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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Feb 09. 2024

스포츠윤리 주제와 쟁점 #02

반칙작전은 반칙인가 전략인가

*이 글은 [ 스포츠 윤리 주제와 쟁점 ] 책의 목차에 따라 생각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저자가 책에서 두번째로 던지는 질문은 규칙이라는 스포츠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승리를 위해서 일부러 반칙을 하는 장면이 일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반칙행위는 영리한 플레이로 칭찬받기도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비겁한 행동으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저자의 생각은 무엇인지, 그 결론의 근거가 되는 이론적 탐구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전략적 반칙(strategic fouls)


전략적 반칙이란 경기에서 선수가 전략적 이득을 얻기 위해 벌칙을 받게 되는 것을 알고도 기꺼이 고의적으로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농구 경기에서 지고 있는 팀이 마지막 순간에 상대에게 프리드로우를 주고 공격권을 얻기 위해 고의적으로 반칙을 하거나, 축구에서 상대팀의 결정적인 공격 찬스를 막기 위하여 일부러 반칙을 하는 등의 행동이다. 


전략적 반칙을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스포츠에서 규칙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한다. 규칙을 어기면서 얻은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경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암묵적 합의 또는 계약을 부정한 것으로 경기를 무효화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규칙이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전략적 반칙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팀의 승리를 위한 고의적인 반칙 행위를 경기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모든 선수가 허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 부정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불공정한 이득이 발생한다고 할 수 없으며, 규칙에 따라 부정행위자가 적절한 처벌을 받고 상대 역시 보상을 받기 때문에 규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때로는 스포츠 경기에서 창조적 행위로 받아들여지며 더욱 흥미로운 경쟁을 가능케 한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스포츠 경기의 가치는 도덕성의 요구로부터 단절되어야 하며, 스포츠 밖에서라면 용인될 수 없을 속임수도 스포츠 속에서는 허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스포츠에서는 도전에 맞선 탁월함의 추구가 중요한 것이며, 이는 전략적 반칙이 도덕적으로 결여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단지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 경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당연한 동기는 스포츠에서 마땅히 허용되어야 하는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스포츠 속 규칙의 유형과 전략적 반칙에 관한 세 가지 관점을 이론적으로 탐구하였다.




스포츠 속 규칙의 유형


1. 구성적 규칙(constituve rules)

구성적 규칙이란 해당 종목의 본질을 규정하는 규칙이다. 경기 목적, 즉 달성되어야 할 상태, 그 목적이 달성되는 시공간적 제한, 허용되는 장비, 그리고 성취를 점수로 환산해주는 평가 시스템을 구체화해주는 규칙으로 구성적 규칙이 정해놓은 행동 없이는 그 종목의 스포츠란 있을 수 없다. 즉, 구성적 규칙을 위반하면 경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농구 경기에서 공을 발로 차거나 공을 들거나 걸어다니는 행위, 축구 경기에서 손으로 공을 잡고 달려가는 행위, 육상 경기에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달리는 행위 등은 해당 스포츠 종목의 경기 자체를 무너뜨리는 규칙 위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2. 규제적 규칙(regulative rules)

규제적 규칙은 경기 과정과 관련있는 규칙이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작용하는 규칙으로 구성적 규칙과 다르게 벌칙 또는 보상이 뒤따른다. 예를 들면, 농구에서 상대팀 선수의 슛동작을 부적절한 신체접촉으로 저지하는 행위를 하면, 반칙을 저지른 선수는 개인반칙을 누적받게 되며, 반칙을 당한 선수에게는 자유튜라는 보상이 주어진다. 규제적 규칙은 경기를 계속하기 위한 벌칙을 부여하기 때문에 규제적 규칙을 위반하더라도 경기가 끝나버리지는 않는다.


3. 보조적 규칙(auxiliary rules)

보조적 규칙은 경기를 주관하는 단체나 기관에서 요구하는 규정 또는 경기의 운영상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경기의 핵심 적인 요소와는 관련 없는 부가적인 조건들을 정해주는 규칙이다. 예를 들면, 경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이나 금지된 약물 등을 규정하는 규칙이다. 




