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은 정말 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교사,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사람들
교사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얼마나 힘들어 했기에 이런 책이 나왔었을까.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2019년 8월에 발간된 책이며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교육 현장과 관련하여 교사들이 알아두어야 할 법령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2020년의 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 업무를 맡았지만 관련 법령에 대해서도 사례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당시에 순전히 업무역량 함양을 위하여 구입하여 사무적으로 읽었던 책이었다. 최근 여러가지 이슈가 있었기에, 생각이 나서 다시 한 번 책을 훑어보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순전히 업무적 필요에 의해 이 책을 구입하여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첫장을 넘기기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내가 이걸 꼭 알아야 하나? 그냥 계속 모르고 살고 싶다!!
아마도, 모든 현장의 교사가 나와 비슷한 반응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 교사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며, 학생들을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로 길러내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이다. 내 비록 혼자 있을 때는 무단횡단을 하고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더라도, 우리 학생들 앞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교육하는 사람들이다.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른다고 가르치는 것'이 업의 본질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교사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법령을 알아야 한다고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겠다는 책이 필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선진국이 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면 참, 교권을 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알려주는 세상이...뭐 그렇다.
벌써 교육청에 들어와 꼰대질을 전문적으로 시작한지도 만 4년이 되었다. 후배 장학사들에게 담당업무와 관련된 법령의 역사에 대해서 안내하기도 하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법령을 검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신들이 하는 업무의 법적 근거나 교사로서의 권리와 책임 등을 규정하고 있는 법령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잘 모른다고 해도 '특별한 업무'를 하거나 '특별한 일'을 당하지 않는 이상 아무런 문제도 없다. 교사라는 직업을 하는데 있어, 잘 알면 좋겠지만 잘 모른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는 분야가 바로 법령과 관련된 부분이다. 학교 현장 일선의 교사 수준에서는 최종적으로 다가오는 각종 지침과 훈령 매뉴얼 등만 준수해도 교육활동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학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니면 선진국이 되어서인지 잘 모르겠는 와중에 학교의 교육 활동에 새로운 이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세부적으로 규정하거나 지침을 만들지 않더라도, 교육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당연한 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순기능적으로는 학교 현장이 보다 청렴해지고 교육 운영이 투명해지는 성과가 있었지만, 역기능적으로는 학교가 교육적으로 판단하고 교육적으로 해결했던 문제들이 법원으로 가서야 해결되는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일들, 참 많아진 것 같다. 송사에 휘말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행복해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교사들에게 적극적인 교육활동을 기대하기는 어렵기에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사실,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벗어나있지만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는 법령에서 엄청난 책임과 의무를 지운 학교장도 있다. 권한이 큰 만큼 많은 책임이 있기에, 교장을 대상으로 각종 송사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어디가서 말도 못 하고 이를 묵묵히 받아내고 계신 교장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에 설치된 대부분위 위원회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교감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본연의 업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에 수많은 교감 선생님들이 각종 사건사고와 악성 민원들을 최일선에서 처리하고 계시다. 평화로운 하루, 일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하루가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법령은 무엇이며 왜 알아야 하는가
신규 장학사들의 현장 실습 때 교육전문직원의 업무의 흐름에 대하여 안내하기 위하여 그림을 그려가면서 법령의 체계를 안내한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서도 법률에서 정의하는 교권과 교육과 관련된 개념들을 정리함과 동시에, '헌법-법률-시행령-시행규칙'으로 이어지는 법령의 기본 체계부터 업무담당 부처의 지침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법 시스템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교사들이 알아야 할 주요 법령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교사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교사들에게 이 걸 꼭 알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안내해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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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갑자기 법이 치고들어오면 큰 혼란을 겪는다. 왜냐하면,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인데다가 아주 사무적으로 법률 용어들을 사용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경찰, 검사, 변호사, 조사관 등에 대한 이미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주 나쁜 범죄자들을 잡아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실제로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마치 범죄자가 된 듯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변호사처럼 법률을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기에 그들의 입장에서 만나는 사람이 교사라고 하여 특별하게 대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교육청 장학사 전화만 받아도 심장이 뛰며 압박감을 느끼는 교사들도 있다는데, 변호사가 연락해온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어쨌든, 저자들의 말처럼 교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받고 적절히 대처하여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법령 관련 지식이 필요하기는 한 것 같다. 똑같은 법령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법령을 해석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학교폭력'은 범죄이기 때문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학교폭력이 인정되고 가해학생으로 조치결정을 받으면 법적인 처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학교 교육 제도의 틀 안에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선도하기 위한 것으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의 교육적 행정조치만을 할 수 있다. '경찰 조사-검찰 기소-법원 판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별개의 절차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당국의 조치가 적극적이지 않았다던가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민사소송, 형사소송, 행정소송 등의 재판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부터 교사로서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 언론중재위원회,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를 조금이나마 복구하는 일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런 일은 겪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겪게 되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려면 잘 알아야 한다는 취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드는 생각이지만, 모든 교원들이 이런 거 잘 모르고 정년까지 평화롭게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셨으면 하는 마음만 들었다.
