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교과 교사의 삶과 전문성, 경험적 지식과 내공, 태도와 철학.
전용진, 너무나도 만나보고 싶었던 선배 교사의 이름
군 전역 이후 사립학교 교사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원하지도 않는 학교에 발령을 받지는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립학교 기간제교사를 하며 일을 배우고 경력을 쌓아, 사립학교에서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커리어를 쌓고 사립학교에서 좋아하는 교사상이 되어 정교사로 뽑힐 가능성을 높이고자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배운 것이 큰 힘이 되어 주었으니, 나름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근무하는 동안 가능한 많은 일을 하고 많은 경험을 하여 내공을 쌓는 것이 목표였기에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임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수업 역량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이 많이 아쉬웠었다. 체육 교사 커뮤니티와 교육청 직무연수 계획 등에는 수업 잘 하는 선배들의 배우고 싶은 사례가 넘쳐났지만, 일과 중 직무연수 참여를 위한 출장은 기간제교사가 욕심을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느꼈었다. 그들의 경험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서면 기록물을 간접적으로 접해보는 정도가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직접 만나서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정교사가 된 이후에 실천해보기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만나보고 싶었던 선배 교사의 이름들 중 하나가 바로 전용진 선생님이었다. 교실에서 사격 수업을 하신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기에 너무나도 궁금하고 배우고 싶었다. 영어듣기평가처럼 체육 교과 영상평가를 하신다는 이민표 선생님, 체육 수업시간에 영상을 촬영하여 동작분석을 하는 수업을 하신다는 이문표 선생님 등 너무나도 궁금하고 배우고 싶은 선배님들이 많았다. 책에서 전용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교육으로 무엇인가를 해보겠다는 깊이있는 철학이나 확고한 목표 같은 것은 없었지만, 좋은 체육 교사 부끄럽지 않은 수업을 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립 중학교 신규 발령 이후 3~4년 간 교육청에서 개설한 거의 모든 체육 교과 직무연수에 참여했었다. 드디어, 선배님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이 육성으로 설명하는 수업사례는 그 자체로 마침내 좋아하는 스타를 만나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요즘 말로 이른바 '성(공한) 덕(후)'가 된 것 같았다. 선배님들이 이야기와 가지고 계셨던 수 많은 수업자료들은 정말 보물창고와 같다는 느낌이었다. 하나라도 더 얻어가려고 하드디스크를 들고 가서 나누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파일을 옮겨담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느낌도 들었다. 그랬던 선배님이 수업의 성찰 기록을 책으로 내셨다고 하니, 살펴보고 싶어 진작에 책을 구매해 두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 동안이나 읽어보지 못했었다. 숙제를 하는 것처럼 최근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 동안, 나라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생각의 기록, 글쓰기. 그 놀라운 힘
이 책은 전용진 선생님께서 30년이 넘는 교직 생활동안 계속해오고 있는 '수업 일지' 글쓰기 기록물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이다. 그 오랜 세월을 중단없이 계속하여 수업일지를 써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이다. 왜 수업일지를 쓰기 시작하셨고, 이를 통해서 어떤 경험을 하셨기에 이토록 오랜 시간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전용진 선생님은 수업을 잘 하는 좋은 체육 교사가 되고 싶었고, 이를 위해서 고민하던 중 한 선배교사에게 '수업 일지를 써 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듣고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글이라는 것이 쓰다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선배 교사의 입장에서 이것을 이야기하셨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텐데, 이걸 그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하고 계시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생각을 기록하고, 그 날의 경험을 기록한 글. 기록으로 남겨진 삶은 그 날이 지나고 미래의 어떤 순간에 돌아봤을 때, 전혀 다른 모습과 영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전용진 선생님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반성하고, 깨닫고, 배우며 성장하셨다고 한다. 특히나 인상적인 점은, 그 날 그 날의 생각을 넘어 감정을 정말 잘 표현하며 기록하셨다는 점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정리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참 멋있어 보였다. 물론, 어딘가에 공개하겠다는 전제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기 위하여 쓴 글이기에 솔직한 내용들을 쓸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참 감성적인 분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에 왜 가끔씩이라도 글을 쓰고 있을까. 솔직히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누군가 내 글을 봐 주었으면 하는 관종스러움도 있을 것이고, 내가 사실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생각이 깊은 사람인 척 하고 싶은 허세도 있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글쓰기는 인간의 본능적인 성취감을 주는 행위인 것 같다. 깊이있게 생각할 것 없이, 스포츠가 그렇듯이 그냥 기분이 좋아지고 성취감이 든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때의 내가 했던 생각과 경험을 다시 보면서 '아 그 때는 그랬지'라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느껴지기도 한다.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나중에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어딘가에 어떤 방식으로든 글, 사진,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스스로에게 의미를 주는 것 같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정기적이지는 않더라도, 글쓰기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내 동료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
