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가볍고 즐거운 농구 이야기
스포츠의 본질은 즐거움이다.
스포츠의 본질적 요소 중 하나가 신체활동이다. 단순한 투입과 산출의 수학적 관점에서 스포츠를 바라보면, 사람의 몸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에너지의 소모를 유발하는 신체활동은 아주 비효율적이고 쓸데없는 멍청한 행위라고 판단할 수 있다. 자연과학적 측면과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스포츠의 이로움을 증명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 왔지만, 스포츠가 부상과 상해의 위험성을 동반한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스포츠를 즐겨왔고 즐기고 있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포츠의 본질이 놀이와 같은 맥락인 '즐거움'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뛰어다니고 쫒아가는 장면, 험악한 사춘기 청소년들이 빈 공터에 공 하나만 있어도 하나가 되어 축구를 하며 웃는 장면, 삶에 찌든 직장인들이 밤마다 러닝 크루를 만들어 달리고 또 달리는 장면...이런 모든 장면들이 '재미'와 '즐거움'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 스포츠에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즐거움이다.
이러한 즐거운 스포츠의 세계에 언젠가부터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가 자리잡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던 스포츠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고 도덕적인 부분을 요구하며 경제적인 수단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스포츠 세계의 비인간적인 사건사고들과 비교육적인 사례들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학교체육 그 중에서도 지금은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업무를 담당하는 지금 이 시점의 나에게도 선수로서의 진로와 관련된 세계의 부조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마주하게 될 때가 많다. 그런데 심각하고 엄숙해지는 이 순간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에 빠져들어 땀을 흘리며 즐거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 스포츠의 본질은 심각한 의미를 찾기 위한 목적에 있지 않다. 스포츠는 그냥 즐길 때 가장 가치있는 문화다.
농구의 재미, 농구의 즐거움
한미일 3국의 의학 드라마를 비교한 우스개 소리가 있다. "미국 의학드라마는 의사가 진료와 수술을 하고, 일본 의학 드라마는 의사가 교훈을 주며, 한국 의학드라마는 의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역시 영화, 드라마, 만화 등의 좋은 소재이기 때문에 수 많은 작품들이 사랑을 받아왔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봐왔던 수 많은 스포츠 영화를 떠올려보면 "미국 스포츠영화는 사실을 전달하고, 일본 스포츠영화는 교훈을 주고, 한국 스포츠영화는 감동을 준다."고 정리할 수 있는 것 같다. 형태는 달라도 스포츠영화의 공통점은 진지하고 무겁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엄청난 삶의 무게를 이겨내는 주인공, 갈등의 폭발, 기적같은 승리,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장면 등 무겁고 진지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리바운드는 농구라는 재미있는 스포츠를 소재로, 심각한 주제의식 없이도 가볍고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고깝게 색안경을 끼고 보자면 이 영화 역시 지적할 부분이 한 둘은 아닐 것이다. 영화를 통해서 당시의 학교운동부 운영 과정에서 학부모 부담 경비는 얼마였는지, 정상적인 경로로 학생선수들이 한 학교에 모이게 되었는지, 지도자의 계약은 법률적 테두리 안에서 잘 이루어졌는지, 선수등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 현실적인 고민거리 역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리바운드'는 한 고등학교 농구부의 실제 사례를 아주 가볍고 즐겁게 풀어낸다. 생각해보라. 고등학교 농구 선수가 삶의 무게에 대해 얼마나 큰 고민을 하겠는가. 농구가 재미있어 농구를 시작했고, 농구를 한창 배워가는 과정에서 깊이를 더해가는 재미를 느끼기도 바쁠텐데, 농구란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철학적으로 고민한다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이겠는가. 실제로 대부분의 학생선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이 스포츠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지, 이 스포츠를 통해서 내가 어떤 것들을 이루어 내겠다는 중압감으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영화 속에서 우당탕탕 살아가는 고등학생 청춘들의 삶에서 농구는 즐거움 그 자체로 보였다. 허세도 부리고 갈등도 하며 싸움도 하지만, 같이 땀을 흘리는 이유를 거창하게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딱 남자 고등학생의 시각에서 그냥 농구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농구를 하기 위해서 특별하게 무엇을 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위치에서 농구를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농구를 하는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한 대회에서 기적같은 준우승을 이루어냈고, 프로농구선수도 많이 배출하였지만 어떤 큰 그림 속에서 계획적으로 이루어낸 성과는 아니었다. 단지 농구가 좋았고 이기고 싶어하는 우리네 흔한 고등학생의 정서가 느껴지는 듯 했다. 모처럼, 부담 없이 '아! 나도 학교다닐 때 농구에 미쳐서 저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기억을 미화하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학교운동부의 본질과 이상
학교체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장학사로서 우리나라 학교운동부를 마주할 때마다, 그 거대하고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답답함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 학교에서 운동부는 왜 이렇게 복잡한 문제가 되었을까. 왜 이렇게 많은 법률과 지침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왜 학생선수와 일반학생을 구분해야만 할까. 너무도 많은 숙제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학교체육진흥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학생선수는 '학교운동부에 소속되어 운동하는 학생'이고 학교운동부는 '학생선수로 구성된 학교 내 운동부'이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그냥 어떤 학교에서 학생들로 스포츠 팀을 만들면 법률적으로 완벽한 학교운동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학교운동부의 본질이며, 이상적인 모습이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운동부를 만들고 싶으면 만들고, 운동부에 들어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고,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자연스러운 학교의 교육활동 중 하나로 충분하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하급학교에서 해당 종목의 선수생활을 했었는지, 경기에 참가한 실적은 있는지, 체육특기자로 상급학교에 입학했는지 등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냥 그 학교 학생들이 모여서 운동부를 만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스포츠가 인생의 무게로 다가오는 학교운동부가 아닌, 즐거운 스포츠의 본질을 실현하는 모임으로서 학교운동부가 사랑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상적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우리나라 학교운동부는 본질적인 부분보다는 수 많은 사람들이 이해관계가 얽혀버린 수단적 성격이 짙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학교운동부를 '우수한 선수를 공급해주는 기관'으로 이해하고, 누군가는 학교운동부를 '명문대학을 갈 수 있는 수단'으로 이해하며, 누군가는 '일반적인 세상과는 구분되는 우리만의 세계를 지탱해주는 주춧돌' 정도로 이해하며, 누군가는 '우리들만이 일할 수 있는 소중한 일터'로 이해한다. 학교의 본질과 학생의 본질 그리고 미래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관심보다는, 현실적이고 즉시적인 목적으로 학교운동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은 느낌이 든다. 그냥 운동부도 아니고 그냥 스포츠클럽도 아닌 '학교'운동부라는 점을 더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