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어', 나이키의 에어조던 이야기
그 시절 나의 꿈, 나이키 에어조던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잊고 있던 순간들이 영화필름처럼 스르륵 나타났다. 1990년, 처음으로 우리 삼남매용 '대만제 XT 조립식 컴퓨터'가 마루 한 켠에 놓였던 날. 컴퓨터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딱 세 개가 있었다. 하나는 '더블 드래곤', 다음으로는 '알프', 마지막으로 'NBA' 게임이었다. 농구라고는 농구대잔치 때 이충희와 김현준의 삼점 슛 대결, 허재를 쥐어패던 임달식 등만 기억하던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일명 '미국방송' 또는 '2번'으로 불리던 AFKN 채널에서 치직거리는 화면으로 NBA 농구를 보기는 했었다. 농구는 잘 몰랐어도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압둘자바와 래리버드가 좋은 선수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고, TV와 신문을 통해서 '마이클 조던'이 누구인지 서서히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제대로 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학교 저학년 때만 해도 장윤창이 나오던 배구 중계방송이 많았던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허재가 나오는 농구대잔치가 더 인기가 있어졌던 것 같다. 90년대 초부터는 대학농구 인기도 대단했고, 만화책 슬램덩크도 본격 연재되었고, SBS 개국과 함께 NBA 경기도 정식으로 중계되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나도 농구를 좋아하게 되었고, 마이클 조던의 첫 번째 3연패를 보면서 '에어조던'을 꿈꾸는 소년이 되었다. 하지만, 운동화가 보통 3~4만원 하던 시절. 9만원대의 에어조던은 말 그대로 '엘리베이터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사는 부자 친구들이나 꿈꿀 수 있는 범접할 수 없는 세계였다.
동네 농구장 죽돌이 형들과 아저씨들에게 농구 조금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 정확하게 기억나는 1994년, 돈을 모으고 모아서 우리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나이키 대리점이었던 명일동 사거리의 나이키에 가서 처음으로 나이키 농구화를 구입한 날. 품에 안고 잤었다. 데니스 로드맨이 신던 투박하게 생긴 '에어 다윈'이었다. 뭔가 엄청나게 튼튼하게 생겼었기에, 한 3~4년 정도는 신을 수 있다는 자기최면과 함께 큰 돈을 내고 구입했던 생애 첫 농구화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너무 기분이 좋아서 다음날 학교 가서 농구도 하고 축구(!!)도 했었다. 신나게 신다가 밑 창 한 켠이 떨어져 나갔을 때, 미술 시간에 썼던 검정색 고무 판화 재료를 오려서 본드로 붙여서 몇 주 더 신기도 했었다. 이게 뭐라고 그리 좋았을까.
중3때인가, 마이클 조던이 은퇴하고 컴백하는 과정에서 역대 최고의 조던이 발매되었었다. 이름하여 '에어조던 11'이 나왔다. 이 신발의 임팩트는 당시 농구 쫌 한다는 소년들에게 메가톤급 핵폭탄이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아마도 나이키 대리점에서 팔던 농구화 중에서 최초로 10만원을 돌파했던 바로 그 신발이었다. 그냥 조던 시리즈 최신작이었거나 비싸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 멋들어진 디자인의 끝내주는 신발이었다. 번쩍번쩍 빛이 나는 소재로 만들어져 있어 우리들에게는 '빽구두'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동네 농구장에 조던11을 신고 나타나는 친구가 있다면, 농구를 아무리 못 해도 끼워주지 않을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냈다. 내 기억에 이걸 사고 싶어서 돈을 모았지만, 서울의 강동구 쪽 나이키 대리점 중에 조던11 재고를 보유한 곳이 없어서 구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조던은 그 해 조던11을 신고 시카고 불스의 정규시즌 '72승 10패'라는 말도 안 되는 승률을 이끌어냈고, 파이널에서 대활약하며 MVP로 다시 챔피언이 되며 전설을 완성하였다.
