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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Aug 30. 2022

교육청은 무슨 일을 하는가? #4 교육정책의 실현 과정

교육철학이 정책으로 만들어지고 학교를 통해 실현되는 과정

오랜 시간을 유교적 가치관 속에서 살아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근본'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훌륭한 행동을 했는데, 그 사람의 가족 중 명망있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나!! 근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어떤 집단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었는지의 서사를 궁금해하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의 인지상정이다.


거대한 조직의 철저한 분업화된 체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전문성은 높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이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내가 이 일을 하게 되기까지 조직의 의사결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공감하여 체화시키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의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통찰력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공무원은 마음만 먹으면 지침과 매뉴얼을 참고하여 자신의 일만 자신의 범위 안에서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속한 조직이 왜 이렇게 구성되었고, 왜 이렇게 일을 하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왜 내가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의 고민이 없더라도, 주어진 일을 규정된 절차와 지침에 따라 처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공무원의 직무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말 그대로 자신이 하는 일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어도 훌륭한 공무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의 흐름을 이해하고, 왜 이 일이 시작되었고 왜 이런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보다 신속하게 보다 정확하게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리 규정되어 있지 않은 수 많은 사례들 속에서 끊임없이 가치판단을 요구받는 장학사는, 그 직무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업무와 민원의 홍수 속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이야기를 해 본다.




교육 정책이 실현되는 과정


최근, 만 5세로 초등학교 학령을 1년 낮추는 정책과 관련하여 큰 논란이 있었다. 장학사 입장에서 여러가지로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주요 정책을 보고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실무자부터 중간 관리자까지 수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사항들을 검토하여 예상되는 다양한 비판과 질문에 대한 대응까지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교육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며 시행착오를 경험한 교육 관료들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교육청의 업무 패턴과는 다른 방식이었던 것 같다.


교육 정책을 계획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협의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지금부터 교육철학이 정책으로 실현되는 과정,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준비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첫 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살펴보려고 한다.




교육자치제: 시·도교육청은 교육부의 하위 기관이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다. 대한민국은 교육자치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그래서, 4년에 한 번 교육감을 각 지역의 주민이 직접 선발한다. 그래서 교육부도 어떤 정책을 실천할 때, 시·도교육청에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감협의회 또는 업무담당자(장학관·장학사) 회의 등을 통해 협조를 하는 방식을 취한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통일된 하나의 효율적인 조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형태의 교육정책 운영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으로 보일 것이다. 특히, 코로나 확산이라는 국가적 재앙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책의 타당성과 합리성보다는 명확하고 신속한 실천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언론 발표보다 늦게 학교로 도착하는 공문을 보며 많은 교사들이 답답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교육자치제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역별로 천차만별인 교육 환경을 하나의 정책으로 담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십수년간 이어지고 있는 직선제 교육감 제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자치제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은 듯 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 실현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참 복잡하고,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교육자치제를 운영하면서도 교육부가 국가적으로 하나의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 지역적 권한이 강할 경우 국가적인 통일성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도시의 학교에 다니던지 도서지역의 학교에 다니던지, 모든 학생이 동일한 학제 속에서 동일한 LMS(나이스-학교생활기록부)로 교육기록을 관리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교육청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 체감한 교육정책의 실현과정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니, 다음의 그림과 같이 표현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교육정책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그림은 아닐 것이고, 일개 교육지원청 장학사가 정리한 것이니 권위가 있는 레퍼런스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교육청이 하는 일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조금의 궁금함을 덜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 정책이 실현되는 과정(*물론, 모든 정책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치국가의 행정조직인 교육부와 교육청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다. 많은 사람들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람들의 머리 속에 법이란 무섭고 권위적인 규율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범죄 행위를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검찰을 보면 움찔하게 되고 법원에는 평생 갈 일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교육청에 들어와서 본격적인 행정을 하다보니 법치국가가 어떤 의미인지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법이란 것이 시행령이란 것이 시행규칙이라는 것이 공무원 조직이 존재하고 일을 하게 만드는 근거이기 때문이었다.


먼저, 국가적 수준에서 법률을 만드는 것은 국회다. 국회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우리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법률을 제정한다. 법률을 제정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국가가 규정하고 책임지고 무엇을 하게 만드는 일종의 명령이 된다. 국회의원들이 매일같이 논쟁하며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유는 법률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국가의 모든 기능이 시작되기 때문이며, 한 번 만들어진 법률을 폐지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제도와 관련된 일들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 분야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기본법', 우리 나라 학교제도를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교사의 양성 및 채용과 인사관리 등을 규정하는 '교육공무원법', 학교체육 정책의 근거인 '학교체육진흥법',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 및 정보 교육 등의 추진 근거인 '과학ㆍ수학ㆍ정보 교육 진흥법' 등 다양한 법률들이 모여 우리나라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교육 관련 법률의 취지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 부처 조직이 바로 '교육부'이며, 교육부장관이 단순한 장관이 아닌 '부총리'의 지위를 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도 느낄 수 있다.


