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문화 속 덕업일치, 좋아하는 것이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 스포츠로 살아가는 사람들.
몇 주 전, 백만 년 만에 잠시 대형 서점에 들렸다가 눈길을 끄는 제목과 표지의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선수 출신이 아닌, '스포츠 마니아'들이 모여서 자신의 삶 속에 스포츠 문화가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풀어낸 책이다. 총 18명의 스포츠 마니아, 스포츠 오타구(일명 '덕후')들이 스포츠를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신의 열정과 사랑이 어떻게 꿈의 실현으로 이어졌는지를 경쟁적으로 자랑하듯 즐겁게 풀어내고 있었다.
저자들은 모두 스포츠 문화를 사랑하여 그 속에서 살아왔고, 스포츠 문화를 깊이 있게 소비하는 소비자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스포츠를 전파했던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종목의 슈퍼스타를 만나게 되고 서로 교류까지 하게 된 일명 '성덕' 즉 성공한 덕후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본업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공감이 되면서 가장 닮고 싶었던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자녀들에게 스포츠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경험을 제공하고 지원하여 마침내 자녀들도 스포츠를 사랑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였다. 내가 오늘도 자녀들과 하려고 했던 일들이며, 내일도 모레도 꿈꾸는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 책을 출판하게 된 가장 큰 목적은 아마도, 스포츠로 이렇게 즐겁게 살아왔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신들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당장, 나부터가 이 책의 저자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 아니, 아예 대학교 전공부터 체육교육을 선택했으니 이들보다 더 체계적으로 성공한 스포츠 덕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일면식도 없는 이 책의 저자들과 만나면 몇날밤을 스포츠 이야기로 지새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스포츠 문화의 본질적 요소이자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경기'다. 경기의 주인공은 선수이며, 경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 협력하여 선수들이 멋진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판을 깔아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스포츠 문화의 구석구석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선수 출신, 즉 '경기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그들만으로는 스포츠 문화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포츠를 소비하는 방식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으며, 스포츠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스포츠에 미친 사람들' 즉 스포츠 마니아들이었다. 체육 교사 출신의 교육전문직 대선배님께서 학생들 앞에서 스스로를 '스포츠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 큰 공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바로 스포츠에 미친 사람, 운동에 미친 사람이었고 이와 관계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체육 교육 속에서 스포츠를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진로를 창출할 수 있다고 안내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에 그래서 더 관심이 갔었나보다. 십 여년 전 자유학기제가 도입되면서 자유학기 체육 수업의 내용으로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수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일전에 브런치에도 상징적인 인물로 축구의 한준희 해설위원, 야구의 송재우 해설위원, 프로레슬링의 성민수 해설위원 등을 소개한 적이 있다. 모두 정말 행복한 사람들, 성공한 스포츠 덕후의 롤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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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천국' 미국
이 책의 주 저자도 그렇고, 함께 글을 쓴 사람들 대부분이 스포츠의 천국 미국에서 현지의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유학을 했던 학교의 팀을 통해서 해당 지역의 스포츠 팀을 응원하게 된 사람들부터, 원래부터 좋아했던 선수와 팀을 만나고 싶어 미국 현지로 날아간 사람들까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이 바로 미국의 엄청난 스포츠 문화다. 학교를 거점으로 지역이 화합되는 미국 특유의 문화적 배경도 인상적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포츠 경기를 소비하고 끊임없이 이야기의 소재로 역사를 이어가며 탄탄한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이 부럽기도 했다. 80년대 나와같은 꼬꼬마들에게 미국은 없는 것이 없는 모든 것이 가능한 지상낙원 그 자체로 인식되었었는데,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 책의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미국의 문화는 천국 그 자체로 느껴질 것 같다.
미국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유학시절을 보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 대학의 스포츠 문화는 정말 대단하기는 한 것 같다. 대학 동문들의 관심을 넘어 그 지역 사람들의 자부심이 될 정도라는데, 우리처럼 특정 지역에 수 많은 대학교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곳에서는 태생적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문화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60~70년대 고교 야구가 이런 역할을 했었다고 하지만, 지역적 특수성이 희미해지는 지금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는 학교를 중심으로 스포츠 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모든 분야에서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여 성과를 내는 것'이 발전 전략이었을 때만 해도, 스포츠도 올림픽과 세계대회에서의 국위선양에 최우선 가치를 부여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4년에 한 번씩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선수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히 스포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스포츠에 직접 참여하며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선수들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격려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다른 팬들과 함께 소통하며 즐기고 있는 것 같다. WBC에서 야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고 KBO 리그 경기에 관심이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또는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 정도로 여겨졌던 K리그에서도 1부와 2부 모두 평균 관중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선진국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포츠와 운동을 즐기는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도 이제는 콘텐츠의 질, 인프라, 참여기회 등 모든 측면에서 과거보다 탄탄해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저자 중 한 명이 딸이 미국에서 소프트볼을 하면서 어떤 변화를 겪었고, 얼마나 행복한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아 다 때려치고 미국을 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집의 우리 아이들은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어떤 스포츠 경험을 하고 있나. 직접 함께 하기도 하고, 지역사회 인프라를 활용하여 참여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뭔가 성에 차지는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이 더 쉽게 더 많은 시간을 더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현지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미국의 학교 스포츠 문화 일본의 학교 스포츠 문화는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관련된 서적들을 통해 저자들은 그 이면에 많은 이들의 헌신이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의 부카츠가 부모의 참여와 관심으로 운영되듯이, 이 책에서도 미국의 학교 스포츠팀 역시 지역사회의 봉사와 헌신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그 부담이 크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었다. 여기나 거기나 지구촌 어디에서나 자녀 교육에 있어 부모의 부담이 없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체육 수업용 자료로 활용하기에 좋은 책이다.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포츠와 관련된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고 새로운 분야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동경했고 직접 경험했던 미국의 스포츠 문화를 마냥 부러워하기만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학교에서도 스포츠를 통해서 더 많은 학생들이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아니, 직업적으로 거창하게 이야기할 필요 없이 내 아들 내 딸이 더 쉽게 스포츠를 즐기며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한다. 부모로서도 노력해야 하고, 학교체육 담당자로서도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저자들의 이야기처럼 나도 덕업일치를 이룬 성공한 스포츠 덕후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