님 역시 매를 드는 무서운 선생님이 아니라 말을 함부로 하는 선생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언어로 교육적 내용이 아닌 비난과 저주 등을 퍼부었던 선생님들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뭐, 그런 선생님이 있었다고 해도 그 순간이 지나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선생님들은 어떤 분이었을까. 주관적인 기억과 느낌을 통계적으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겠지만, 딱 드는 생각은 절반 정도의 선생님은 특별한 느낌이 없이 대부분 비슷하셨던 것 같다. 별 다른 기억도 에피소드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루에 6~7교시 수업을 했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1~2교시 정도는 정말 재미있거나 카리스마있게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계셨고, 1~2교시 정도는 정말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무서운 선생님도 계셨다.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고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당시의 내가 가지고 있던 느낌을 그대로 떠올려보면 하루에 1~2교시 정도는 정말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르칠 의욕도 없고 교사로서의 역량도 없어보여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학교에 대한 큰 불만은 없었으며 옆 반과 우리 반 선생님을 비교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냥 '올 해는 운이 정말 없구나.' 정도의 생각만 하고 별 신경은 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수업시간 외의 학교생활은 어떻게 보냈었을까. 내 경험에 한정하여 이야기하자면, 방과 후 시간에는 거의 매일 학교에 남아서 농구를 하거나 축구를 했다. 저녁을 먹을 시간 즈음하여 집에 도착하였고, 저녁식사 이후에는 학원을 가거나 학교에서 부여한 숙제 중심의 공부를 했다. 사실, 공부라는 것이 학교의 숙제를 하고 문제집을 푸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학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학교의 수업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수업이 필요하거나, 반대로 학교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때 개별화된 학습이 필요할 때 학원을 찾지 않았었나 싶다. 나 역시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대형단과학원 위주로 필요한 경우에만 잠깐씩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학생들 역시 부모님께 학원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덕분에 학원 때문에 학생의 삶에 쉼표가 없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의 학생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당시에도 지금처럼 특정 지역에서는 지금처럼 학원을 반드시 다녀야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동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제 아무리 학원을 다닌다고 해도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서울대 수석이 문자 그대로 '교과서를 중심으로 학교 수업에 충실했던' 수험생이었고, 서울대 합격생의 일반적인 모습도 평범한 집안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실제로 그렇지 않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지금의 학부모들은 대학입학을 학생의 재능보다는 장기간의 자원투입과 관리, 즉 부모가 만들어내는 결과로 생각하고 자녀의 역량과 부모의 지원을 구별하지 않는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다.


어찌어찌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어땠을까. 일단, 우리 세대는 이른바 '학생운동'에 큰 관심이 없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90년대 초반 학번 선배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이기적인 녀석들이라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학생회장도 비운동권 출신이 당선되는 등 말 그대로 변화의 흐름은 분명히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IMF 등으로 어려운 가정환경이 일반적이었기에 낭만적인 대학생활보다는 내실있는 대학생활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아니었을까. 그래도 99학번은 선배들한테 저런 이야기라도 들었던 마지막 세대라 그런지 좋은 학점을 그렇게 바라지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후의 후배들은 말 그대로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바람직한 대학생의 모습이 지배적이었다. 아마도,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시기로 접어들면서 대학생에게 기대하는 모습에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직업의 선택은 어떤 분위기였을까. 나는 체육 교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적의식이 있어 고3 수험생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체육교육과에 입학하고보니 꿈이 교사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동기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체육 교사가 되겠다고 이야기하는 학생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소수였다. 다른 학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른바 '명문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기껏 교사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지'라는 분위기가 더 강했던 느낌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결과적으로는 동기들 중 가장 많은 단일직업의 비율은 교사가 된 것 같지만, 분명히 그 때의 분위기는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봐도 그렇고, 주변의 다른 전공 친구들을 봐도 그렇고 분명히 교사나 공무원보다는 '00사' 류의 전문직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떻게 어떻게 살다보니 40대가 되었다. 40대라고 하면, 결혼을 했다면 일반적으로 학부모가 되었을 확률이 높고, 직장에서는 팀장급 이상은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개인사업을 잘 했다면 시행착오를 거쳐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는 나이 쯤 되었다. 한 사람의 세계관은 자신의 경험적 지식에 근거하여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1980년생인 내 이야기가 우리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일반적인 사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대략적으로 1980년생이 살아온 시대적 경험과 사회적 분위기는 비슷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기도교육청 산하 연구기관에서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인 우리 세대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어떤 내용이길래 연구보고서 발표 이후에, 정식 도서로 출판까지 했을까. 1980년대생 학부모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1980년대생의 일반적인 특성