법률은 시행령의 형태로 구체화되는데, 시행령은 쉽게 말하면 법률의 취지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해설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시행령은 정부부처에서 각 법률의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업무수행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만들게 된다. 시행령보다 더욱 구체적인 형식이나 세부 기준 등은 다시 시행규칙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되어 [법률-시행령-시행규칙]으로 법령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지방자치체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시도단위에서도 [조례-규칙-고시-예규]로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각각의 법령은 그 이름 바로 옆에 관련된 부처와 세부적인 업무조직과 대표 전화번호까지 명시하고 있어, 이것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을 어디에 문의해야 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법령의 이름 바로 다음에 명시된 관련 부처와 조직의 이름과 대표 전화번호


이렇게 법령에 명시된 해당 부서에서는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을 실현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업무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모든 사항들이 모여서 연단위 주요 업무로 정리가 되면 수립된 주요 업무 계획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된다. 주요 업무 계획에 따라 교육부는 관련 업무를 추진하며, 필요한 경우에 시·도교육청 위임 또는 협조를 통해 정책을 실현한다. 시·도교육청 역시 마찬가지다. 조례와 규칙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관련 조직단위마다 업무계획을 수립하고, 이런 계획들이 모여 시·도교육청 고유의 주요업무계획이 수립되는 것이다.




기본계획 - 정책 실천의 가장 중요한 근거


그렇다면, 법률에서 명시되어 있지 않은 정책들은 무엇일까. 행정관청이 아무런 근거 없이 업무를 추진할 수는 없다. 때에 따라서는 시의적절한 정책의 수립 및 추진을 요구받기도 하고, 조직 외부로부터 새롭게 임명된 기관장이 부임하여 새로운 정책을 시도하기도 한다. 직선제로 선출된 교육감은 자신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당선된 이후에는 공약들이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모여 압축된 것이 바로 '연간 주요 업무 계획'이다. 매년 초 발표되는 기관장(교육부장관, 교육감 등)의 신년사는 주요업무계획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신년사를 통해 어떤 일들이 추진될 것인지를 예측하고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연간주요업무계획은 각각의 정책들을 아주 짧게 핵심만 압축하여 담고 있다. 그래서 각각의 정책 사업들을 담당부서와 실무자의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일단 책임자의 결재가 완료된 기본계획은 해당 사업의 추진 근거가 되기 때문에, 기본계획을 내실있게 수립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해당 정책사업을 학교에 안내할 때도, 예산을 지출할 때도, 필요한 조직을 구성할 때도, 업무협조를 위해 관련 부서에 출장을 갈 때도 모든 일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교육정책이라는 것은 마치 생물과도 같아서, 업무추진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일들도 발생하며 일부수정 또는 임기응변도 필요하다. 기본계획에서 담아내지 못한 일을 업무 추진 중에 갑자기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업에 기본계획 수립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하위조직의 부담을 줄이고 실무자의 업무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라도 최상위 단계에서 곧바로 해당 공문을 근거로 관련 업무를 수행하게 하기도 한다. 법령에서 너무나도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는 부분이거나, 조직의 단계별로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교육부나 시·도교육청 단위에서 해당 정책사업과 관련하여 '매뉴얼', '가이드북', '기본지침' 등의 세부적인 업무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결과 분석 및 보고 - 번거롭고 귀찮지만 의미있는 과정


교육청이 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 '학교를 통해 학생들을 교육하는 일'과 관련된 것이다. 계획한 정책이 실현된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학교와 교육의 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이란 분야는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변화도 거의 없고, 성과가 있는지 없는지 구체적인 확인을 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하지만, 행정관청은 어떤 정책을 실현했다면 필연적으로 정책의 효과성은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의 개선점을 찾아내고 보완하여 보다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시·도교육청은 교육지원청에, 교육지원청은 학교에, 학교는 학생에게 결과를 묻고 정리하여 분석하는 것이다. 학교에 있을 때는 이 과정이 참 번거롭게 무의미하게 느껴졌었는데, 교육청에서 정책사업을 담당하다보니 운영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왜 필요한 일인지 공감하게 되었다. 물론, 이 어려운 과정을 적절하기 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교육전문직원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사람들이라는 것도 경험하며 느끼게 되었다.


장학사의 입장에서 가장 하기 싫은 단순 행정작업 중 하나는 바로 어떤 결과를 양식(정산서, 결과표 등)에 맞추어 수합한 후 이를 재편집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훌륭한 장학사라면, 결과를 어떤 절차로 보고하게 할 것인지,  어떤 양식으로 구성하여 보고하게 하여야 모두가 덜 고생하고 더 효과적일 것인지 등의 고민을 기본계획 수립 단계부터 하기 때문에 단순 작업을 처음부터 예방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끝없는 야근과 시행착오를 거칠 수 밖에 없었고, 능력있는 선배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어쨌든, 내가 맡은 정책사업이 기대했던 좋은 결과를 가져왔거나, 학생들과 교사들의 반응이 좋다거나 하는 순간을 마주하면 그동안의 피로가 모두 해소된다. 동시에, 내가 장학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새롭게 교육전문직 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을 만나는 시기다. 나는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교육전문직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본질적인 질문도 많이 했던  같다. 꼰대질   만에 꼰대질이  몸에 체화되서인지 몰라도,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분들이 나와같은 시행착오를 겪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용을 정리해봤다. 행정학을 공부한 적도 없고 법령을 공부한 적도 없어 여기에 주저리주저리 풀어낸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육청이 도대체  존재하며 무슨 일을 하길래 저리도 바쁘다고 하는 것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범위에서 교육청이 하는 일을 설명하고 싶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장학사에게는 자기만의 대나무 숲이 필요하기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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