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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Feb 14. 2024

스포츠윤리 주제와 쟁점 #03

스포츠 속 보복행위는 정당한가

*이 글은 [ 스포츠 윤리 주제와 쟁점 ] 책의 목차에 따라 생각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빈볼(Beanball)'이란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고의적으로 타자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지는 행동이다. 빈(Bean-콩)이란 영어문화권에서 머리를 뜻하는 속어라고 하니,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뚝배기'처럼 비슷한 좋지 않은 뜻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 듯하다. 이 책의 세번째 주제는 바로 이 빈볼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스포츠 세계에서 폭력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실제로, 야구 경기에서의 빈볼은 많은 선수들의 선수 경력, 심지어는 인생을 끝장내기도 한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v2N0kK6zbw

빈볼(BeanBall)이란 이런 것이다. 투수는 즉시 퇴장, 다른 선수들은 우루루 몰려나와 감정을 풀어놓는다. 그 끝은 결국 징계와 벌금만이 남는다.




스포츠 경기 밖의 폭력에는 엄격하지만, 스포츠 경기 속의 폭력에는 관대한 문화


우리 사회는 스포츠 문화,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운동 선수들의 문화와 우리 사회의 문화가 동떨어져 있음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그냥 그들의 문화이니 그대로 두어도 상관없다. 그들만의 섬에서 알아서 살게 두어라'는 식으로 외면해왔지만,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호소로 인해 그 감수성이 달라졌고 변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스포츠 경기 밖의 폭력에는 모두들 관심도 많아지고 직접적인 해당자들 역시 예방을 위해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선후배 관계의 위계에서 비롯된 폭력, 훈련 중 지도자의 선수에 대한 폭력 등은 줄어든 느낌이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면 여전히 많은 폭력적인 행태들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학생선수들이 참가하는 경기도 마찬가지다. 경기 중 지도자들은 큰 목소리로 학생선수들을 다그치고, 때로는 욕설이나 폭언으로 분위기를 전환하여 경기력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승리를 위하여 상대 선수를 위축시키기 위해 위협적인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하라고 지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유튜브를 봐도 해당 종목의 전설적인 선수들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최근의 경기들을 보면서 더 강하게 또는 일부러라도 신체접촉을 라는 이야기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으며, 이러한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의 이야기에 시원하다며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는 모습이다.


저자가 예로 들었던 야구 경기, 그것도 한일전에서의 고의적인 타자를 향한 투구 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열사'라는 표현과 함께 지지를 받았던 행동이었다. 야구 경기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는 선수나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는 선수, 즉 불문율로 지켜지던 행동들을 일부러 위반하며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선수에게는 빈볼로 응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가위바위보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한일전이었고, 언론에서 일본 선수의 표현을 의역까지 해가며 빈볼을 던진 투수에게 열사라는 표현을 하며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으며, 거기에 결과적으로 그 경기를 승리하기까지 했으니 국민들이 통쾌해 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물론, 당시만 해도 상대 선수에게 던진 공이 팀 차원의 고의적인 합의에 의한 행동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선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 선수도 우리 선수도 경기를 지켜 본 모든 국민들도 그 공이 고의적인 빈볼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른바 '썰'로만 구전되었던 이야기가, 빈볼을 지시했다는 선배 선수가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면서 확인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당시 그 투수의 행동은 '열사'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당 투수가 국내 프로야구에서 비슷한 상황에서 외국인 선수에게 이른바 '참교육'을 당했던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실 역시 사람들의 입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역사가 되었다. 해당 선수는 그 참교육 사건 이후 빈볼을 잘 안 던지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뒷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11&aid=0001502428


그렇다. 우리는 경기장 밖의 폭력에 관해서는 엄격해졌지만, 여전히 경기장 속의 폭력적 행위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축구 경기에서 정도가 심한 신체접촉에 의한 파울은 경고 혹은 퇴장 조치가 내려진다. 과연 이것으로 그 행위가 충분히 징계를 받은 것일까? 프로 스포츠이기에 해당 선수는 추후 벌금 등의 조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야구 경기에서의 빈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KBO리그는 빈볼을 예방하기 위해 미국 MLB보다 더 엄격하게 판단한다. 고의성 여부에 관계 없이 머리에 맞는 공은 즉시 투수를 퇴장시키고 있다. 고의성 여부는 추후 판단하여 징계와 벌금이 따른다. 이러한 추가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기 중의 폭력적인 행동들은 '시의적절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선수들과 팬들의 공감대인 듯하다. 팬들에게 잘 했다고 칭찬을 받는 일, 그 선수는 당해도 싸다며 조롱받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스포츠 경기 속 폭력행위에 대한 이론적 탐구


스포츠 경기 속 폭력행위가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폭력적 보복행위가 상대(팀)에게 앞으로 어떤 부정행위(우리 팀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 등)도 고통스럽게 되돌려줄 것임을 알려줌으로써 상대(팀)의 이후 부정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러한 앙갚음이 팀 화합과 같은 스포츠에 내재된 중요한 가치를 증진시킨다는 주장이다. 또한, '스포츠 예외주의(sporting exceptionalism)' 측면에서 스포츠란 아주 특수한 것이기에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규칙이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반대로, 스포츠 경기 속 폭력행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보다 명확하고 단순하다. 폭력 행위는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제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이 동일한 범죄로 되돌려준다는 자경주의(vigilantism)가 인정받을 수 없는 것처럼, 스포츠 역시 그 동기가 상대의 부적절한 행동에 있다고 해도 폭력적인 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팀의 화합을 위해 상대팀에게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것 역시, 그 문장 자체로도 부적절한 행동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스포츠 경기 속 폭력행위의 정당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였다.