내가 에어조던의 로망을 실현한 것은 '에어조던 10'이었다. 그 때는 무조건 에어조던이라서 사고 싶었고, 구입한 날 품에 안고 잤던 것도 맞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조던10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델이 인기가 없던 모델이었기 때문에 철이 지나고 나서도 대리점 한 켠에 재고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원했던 에어조던이었건만, 조던을 신고 결국 체육 시간에 축구를 했던 나의 정신구조는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 때의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대학생이었던 2000년 경에 에어조던 11 흰색 모델이 갑자기 출시되었을 때, 마침내 조던11을 구입한 이후에는 특별한 농구경기에 출전할 때가 아니면 거의 신지 않고 잘 모셔두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무릎도 아프고 농구를 거의 못 하게 되면서, 전혀 신지도 않고 수 년 동안 신발장 한 켠에 보관하며 안심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있나 꺼내보니 밑창이 다 삭아서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었다. '아끼다 *된다'는 성현들의 말씀은 진실이었다. 그렇게 나의 에어조던 사랑은 과거에 멈춰있었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 시절 도전자였던 나이키 이야기
내가 나이키 농구화를 갈망하던 시절, 나이키는 이미 농구 그 자체였다. 나이키가 어떻게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히려 내 기억에는 90년대 중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이 엄브로에서 나이키로 바뀌던 모습이 또렷하다. 축구와는 전혀 관계없던 나이키가 로마리오와 호나우도, 브라질 선수들을 후원하면서 정말 멋들어진 광고를 했었다. 그 시절 축구의 아이콘이었던 스무살의 호나우도가 폭풍같이 질주할 때마다, 나이키는 점점 축구 쪽으로 영역을 넓혀갔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즈음부터,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유니폼도 더 이상 라피도가 아닌 나이키가 새겨지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에어'는 내 기억 속에서 나이키가 축구계에 진출했던 것처럼, 농구계에서 어떻게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이클 조던이 현대 스포츠 문화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있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라는 종목을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농구를 단순한 스포츠 경기에서 문화적 현상으로 끌어올려준 정도의 절대적 존재가 되었다. 그런 조던에게 아디다스는 조던도 매직 존슨처럼 될 수 있고, 래리 버드처럼 될 수 있다며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제2의 누구, 제3의 누구, '권좌를 이양받을 차세대 최고'라는 칭호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젊은 시절의 마이클 조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업을 해 본적도 없고, 영업을 해 본적도 없기에 후발 주자로서 도전하는 입장에서 영화 속 나이키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시각에서보면 회사를 망하게 할 행위로 보일테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그들처럼 하지는 않겠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 속 이야기가 사실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접근하는 방식이 참 인상적인 것은 분명하다. 누구나 보이는 '좋은 선수'로서의 조던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는 존재로서의 '단 하나뿐인 선수'가 될 수 있는 조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에 나오는 드래프트 상위권 선수들 대부분이 NBA 역대급 레전드 선수라는 점이다. 올라주원, 바클리, 스탁턴...1984년 NBA 드래프트는 정말 말도 안되는 멤버들이었다.
Just Do It
이게 어떤 깊이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 에어조던을 탄생시킨 팀은 말 그대로 '저스트 두 잇'을 실천한 것 같다. 언제나 서점 한 켠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는 주제인 '성공 지침서'에 나올법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생각한 방향이 정해지면 동시다발적이고 일사천리로 마음을 모아서 일을 추진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공무원 조직에 몸담고 있다보니 이런 상황은 부러움 반 걱정 반의 시각으로 보게된다. 내 이야기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서 소비하며 즐기게 되는 것 같다.
영화 속 나이키의 모습은 아주 파격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에어조던의 디자인으로 인하여 매 경기 지불하게 될 벌금을 마케팅 비용으로 생각하겠다는 확신. 사상 유례가 없던 수익 배분 계약 등 모든 부분이 혁신적인 승부수였다. 영화 속 맷 데이먼도 벤 애플렉도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처럼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나이키가 농구 분야에서 어떤 위치에 도달해 있는지를 알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 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들어주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들처럼 본질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을까. 자신이 없다. 매일같이 물어보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야하는 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보니 뭔가 '이거다'고 자신있게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사람이 된 것 같다. 리스크를 안고 선택을 하지만, 반대로 성공적인 선택에 대한 보상은 확실한 사업의 세계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고 있는 분야에서 내가 전문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크지는 않다. 아니, 확신이 없는 편이 내가 하는 일을 하는데는 더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의 경험을 더 해야 내공이 쌓였다는 느낌이 올까. 안목있는 사람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