이 연구보고서에서는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를 넓게는 X세대의 끝자락과 밀레니얼 세대의 초중반 연령에 걸쳐 있는 집단으로, 좁게는 밀레니얼 세대와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개인과 조직을 계약관계로 이해한다. 직장에서의 장기근속보다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보상을 요구한다. 둘째, 디지털 문화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며 이를 멀티태스킹으로 동시에 소화한다. 셋째, 타인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매우 넓은 네트워크와 다양한 수단으로 정보에 접근하기 때문에, 특정 전문가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넷째,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조직의 참여와 협력에 대한 욕구는 높다. 자신을 조직의 일부로 생각하지만 개인을 더 우선시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고, 상호 협력하는데 개방적이다.


주변을 돌아볼 것도 없이 나는 어떤가 생각해본다. 어떤 부분은 맞는 것 같은데 또 어떤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직장에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 '그냥 나' 등의 정체성은 구분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 역시 공감하는 특징이며,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판단을 내리는 과정 등에도 공감한다. 나는 아무래도 공무원으로 오래 근무하다보니,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마음보다는 무난한 장기근속에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된 것 같기는 한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연구에서는 1980년대생의 성장기와 현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밀레니얼 맘'들은 대체로 고학력이며 알파걸에서 슈퍼맘이 된 예전과는 다른 새 부모 유형이다. 둘째, 아날로그 세대의 경험과 디지털 세대로 넘어가는 경험을 모두 한 '아나털' 세대이다. 셋째, 10대 시절 아이돌 팬덤 문화를 만들어냈던 세대이다. 넷째, 이른바 '이해찬 세대'로 야간자율학습 폐지, 각종 특기자 제도 도입 등으로 과도한 공부에서 탈출하기 시작한 세대이다. 다섯째, 일부는 극성 엄마들 이른바 '맘충'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연구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아빠가 자녀의 학교 일에 등장하는 빈도는 예나 지금이나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학생의 아빠가 학교에 간다는 것은 큰 사고를 쳤거나 큰 사고를 당했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반적인 학교생활 중의 일들은 아무래도 엄마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련된 신조어 역시 '맘'이 합성된 사례가 많다. 연구에서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었다.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의 특성


이 연구보고서는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초등학생 학부모 7명과 심층 면담을 통해서 1980년대 초등학교 학부모의 특성을 도출하였다. 그 내용을 그대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가 학교에 기대하는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에서 가장 역점을 두기를 기대하는 것은 학업성취가 아니라 '인성지도와 공동체 생활'이다. 학업 성취를 모든 것의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던 과거의 학부모와 구별되는 점이다. 둘째, 학교의 중요한 역할로 자녀의 창의성을 기르고 잠재력과 재능을 발견하는 것을 기대한다. 초등학교 수준의 교과지도는 가정에서 부모가 직접 할 수 있지만, 잠재력과 재능 발견은 가정에서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은 '교우관계,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등의 부정적인 경험이다. 자녀가 학교생활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부정적인 경험을 우려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연루되거나, 언어폭력에 시달리거나, 친구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서 집단 따돌림 같은 걸 겪게 되는 상황을 걱정한다.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학교교육과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학교 참여와 관련해서는 방관자같은 태도를 취하며 실제로 잘 참여하지도 않는다.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의 참여를 요구하는 부분은 다양하지만 늘 인원이 부족하다. 그래서 학교에 참여하는 소수의 학부모가 여러 분야에 중복하여 참여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들 중에는 학교는 반드시 가야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다. 학교 밖에서 체험할 수도 있고, 대안학교를 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상황을 경험하면서 더이상 학교는 무조건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버지의 관심과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학창시절에 비추어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을 구분하여 접근한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자녀의 교육 성취를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을 취하며, 나머지 대부분의 부분은 어머니가 담당하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친근한 멘토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니저 또는 플래너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녀의 학습을 미리 설계하고 진행과정을 모니터하고, 상황을 고려하여 실행을 수정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들 중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사교육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어머니들은 자녀를 사교육에 보내지 않으면 학교 공부를 못 따라갈까봐 불안해 한다.


