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는 진짜 스포츠인가
*이 글은 [ 스포츠 윤리 주제와 쟁점 ] 책의 목차에 따라 생각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저자가 책을 통해 첫 번째로 던지는 질문은 스포츠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최근 급격하게 '스포츠화'되어버린 e스포츠 문화를 살펴보면서 스포츠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규정하고 싶어하는 듯 했다. 사실, 학교에서의 체육교육 관점에서는 교사의 전문적인 역량에 근거한 판단으로 e스포츠를 규정하고 학교 체육의 하위 영역으로 가볍게 편입하여 다루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전문체육(선수라는 직업의 영역)의 시각으로 넘어오면 이 문제는 수 많은 사람들의 삶과 경제적인 득실관계가 엮이면서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가 된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학교운동부, 학생선수, 전국소년체육대회 업무를 담당하면서 느낀 전문체육 분야의 경직성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소년체육대회, 전국체육대회의 정식 종목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책에서는 이 문제를 스포츠의 본질에 관한 이론적 탐구를 통하여 정리하였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개최국의 추천 선택종목으로 '브레이킹(Breaking)'이 채택되었지만 '체스'는 탈락하였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서 브레이킹은 스포츠로 인정을 받았지만, 체스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체스를 스포츠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사실, 체스는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기 시작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이미 한 번 채택되었던 전례가 있는 종목이다. 체스는 24년 전에는 스포츠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해당 종목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올림픽에서 어떤 종목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스포츠로 공인받는 판단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올림픽 종목의 선택에 있어 스포츠의 본질적 정의만이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정치적인 판단, 사회 문화적인 판단에 의해 올림픽의 목적과 스포츠의 정의를 임의로 변경하여 해석하지는 않았을까. 참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저자는 이 골치아픈 문제를 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통해 해결해보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스포츠의 개념과 관련하여 특정한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포츠는 특정 사회나 개인에 따라서 어느 정도 적용의 범위나 강조점이 다르며, 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에 대한 개념을 엄격히 분류하려다 보면 경계선 문제도 발생한다. 예를 들면, 축구와 피구는 모두 스포츠의 요소를 충족하지만, 축구는 세계인의 사랑과 많은 기업의 후원을 받는 산업으로 발전하였고 피구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이론적 개념으로만은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경계선에서 어떤 범주의 결정은 어느 정도 자의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스포츠의 개념적 정의를 통해서 e스포츠가 스포츠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에 도움은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스포츠에 관한 다음의 세 가지 개념을 바탕으로 e스포츠가 스포츠인가 여부를 판단하고자 하였다.
1. 게임(Game)과 스포츠(Sports) - Suits
게임이란 규칙에 의해 허용되는 수단(means)만을 사용해 특정 상태(lusory goal)에 이르려는 시도로서, 게임의 규칙들은 덜 효율적인 수단(constitutive rule)을 선호해 더 효율적인 수단의 사용을 금지하며, 그리고 게임의 규칙들은 이런 활동(lusory attitude)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허용된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시도다.
게임의 4가지 구성 요소(B. Suits)
①목적(goal)
②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means)
③규칙(rules)
④게임을 가능하게 하는 경기자의 태도(lusory attitude)
스포츠란 '신체활동'으로 구성된 '기술'을 겨루는 게임이어야 하며, 그러한 게임은 '광범위한 지지'와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가져야 한다.
스포츠의 8가지 조건(B. Suits)
①목적(goal)
②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means)
③규칙(rules)
④게임을 가능하게 하는 경기자의 태도(lusory attitude)
⑤게임기술(skill in games)
⑥신체적 기술(physical skill)
⑦폭넓은 지지층(a wide following)
⑧안정성(stability)
2. 스포츠(Sports) - Guttman
스포츠는 자발적인 놀이로서 비경쟁적인 게임이나 지적 경연대회와는 대조적인 형태의 신체적, 조직적, 경쟁적인 놀이다.