교사로서의 경험, 장학사로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활동 관련된 송사는 대부분 행정소송인 것 같다. 행정소송은 행정기관의 행정행위가 부당하기 때문에 이것이 타당한지를 법원에서 판단해달라는 맥락의 재판이다. 쉽게 말하면 교사의 교육적 지도행위, 학교의 교육활동 운영, 학교와 기관의 학생에 대한 판단 등이 부당하니 이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한정하자면, 학교 현장에서 교육적으로 적절한 절차에 의하여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은 대부분 승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누가 봐도 무리한 소송은 법원에서 잘 판단해 준다는 것이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조치 결정이 행정소송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고, 학교에서 교사가 했던 교육적 행위가 관련된 지침과 절차를 준수했다면 대부분 그 전문적 판단을 인정받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에, 만약 법원에서 부당한 판단이었다는 결론이 난다고 해도 그 교육적 판단 자체를 부정당하기 보다는 조금의 감경 등으로 결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기만 하면 대부분의 학교 교육 활동은 법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는 교육적으로 자신있게 판단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현장의 교사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법적인 결론이 사필귀정으로 끝난다고 해도 그 과정 속에서 교사들이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경험적에 비추어 보면, 행정소송이라는 것이 아무리 빠르게 판단이 된다고 해도 반년 이상의 물리적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다. 법원의 입장에서 수 많은 건들을 순서대로 판결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은 물리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로 알고 있다. 결론적으로 모든 것이 사필귀정으로 끝났다고 해도, 명예를 회복할 길은 요원하다.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에 남아있는 스크레치는 그 어떤 것으로도 회복이 어려우며, 교사로서의 열정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교육의 손실이 너무 크다.
교사라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선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끊임 없이 교육하고 기대하고, 교육하고 기대하고, 기대하고 또 기대하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미련하게 계속하지 말고 포기하라고 해도 학생들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한다. 자신을 무고한 학생들에게조차 용서와 기대를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학생이 교사를 무고한다고 해도, 학부모가 자녀를 꾸짖으며 학교에 맡겨왔기에 교육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고의 주체가 철없는 학생이 아닌 계산적인 학부모가 중심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교사들이 더 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법이 참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이슈가 되는 아동학대 관련된 법적 절차만 해도, 학교 현장에 이 법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컸다. 시작부터 우려가 컸지만, 법률을 만들고 개정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기에 현장에서 잘 운용되기를 바라기만 하면서 대증적 지침만을 안내했을 뿐이었다. 안타까운 일을 겪을 때마다 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법이 존재하는 순간까지는 법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최근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교사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 역시, 법령을 개정하라는 내용이었다. 학교 현장을 힘들게 하는 법령이 신속하게 개정되기를 기대해본다.
장학사의 업무를 수행하다보면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민원인으로부터 근거가 무엇이냐는 공격을 받기도 한다. 사무실 내 자리의 전화로 걸려오는 모든 대화는 녹음되고 있으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는 모든 이야기는 '교육청 관계자'라는 단어로 언론에 보도될 수 있음도 전제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법령과 지침에 완벽하게 근거한 행정'을 할 때, 민원인들은 '정말 공무원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라고 반응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교육이라는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아주 민감한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법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일을 처리하라고 교사 출신의 장학사들을 뽑아서 교육청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완벽하게 깔끔한 단순 행정행위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부럽기도 하다. 교사들이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되는, 조금 더 교육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학교 현장의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