1980년대생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교사와 소통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과거의 학부모들과는 다르게 교사에게 전화를 하는 심리적인 문턱이 낮으며, 자연스럽게 교사와 전화 연락을 한다. 반대로 정보를 제공받는 방식은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등을 선호한다. 학부모들 사이의 소통은 맘카페 등을 편하게 생각하지만, 직접적인 모임이나 반모임 등의 공동체 성격의 모임 등에 대한 선호도는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시사점 및 제언


이 연구보고서는 위에서 이야기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있다.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제언하고 있는 항목별로 내 생각을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호명된 학부모에서 주인된 학부모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교육의 3주체 중 하나지만, 지금까지 지원자, 보조자, 봉사자의 역할과 기능으로 제한되었으며, 대부분의 학교가 학부모들의 참여 수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에 학부모의 참여를 확대해야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제언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연구자들은 '학부모가 주도하는 학교 참여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교육은 전문가들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대표성은 없겠지만, 내 주변의 학부모들도 자녀의 학교에 방문하거나 자녀의 일로 교사와 상담하는 것을 반기지는 않는 것 같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학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와 민원들도, 그 근본적인 원인은 의욕만을 앞세워 신중하지 못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발생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수백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교교육의 방향성은 전문가들의 신중한 판단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학생과 학교의 관계, 학부모와 학교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항상 조심스러워야 하며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양적인 확대나 확산보다는 질적인 부분에 더 관심을 가지고 학교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둘째, 소문난 교육정보에서 검증된 교육정보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부정확한 학부모들 사이의 소문이나 자신의 학창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생활을 판단하고, 사교육 영업전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연구에서는 공교육기관이 제공하는 정보가 학부모 알리미 수준의 정보공시에 그치고 있다며,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 부분 역시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우리나라 학교생활기록부는 그 어떤 나라의 학교생활기록 양식보다 세부적이다. 선진국의 성적표는 영어 A, 수학 B... 이것이 다인 경우가 많다. 정말 꼭 필요한 경우에는 보호자를 학교에 직접 호출하여 세부적인 상담과 안내를 하기 마련이다. 학교는 보육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이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학교에서 과잉 정보를 생산해내며 학생과 학부모를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학부모는 조금 더 학교를 믿고, 자녀를 믿고 자녀와 더 대화하는 방식으로 학교교육에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셋째, 한방향 소통에서 쌍방향·다방향 소통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빠르고 정확한 정보전달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 방향의 소통이라는 점이 아쉽기 때문에 쌍방향·다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학교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학생의 교육과 관련된 문제는 신속성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정확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부모나 교사 모두 가능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며, 조심스럽게 진중하게 천천히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넷째, 한 쪽 교육관에서 양 쪽 교육관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인성과 공동체 생활, 창의성과 잠재력, 재능개발 등에 동의하지만, 대개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학업성적과 입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교육관 차이로 아이들이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제언에는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하였다.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집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1006655




이 연구보고서는 2021년 진보교육감 재직 당시의 경기도교육청 산하 연구기관에서 수행된 것으로, 학부모와의 더 많은 소통과 학교 운영 과정에서 학부모 참여 기회의 확대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다. 최근 학부모의 과도한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민원이 이슈가 되는 흐름과는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다만,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이 어떤 세대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데는 참고할만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학부모 세대에 바로 나도 포함되어 있기에 더 눈길이 가는 연구보고서의 제목이기도 했다.



교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교육청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는 지금까지, 학부모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조심 할 수 밖에 없는 참 어려운 대상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던 부분도,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학부모가 되다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교사이기 전에 장학사이기 전에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학부모인가를 돌아볼 수 있었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우리 아이의 교사와 학교를 힘들지 않게 하는 학부모가 되기 위해 정신을 차리며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




*이 글을 바탕으로 다시 쓴 글이 격월간 ‘민들레’ 제149호에 실렸습니다.

브런치 덕분에 민들레 제132호에 이어 두 번째 영광스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mindle.org/35/?idx=16422646&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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