후배 교사들을 만나면 어느 학교에 근무하는지 물어본 다음, 곧바로 이어지는 후속질문으로 동료 체육 교사가 누구인지를 묻게 된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나를 만났던 선배님들, 장학사님들 역시 나를 만나면 이름과 재직학교 다음에 누구랑 같이 근무하는지를 물어보셨던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이 걸 물어보는 이유는 누구와 함께 근무하느냐에 따라서, 내 앞에 있는 이 친구가 지금 어떤 수업을 하며 무엇을 배우고 있을지 그려지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동료 교사들로 인한 어려움이 예상된다면 '다음 학교에 가면 새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는 '반면교사로 삼아라.'는 꼰대같은 위로가 이어지며, 반대로 체육 교과 분위기가 좋고 배울 것이 많아보인다면 '소중한 시간, 옆에 있을 때 많이 배우라'고 격려를 하게 된다. 그만큼이나 동료 교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일도 많고,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인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행복하게도 좋은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했었다. 복을 정말 많이 받은 사람인 것이 확실하다. 기간제 교사 시절, 수업에 대해서 이렇다 할만한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교사로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와 몇 가지 스킬 등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반면교사로 삼으며 배웠던 것들도 있었다. 공립학교 정식 발령 이후에는 중학교에서만 근무했지만, 기간제교사로 근무했던 곳은 사립고등학교 였기에 짧게나마 사립학교의 분위기와 조직문화 그리고 고등학생의 삶에 대해 배울 수 있어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내 첫 정식발령 학교는 정말 감사하게도 작은 규모의 중학교였다. 왜 감사한가 하면, 작은 학교였기 때문에 초임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학년을 통째로 내가 다 맡아서 수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립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했을 때, 3개 학년을 모두 걸쳐서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다양한 수업을 할 수 있어 좋기는 했지만, 모두 짜여져있는 평가계획과 교육과정에 따라 동학년 선배교사의 수업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어 수동적인 수업을 할 수 밖에 없어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데, 첫 학교부터 내 수업을 내가 직접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이, 나를 기쁘게 맞이해주셨던 함께 근무하게 된 선배님들은 모두 젊고 열정적인 분들이었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학교부터 좋은 동료 교사들로부터 배우며 하고 싶은 수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당시에는 미쳐 몰랐었다. 물론 그 학교에 근무하는 5년 내내 한결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내가 교직의 출발점부터 좋은 환경에서 경험적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내가 소속된 교육지원청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강남'에 있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첫 학교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남지역의 학교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학부모로부터 시달리거나 버릇없는 학생을 만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첫 학교의 임기를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반대로 학부모가 너무 무관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배울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첫 학교가 얼마나 행복한 곳이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진짜 강남 분위기'인 학교로의 발령은 큰 두려움이었다.
때마침, 바로 옆에 그동안 지도에 아무것도 없던 동네에 큰 거주지가 조성되면서 새로 학교가 생겨났고, 교사의 입장에서 신규 개설되는 학교는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인기가 없었다. 반면에, 학교의 입장에서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사들이 필요하기에 정책적으로 초빙교사나 전입교사로 모셔올 수 있는 교사의 수가 기존 학교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얍삽한 나는 이러한 맥락을 이용하여, 새로운 학교로 가서 '체육 왕국'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침, 해당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체육 교사상과 내가 비슷했기에 초빙교사로 두 번째 학교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수업과 다양한 체육 관련 프로그램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체육 교사 선배님을 만날 수 있었고, 선배님께서 힘을 실어주셔서 교장님과 교감님도 내가 하는 일들을 예쁘게 봐주셨다. 덕분에, 나는 두 번째 학교에서 하고 싶은 수업을 마음껏 하며, 신설학교의 구석구석에 체육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며 다양한 경험적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시기였다.