스포츠를 분석하는 이론적 틀


1. 형식주의(formalism)

스포츠의 사회적, 심리적 기능보다 그 형식적 구조의 내재적 특성을 가지고 스포츠 현상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이론이다. 형식주의는 구성적 규칙이라는 형식구조 없이는 스포츠가 존재할 수 없으며, 스포츠에서 규범적인 행동은 뚜렷한 구성적 규칙에 의한다고 주장한다. 즉, 스포츠에서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규칙이 정한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2. 관습주의(conventionalism)

스포츠현상에 관한 해석과 평가방식은 문화적 맥락, 즉 그 시기에 특정 공동체가 공유하는 사회규범에 달려있다고 보는 이론이다. 스포츠를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관습적인 문제이며, 해당 스포츠의 관습을 모른채 스포츠 참여의 의미와 목적, 스포츠 속 행위의 도덕적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3. 내재주의(internalism)

스포츠의 구성적 규칙 말고도 외부에서 들여온 사회적 관습도 아니고 도덕적 원칙도 아닌 스포츠에 개념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른 원천이 있다고 보는 이론이다. 내재주의는 경기의 내부 규범과 가치에 대한 존중을 비롯하여 최선의 경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폭넓은 해석이 규칙과 더불어 스포츠를 윤리적으로 평가하는데 핵심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포츠의 본질이 경쟁이며, 경쟁의 본질은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100% 동의한다. 스포츠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는 이기기 위해 경기해야 할 '실천적 의무(practical obligation)'가 있기 때문이다. 실천적 의무는 스포츠의 본질이기에 윤리적 의무에 완전히 종속될 수는 없다. 물론, 상대에게 부상을 입히기 위한 행위, 경기와는 무관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위,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위 등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였다. 


십수년 전, 학교스포츠클럽대회 농구 경기를 지도하고 있을 때 경기 종료를 1분 앞두고 이른바 파울 작전을 하여 거둔 극적인 역전승의 기쁨 뒤에 상대팀 학생들이 나에게 다가와 '교사라는 사람이 파울을 하라고 소리치는 행동이 부끄럽지 않느냐'며 일갈했던 순간이 또렷이 기억난다. 학교스포츠클럽대회 축구 경기를 지도하던 중 우리 팀 학생이 상대와 충돌하여 넘어졌을 때 머뭇거리던 우리 팀 학생들에게 '심판이 안 불었잖아!! 계속 해!!'라고 소리치자, 상대 팀 학생들이 나에게 다가와 '교사 맞느냐?'며 일갈했던 순간도 기억난다. 나는 단지 스포츠 경기의 미덕인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려고 소리쳤을 뿐이었다. 하지만, 학생의 항의에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수업 중에 내가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수준의 스포츠 경기가 아닌 정규 체육 교과 수업의 범위 안으로 '고의적인 반칙 행위'를 가져왔을 때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교사가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스포츠를 교육한다고 했을 때는 '내재주의' 관점에서 최선의 경기란 무엇인지 폭넓게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똑같은 농구를 지도하더라도 체육 교과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부분과 학교스포츠클럽대회에 출전한 아이들에게 강조해야 할 부분은 달라야 한다. 학생들 역시 스포츠 경기의 맥락에 따라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경기에 참여하여 승리와 패배의 반복된 경험을 해야만 그 맥락을 이해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의적인 반칙은 무조건적으로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용인되는 범위 안의 행동, 상대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행동이라면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으로 당연히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전 가나와 우루과이 경기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마치고 싶다. 팽팽한 승부의 경기 종료 직전에 나왔던 우루과이 축구선수 루이스 수아레스의 고의적인 핸드볼 파울과 퇴장, 페널티킥이라는 승리할 수 있는 아주 높은 확률을 보상받은 가나, 그리고 이어진 가나 선수 아사모아 기안의 실축, 결국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우루과이와 환호하는 수아레스의 모습 등 모든 것이 화제가 되었던 장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마침내 12년 후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가나의 발목잡기로 그 서사가 끝났다. 스포츠에서 이러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규칙이고 경쟁이다. 그래서 스포츠가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43&aid=0000117748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4825225?s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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