근대 스포츠의 7가지 구성 요소(A. Guttman)
①세속주의(secularization)
②참가자의 기회와 조건의 평등성(equality)
③역할의 전문화(specialization)
④규칙과 훈련의 합리화(rationalization)
⑤스포츠 조직의 관료화(bureaucratization)
⑥결과의 정량화(quantification)
⑦기록에 대한 추구(the quest for records)
3. 스포츠(Sports) - Perry
스포츠는 인간의 신체적 기술을 겨루는 규칙 기반의 제도화된 경쟁이다.
스포츠의 6가지 필수 구성 요소(J. Perry)
①인간성
②신체성
③기술
④경쟁
⑤규칙
⑥제도화
게임에 여러 형태가 존재하는 것처럼,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즐기는 게임 역시 여러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게임은 보다 많은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며, 어떤 게임은 상대하는 사람 또는 인공지능에게 승리하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게임 그 자체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게임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도 없고 목적도 없지만 가상의 세계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키거나 단지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즐기는 게임도 있다. 따라서, 스포츠로서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게임들만 e스포츠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e스포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고 정리하였다.
e스포츠는 현실세계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가상의 전자환경에서 정신적, 신체적인 능력을 활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여가활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게임 "LoL(League of Legends)"은 [ 유희성, 규칙, 경쟁 ]이라는 스포츠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모두 충족한다. 하지만, [ 신체성 ]이라는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다만, 이 신체성은 올림픽의 전통적인 종목 중 하나로 사격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LoL과 같은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 전략, 그리고 미세한 운동 조절 능력이 필요한데 이는 사격의 그 것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포츠는 반드시 대근 활동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변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e스포츠에서도 선수의 [ 기술 ]은 매우 중요하다. 게임의 규칙과 페어플레이 규칙에 의거해 모든 공격방법과 도구들을 마스터함으로써 상대를 무찔러야 한다. e스포츠에서도 규칙이 제일 중요하다. 이 규칙들이 기술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e스포츠는 참가자의 빠른 반사, 능숙한 손놀림, 그리고 빼어난 눈-손 조화로 경쟁적 플레이가 가능하다. 또한 e스포츠에는 선수들의 기술이 올바르게 수행되는지를 감시하고 관리하는 심판도 존재한다. e스포츠는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술의 습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e스포츠는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가 되었다. [ 폭 넓은 지지층 ]을 바탕으로 토너먼트, 리그, 상금, 관리 및 후원 계약이 증가함에 따라 경쟁적 게임 문화가 [ 제도화 ]된 것이다. 이미 충분할 만큼의 세계적 지지층을 확보했으며, '스포츠'적 관행을 다스리고 대회를 조직할 만한 제도적 인프라도 구축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e스포츠가 스포츠로서의 요소를 충족하고 있는 것이 명확하다.
결론적으로 e스포츠는 자발적 놀이와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는 경쟁을 포함하고 있으며, 규칙에 의해 구성되고, 승리를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 정확성, 집중력, 신체 통제, 빠른 움직임, 지구력, 팀 전략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인하여 e스포츠를 스포츠로 볼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e스포츠를 스포츠로서 용인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핵심에는 스포츠의 본질과 역사적 정의에 대한 이해가 놓여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올림픽에는 여러 종목들이 채택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는 어떤 시점에서의 기준을 바탕으로 올림픽 스포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명확히 어떤 활동이 올림픽 스포츠로 불러야 할까. 이전까지 비스포츠였던 많은 새로운 경쟁 종목들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신규 스포츠'로 인정을 받기 위해 스포츠 관습의 범주에 부합함을 증명하려고 지금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e스포츠 또한 현대 스포츠의 특성을 온전히 갖춰가는 과정에 있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지금 올림픽 종목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스포츠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e스포츠가 스포츠인가 여부를 이론적으로 혹은 현상적으로 논의하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진다. 즉, 법률적 근거가 무엇인지 기존의 규정과 규범적 범위 안에서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논의한다.
「학교체육진흥법」 제2조 제4호는 학생선수를 "학교운동부에 소속되어 운동하는 학생이나 「국민체육진흥법」 제33조와 제34조에 따른 체육단체에 등록되어 선수로 활동하는 학생"으로 정의하고 있다. 법률적 정의에 따르면 e스포츠를 하는 학생이 학생선수로 인정을 받는 것은 두 가지 형태로 가능하다.
