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워크는 미덕인가?
*이 글은 [ 스포츠 윤리 주제와 쟁점 ] 책의 목차에 따라 생각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은 해당 선수들의 여러가지 개인적인 논란으로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최초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스피드스케이팅 '매스 스타트' 종목에 대한민국의 위대한 스케이팅 선수 이승훈이 출전했다. 사람들은 모두 이승훈의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가장 선두에서 치고나가는 선수는 이승훈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나라의 정재원 선수였다. 정재원은 당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말 그대로 얼굴에서부터 장난기가 뿜어져나오는 앳된 소년이었다. 어린 선수가 가장 앞에서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재원이 시작부터 이렇게 치고 나간 이유는 자신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종목의 특성 상 페이스를 끌어올려 경기의 양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른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경기를 해설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분을 짚어주었고, 지금 정재원 선수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게 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세부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그렇다. 이 어린 소년은 바로 대한민국의 금메달을 보다 확실하게 만들어내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정재원의 완벽한 역할 수행 덕분인지, 이승훈은 작전대로 체력을 비축하여 두었다가 마지막 스퍼트를 통해 마침내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피니시 라인을 1위로 통과한 이승훈은 짧은 환호 이후에, 기특한 후배이자 우리나라 스피드 스케이팅의 미래가 될 후배 정재원의 손을 잡고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링크를 돌며 환호했다. 해설위원의 친절한 해설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국민들은 이 부분에 감동을 받으며 선수들을 칭찬해주었다.
그런데, 대회 이후 이승훈 선수를 위해 자신의 아들이 정재원처럼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정재원 선수의 역할을 했던 선수가 과거로부터 많이 있었으며, 국가대표팀 차원에서 금메달의 가능성이 높은 이승훈을 밀어주기 위해 후배들을 희생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는 주장이었다. 정재원 역시 지금은 본인도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고 이승훈도 격려하는 모양새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언제 다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으며, 가장 영광스러운 무대에 참가한 선수에게 자신을 위한 최선의 경쟁을 할 기회를 팀 차원에서 박탈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논리였다. 듣고 보니, 충분히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과거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만들어진 메달보다는 떳떳한 4위에게 더 많은 감동을 받고 격려를 보내는 세상이 되었기에 이승훈 선수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226500097
사건의 당사자인 감독, 이승훈 선수, 정재원 선수는 한 목소리로 '모두가 동의한 작전이었다.'고 항변하였다.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종목이 개인종목이기는 하지만, 국가대표팀의 입장에서 금메달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지정하고 수행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반적인 레이스 전략'이라는 논리였다. 유럽 선수들의 경우 친분관계에 따라 국가를 초월하여 누군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면 또 맞는 이야기 같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더 이상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듯 느껴졌지만, 국가대표팀의 성적을 중시하는 경기인들은 이승훈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였다.
https://www.ytn.co.kr/_ln/0107_201803021045069158
이 논란의 결말은 의외로 아름답게 끝났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정재원 선수가 은메달, 이승훈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며 나란히 시상대에 오르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전에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했던 정재원 선수가, 위대한 선배 선수를 넘어서는 위치까지 성장했으니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대로 이루어진 모양새였다. 하지만, 과거의 칭찬 일색이었던 분위기처럼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에 '스마일 점퍼' 육상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의 사례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올림픽이라는 무대의 결과보다는 과정과 태도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668954?sid=104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55&aid=0000957393
이 사례와 비슷한 일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국가주도의 메달 획득 지향 시스템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식이었다. 저자는 그 중 쇼트트랙 대표팀의 이른바 '짬짜미' 사례를 제시하며 팀워크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인가를 묻고 있다. 스포츠에서 팀보다 위대한 개인이 있는지, 개인보다 더 큰 팀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다.
팀워크란 절대적인 미덕인가?
스포츠에서 팀(team)은 두 명 이상이 모여 목표지향적 상호작용을 하는 집합체이며, 팀의 협력은 공 동의 목표달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에 팀워크를 지키는 것은 스포츠에서 '미덕'으로 간주된다. 좁은 의미의 팀워크는 수단적인 것으로 목표 추구에 있어 팀의 집단 노력을 일컬으며, 이는 스포츠에 있어 팀의 궁극적 가치인 승리보다는 덜한 것이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의 팀워크는 팀이라는 사회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도덕적 명령들을 포함시킨다.
저자가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팀워크 자체를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미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공동체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훌륭한 선수 개인보다 좋은 팀 동료가 되는 것이 훨씬 고결한 것이며, 개인 상호간 성취로서의 팀워크는 실용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둘째, 평등성이 중요하다. 팀워크의 원칙이 타고난 재능이나 경기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에게 똑같은 도전을 제공한다. 즉, 팀 내에서 역할은 다를지언정 선수들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평등)'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팀워크는 도덕적 가치를 부여받는다.