선수들에게 다른 직종에서도 마땅히 기대되는 자기 통제력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이 바로 선수를 도덕적 주체로 존경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반대로, 스포츠 밖에서 똑같은 행동을 보면 끔찍해 할 거면서 선수들에게 폭력적 앙갚음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선수들을 생각없고 도덕적으로 모자라는 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직종에 적용되는 도덕적 잣대로부터 스포츠를 제외시키려는 것은 항상 강조하는 주장, 즉스포츠가 바람직한 도덕성 함양을 위한 적합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주장과도 조화되기 어렵다. 우리가 다른 분야에서 하는 똑같은 도덕적 요구를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할 때에만 선수들이 바람직한 도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그들을 면제해주기 보다 그들에게 최고의 선(봄)을 기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상의 존경심이다.




만화 '슬램덩크' 속의 경기 중 폭력행위 사례


내 인생의 교과서 '슬램덩크'에는 스포츠 경기 밖의 폭력, 스포츠 경기 속의 폭력에 관한 기승전결이 모두 들어있다. 먼저, 경기장 밖의 폭력 이야기는 천재적인 재능의 탕아 정대만의 복귀과정에서 벌어진 농구부 학생들의 폭력사태였다. 그 결말은 관련 학생들의 '정학'이었고, 진심으로 반성한 학생들은 더욱더 끈끈하게 연결되어 팀의 경기력 향상까지 이룰 수 있었다.


경기장 속 폭력은 전국대회 첫 경기에서 만난 풍전고등학교의 에이스 남훈의 이야기로, 기승전결이 모두 참 멋지게 그려졌다. 남훈은 팀의 에이스이자 주득점원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에이스킬러'라고 불리우는 선수다. 그리고 그의 레이더망에 마침내 서태웅이 포착되기에 이르렀고, 그는 공식대로 다음과 같이 서태웅이라는 상대팀 에이스를 킬링하였다(부상을 입혔다).


에이스 킬러 남훈, 팀의 승리를 위한 고의적인 폭력 행위의 사례. (*출처-슬램덩크 중 일부 촬영)


작품에서 북산고의 에이스 서태웅과 오버랩되는 선수는 바로 상양고의 에이스 김수겸이다. 풍전고 에이스 남훈은 작년 전국대회에서 상대팀의 에이스였던 김수겸을 팔꿈치로 쳐서 경기에서 아웃시켜버렸다. 이 사건은 풍전고를 승리로 이끌었고, 남훈은 이른바 '에이스킬러'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지라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두고두고 마음 한 켠에 죄책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북산의 에이스 서태웅은 경기를 향한 의지가 남훈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한 선수였다. 남훈의 팔꿈치에 맞아 한 쪽 눈이 부어올라 잘 보이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준 것이다. 남훈은 서태웅의 놀라운 투혼을 보며 혼란스러운 마음에 자신의 플레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쌓여왔던 죄책감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남훈의 죄책감과 반성.


다시 한 번 느끼는 부분이지만, 슬램덩크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스포츠를 통해서 어떤 가치들을 경험하며 배울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경기는 북산의 승리로 끝났고, 남훈의 풍전고는 아쉬움을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체육교육 측면에서 훌륭한 이야기일진데, 슬램덩크에서는 아예 교육적으로 끝내기로 작정을 했는지 남훈이 서태웅을 찾아가 직접 사과하는 장면까지 담아냈다. 스포츠를 주제로 그린 학원물로서 완벽한 기승전결을 담아내는 에피소드가 된 것이다.


에이스 킬러 남훈의 결자해지. 숙소까지 찾아와 서태웅에게 사과하는 모습.


에이스킬러 남훈과 그를 개과천선 시켜버린 서태웅의 놀라운 플레이는 그 자체로 명장면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한 선수가 다른 선수의 부상을 직접적으로 유발한 행동을 폭력행위로 판단할 수 있는지 궁금증이 남는다. 명백한 경기 중의 폭력 행위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경기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학교폭력으로 규정해야 하는지 판단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슬램덩크 속 남훈의 플레이를 법률적 관점, 즉 형사상의 문제와 민사상의 문제 모두로 해석해 본 재미있는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https://blog.naver.com/meaning2015/221562049121




스포츠의 본질은 경쟁이다. 경쟁을 제대로 하기 위해 지켜야 할 내용을 규칙으로 만든다. 하지만 규칙만으로 모든 폭력과 편법적인 행동을 예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경쟁이라는 본질에 따르는 승리하고 싶다는 동기를 폭력이라는 치명적인 수단이 유혹한다. 그 폭력은 경기 전 같은 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고, 경기 중 상대선수나 상대팀을 대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스포츠 세계에서 폭력은 절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폭력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이 스포츠 문화의 특수성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해당 스포츠는 사람들로부터 더욱더 외면받게 될 것이다. 지속 가능한 스포츠 문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스포츠 문화를 위해서라도 경기 중의 폭력행위 역시 강력한 제재를 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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