첫째, 어떤 학교가 e스포츠 학교운동부를 창단하고 그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 해당 학교운동부에 소속되어 있다면 학생선수로 판단할 수 있다.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역에서 초중등교육법 상의 학교에서 e스포츠 종목으로 학교운동부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는 없으니,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는 없는 듯 하다. 하지만, 법률적인 관점에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어떤 학교의 학교장이 e스포츠 학교운동부를 창단한다면 여기에 속해 있는 학생은 학생선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둘째, e스포츠 선수로 등록한 단체가 「국민체육진흥법」 제33조와 제34조에 따른 체육단체라면 해당 단체에 등록하여 선수로 활동하는 학생은 학생선수로 판단할 수 있다. 해당 법률에 따른 체육단체란 대한체육회에 가맹된 경기단체다.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4. 2. 7.현재 대한체육회에 가맹된 회원종목단체는 정회원 단체 64개, 준회원 단체 4개, 인정단체 14개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포츠라고 인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단체들은 정회원 단체에 속하며, '한국e스포츠협회'는 2019년에 인정단체가 되었고 2021년에는 준회원 단체가 되었다. 현행 제도적 틀 안에서 학생선수란 대한체육회 정회원 단체에 등록하여 선수로 활동하는 학생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e스포츠협회에 선수로 등록한 학생은 학생선수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수 많은 종목들이 올림픽 종목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수 많은 단체들이 대한체육회 정회원 단체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정회원 단체가 된 이후에도 전국소년체육대회 또는 전국체육대회 정식 종목이 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자신들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가까운 시실에 e스포츠 학생선수가 제도적으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물론, 학생선수의 법률적 정의 외에도 세부적인 사항들을 통해 학교운동부 또는 학생선수의 범위 안으로 e스포츠가 들어올 수 있는지 여부는 논의할 여지가 많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스포츠의 경우에도 어떤 학생선수가 학교에 재학 중 프로팀과 계약하여 직업적 선수의 진로를 시작하게 되면, 해당 학생은 선수는 맞지만 더 이상 학생선수는 아닌 상황이 된다. e스포츠의 경우에 미성년자인 학생이 프로선수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밖에도 학교운동부와 학생선수의 개념은 '학교 교육'의 맥락에서 정의되어야 하기 때문에,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교육적인 가치판단을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현행 학교운동부 및 학생선수 제도의 범위 안에서 아직까지 e스포츠는 스포츠로 여겨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채택되었던 e스포츠 하위 종목들 역시 게임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폭력성을 지적받고 게임의 구조를 변화한 이후에야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e스포츠 중에는 스포츠로서의 요소를 충족하는 있는 게임들이 많다. 바둑이 오래전부터 대한체육회 정회원 단체이며, 다른 종목단체들도 쉽게 해내지 못한 전국체육대회와 전국소년체육대회의 정식 종목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전례도 있다. 어떤 시각에서는 대근운동을 동반한 신체성이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e스포츠보다도 더 신체성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 바둑 역시 오래 전부터 스포츠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에서 e스포츠가 스포츠로 자리잡게 되는 것은 단순한 시간문제로 느껴지기도 한다.
전국소년체육대회 업무를 담당하면서, 도대체 이 대회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가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스포츠가 전국소년체육대회나 전국체육대회의 정식 종목이 되지 못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한체육회 입장에서 종목을 선정하는데 더욱 신중함을 기하고자 하는 이유도 충분히 어림짐작할 수 있다. 사실, 제도적 관점에서는 법률과 규정, 지침, 요강 등에 따라 판단하면 되는 문제이기에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의 본질적인 요소 중 핵심은 '신체성', '규칙', '경쟁' 이렇게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만 본다면 e스포츠는 스포츠가 명확하다. 하지만, 폭넓은 지지층과 제도화의 측면으로 넘어오면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다른 판단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학교 교육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더더욱 치열한 논의를 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정무적인 판단에 의해 학교 밖의 사람들이 학교 안의 일들을 결정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