반대로, 팀워크에 대한 비판의 소리는 다음과 같은 맥락이다. 팀에게 좋은 것이 개인에게 좋은 것을 앞서야 하는가하는 의문이다. 스포츠의 본질이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면, 팀의 승리를 위한 과정과 개인의 승리 또는 성취를 위한 과정을 비교하여 가치의 경중을 판단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묻는 것이다. 팀의 승리를 위해 개인의 승리를 막는다면 그것은 미덕이 아닌 악덕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제를 생각해보면서, 나는 개인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에서의 팀워크와 팀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에서의 팀워크를 동일한 맥락에서 논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실제로, 내가 마주하고 있는 학교운동부의 수많은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 두 가지 맥락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두 가지 경우를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다.
개인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의 팀워크
개인단위로 경쟁하는 구조가 본질인 스포츠의 팀워크란 말 그대로 계약관계에 의한 성격이 강한 느낌이다. 육상, 수영, 체조, 양궁, 사격 등의 기록경기,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등의 개인경기, 레슬링, 복싱, 유도, 태권도, 펜싱 등의 투기 종목 등은 해당 스포츠의 본질이 개인적인 역량을 겨루는 것이다. 릴레이 경기, 복식 경기, 단체전 등의 형태로 팀간 경쟁을 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역량이 경기의 결과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인 스포츠 종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팀을 구성하는 방법 역시, 항상 함께하는 팀이라기 보다는 우수한 선수들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발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원칙은 무엇인가, 그 원칙은 공정하였는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는 종목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팀 단위 경쟁을 할 때, 모든 선수가 최선을 다 해서 경쟁하면 팀으로서의 경기력 역시 자연스럽게 가능한 최대의 역량으로 모아지리라는 기대를 갖는 종목이라는 특성도 있다.
즉, 이런 종목들은 경기력이 100인 선수 두 명이 모인 팀의 경기력은 200이 될 것이라는 수학적인 계산이 일반적으로 실현되는 종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발팀을 구성할 때, 개인전의 순위에 따라 선수를 선발하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두에 이야기한 스피드스케이팅의 경우 이러한 종목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해야 한다는 국가대표팀에게 주어진 과제가 더 중요한 미덕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이런 유형의 종목에서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개인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에서의 팀워크를 논의할 때는 올림픽에서 국가적인 성취가 더 중요한 것인지, 개인의 최선을 다 하는 노력과 경쟁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선택의 문제가 된다. 이것은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한 나라 안에서도 역사적 맥락에 따라 여론의 공감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지금 우리나라는 국가적인 성취를 위한 희생보다는, 개인의 노력과 역량으로 성취한 기회(올림픽 참가와 같은 일생일대의 기회)에서 후회없는 경기를 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나 역시 이 부분은 팀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학교운동부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양상을 경험적 지식에 근거하여 이야기해보면 대부분 아주 단순한 이유로 갈등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투기 종목에서 같은 학교운동부 안에 같은 나이에 같은 체급에 세 네명의 선수가 있다면 어떤 대회의 해당 체급에는 그 중 한 명만이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된다. 같은 학교운동부 안에서 함께 운동하지만 서로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쟁관계이기에 팀으로서 협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체급이 다른 학생들이 모여서 단체전 경기에 출전한다고 하더라도, 평소 갈등관계에 있던 동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말과 행동 등이 조금이라도 불편감을 준다면 이것이 누적되어 아주 큰 갈등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학교운동부의 성적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는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미 우리 학교의 어떤 체급에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선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잘하는 학생선수를 전입 절차를 통하여 영입하는 일들이 있다. 이런 행태는 기존의 학생선수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으며, 학교운동부가 관련 법률에 근거한 학교의 교육활동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직업적인 선수들이 모여있는 팀이라면 사정은 다르겠지만, 학교운동부라면 팀의 승리보다 교육적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아가 국가대표팀의 최종 목표가 국가에 올림픽 메달을 바치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스포츠에서 승리란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부끄러운 승리는 그 어떤 결과보다도 더 인정받기 어려우며 비판받아 마땅한 세상이 되었다.
팀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의 팀워크
팀 단위로 경쟁하는 구조가 본질인 스포츠의 팀워크는 개인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와는 완전히 맥락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팀 스포츠는 팀으로서 경기를 할 때만 승리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팀을 구성하는 선수들의 개인적인 역량의 총합과 팀의 경기력은 같을 수 없으며, 팀으로서 기능해야만 경기력을 향상시켜 승리를 할 수 있다. 모든 선수들은 팀으로서의 역량이 발휘되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고 그 역할을 찾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작년에 이와 관련된 내용의 책을 통해 '팀 케미스트리'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던 기억이 있다. 팀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에서는 팀워크란 실체가 있으며, 팀 승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미덕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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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참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다. 급격한 성장과 발전,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압축적으로 경험한 사회 갈등 등을 통해 더 많은 고민과 더 많은 해결책도 찾아내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 내가 느끼기에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문장은 더 이상 절대적인 미덕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않다.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로 느껴진다. 과거의 우리나라 스포츠가 이루어낸 성취의 공식은 이제 더 이상 공감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변화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포츠는 사회의 거울이며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실현해주는 일종의 초현실적인 세계이다. 사회적 맥락과 동떨어진 스포츠는 존재하기 어렵다. 학생선수 한 명 한 명이 귀한 시대다. 특정한 선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의 팀 성공 방정식은 이제 그만 사라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