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의진 Feb 28. 2024

스포츠윤리 주제와 쟁점 #05

유전자 도핑은 왜 금지되어야 하는가

*이 글은 [ 스포츠 윤리 주제와 쟁점 ] 책의 목차에 따라 생각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도핑. 이 책의 다른 주제와는 다르게 “왜”라는 질문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저자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는, '스포츠는 과연 본질적으로 공정한 경쟁인가?'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는 방식으로 도핑이라는 주제를 풀어냈다.


스포츠의 본질적인 가치인 경쟁, 사람들은 '경쟁을 공정하게 하기 위하여' 규칙을 만들고 그 범위 안에서 경기를 한다. 이것이 스포츠의 핵심이다. 그런데, 모든 선수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능의 수준과 신체적인 조건이 각기 다르다. 모든 선수가 동일한 노력을 한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경기력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선천적인 재능의 차이에는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분위기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정한 경쟁이란 무엇일까.




유전자 도핑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간단하다. 이러한 노력은 정당한 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누구나 더 나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그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공정하지 않다는 논리다. '스포츠란 훈련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라는 명제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유전자 도핑은 한 사람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며, 유전자 도핑을 하지 않아서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선수들이 유전자 도핑을 하루 밖에 없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고도 이야기한다.


반면에, 유전자 도핑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는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유전자 도핑으로 더욱 건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유전자 도핑보다 무리한 훈련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스포츠 본연의 목적이 한계를 극복하는 것에 있다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유전자 도핑을 시도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행동이기 때문에 비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타고난 재능과 신체조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판하지 않는다면, 유전자 도핑으로 신체조건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노력도 비판할 수 없다는 논리의 주장도 있다.


우리는 타고난 운동 재능이 우수한 자와 그보다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자가 함께 경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는 여성 선수만 참여하는 경기나 장애인 올림픽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경기를 따로 만든다고 해서 이들을 차별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타고난 운동 재능의 현저한 차이를 인정하는 경기를 공정한 경기라고 부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유전자 조작 기술을 활용한 자와 타고난 운동 재능을 가진 자의 경기를 공정한 경기라고 부르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


저자는 마지막으로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 한계를 마침내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과거에는 없었던 논쟁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우리가 메시와 같은 놀라운 선수들의 재능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시의 동료, 메시를 지도했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메시가 경기 중에 하는 위대한 퍼포먼스는 연습을 한다고 해서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메시의 플레이에서 그 어떤 선수보다도 더 큰 감동을 받고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치다. 


사람들이 느끼고 기대하는 스포츠의 매력 중 하나는, 누구나 노력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닌 생각지도 못했던 수준까지 마침내 도달하는 '놀라운 재능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잘 짜여진 조직력과 준비된 전술로 이루어내는 독일팀의 완벽한 승리보다는, 무엇인가 허술해 보이지만 은근히 기대감을 주는 창의적인 플레이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승리에 열광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유전자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선수에게 보편적인 접근성과 선택의 자율권이 주어지는 세상이라면, 스포츠 세계에서 유전자 도핑에 대한 논란은 없을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든다. 십수년 전의 '전신 수영복 시대'에 세워졌던 놀라운 기록들은 한동안 깨지지 않았고, 다시는 도달할 수 없는 '기술 도핑' 시대의 부끄러운 기록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선수들은 천부적인 재능과 과학적인 훈련 등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려 당시의 기록들까지 깨드리는 수준에 도달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더 큰 박수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이 공정한 경쟁인가에 대한 논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누군가가 보기에는 평평한 운동장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량적인 비교가 불가능한 철학과 가치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로봇들이 스포츠 세계에서 경쟁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다만, 인간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로봇이 나온다고 해도 올림픽 경기를 통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누군가 경쟁하는 육상 경기가 가치없는 스포츠로 폄하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스포츠는 인간적인 경쟁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스포츠가 인간적인 모습을 상실하면 외면받게 될 것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유전자 도핑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이전 19화 스포츠윤리 주제와 쟁점 #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