다음 근무했던 학교는 그야말로 초미니 여중이었다. 체육 교과 교사가 나 외에 다른 한 명밖에는 없었다. 처음으로 학교 안에서 체육 교과 교사 중 가장 선배가 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을 하기 위해, 후배 교사에게 먼저 하고 싶은대로 마음 껏 해보라고 하면서 교과협의회를 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는 오히려 우리 교과 안에서의 협의가 아니라, 학교 내 모든 교사가 협의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학교는 서울의 역량있고 열정적인 교사들이 다 모여있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모든 수업시간에 아름다운 미래지향적, 학생참여중심, 과정중심평가를 실천하고자 교사들이 노력을 하는 학교였다. 학교라는 직장에 출근을 하는 교사의 마음이 아니라, 배우러 등교하는 학생의 기분으로 동료들로부터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배울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시도들을 하면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참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행복한 시기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학교에서 가장 크게 배웠던 점이 교육적 노하우와 교사로서의 전문적 역량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잘 준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는 사실, 즉 '교사는 항상 학생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며, 때로는 비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휼륭한 교사들이 모여서 함께 노력을 하더라도, 학생의 입장에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너무 열정적인 교사들이 모여서 이상적인 지향점을 위하여 달리다보니, 학생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일년 내내 숨 쉴 틈이 전혀 없는 마치 '일년 내내 정기고사 기간이 된 것 같은 부담감'을 호소했었다. 물론, 또래 남학생들과는 다르게 뭐든지 열심히 하는 여학생들의 특성때문에 현실화된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교사의 의도가 좋고 바람직한 방향의 수업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항상 최선의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가르치는데만 집중하다보면 배우는 사람을 놓칠 수 있기에, 항상 학생의 입장에서 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 부분의 중요성을 이전에는 체감하지 못했었다.
교육청 생활을 하기 전 마지막 학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배울 수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적 지식을 폭발시키면서 체육 교사로서 과거보다는 나아진 내실있는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삶이 진행되다보니 너무나도 짧게 있던 학교가 되어 아쉬운 마음이 남는 곳이다.
이 책을 쓰신 전용진 선생님의 30년 교직생활과 비교하면 나의 현장 체육 교사 경험은 아주 짧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오신 길에 겪으며 생각하셨던 내용을 보며 공감이 되는 부분이 참 많은 것을 보면 과거 우리 체육 교과의 모습이 어땠는가 괜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감히 비할바가 안 되지만, 걸어오신 길의 순간순간에 하셨던 생각과 내가 했었던 생각이 비슷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헛된 시간을 보냈던 것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나는 어떤 동료 체육 교사였을까
전용진 선생님은 책을 통해 학교 안에서 만났던 선배 교사들과의 갈등과 배울 수 있는 선배 교사에 대한 갈증, 학교 밖에서 만났던 배우고 싶고 함께 고민을 나누었던 동료 교사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 역시 반면교사로 삼았던 동료교사도 있었고, 존경심이 절로 나오는 배울 수 있는 동료교사도 있었고, 학교 밖에서 만났던 영감을 주는 동료교사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나는 어떤 동료 체육 교사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운 생각만 든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었고 평생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며 살 수 있을 것 같아 체육 교사가 되고 싶었다.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었고, 교육에 대한 철학이나 포부, 학생들을 충분히 지도할 수 있는 압도적인 양의 지식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하게 되었고 단지 교사가 되는 과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만을 쌓은 채로 교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기와 과정 모두 바람직하지 않았으니 시작부터 무엇인가 잘못되었던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스스로 부족함은 잘 알았고 배우려고 노력은 했으니 완전히 꽝은 아니었다고 아주 관대하게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나는 전용진 선생님처럼 선배 교사에게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런가 보다.' 혹은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평화를 사랑하고 전투력이 부족하여 전쟁은 피하려는 쫄보이기도 했지만, '나만 잘 하면 된다.'는 무한 이기주의 아니었나 싶어 부끄럽기도 하다. 어쨌든 내가 만났던 동료 교사들은 선배나 후배나 대부분은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고립감을 느끼거나 좌절감을 느껴본 일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나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본 것이다. 내 동료 교사들에게 나는 어떤 교사였고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학생들에게 나는 괜찮은 교사였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학생들 앞에서는 멋진(쿨~한)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학생들은 나를 그렇게 기억해줄까. 나는 동료 교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들은 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운 생각만 남는다. 20대 후반의 후배교사 김의진이 40대 선배교사 전용진을 닮고 싶어 했던 것처럼, 지금의 20대 후배교사들이 닮고 싶어하는 40대 선배교사의 삶을 살고 있을까. 자신이 없고 부끄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