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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Mar 09. 2024

스포츠윤리 주제와 쟁점 #07

스포츠 속 불문율은 지켜져야 하는가

*이 글은 [ 스포츠 윤리 주제와 쟁점 ] 책의 목차에 따라 생각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이 책의 일곱번째 내용은 내가 3년 전에 브런치에 생각을 정리해보았던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바로, 불문율 그리고 자비규칙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 책 역시 내가 문헌에서 접했던 사례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참 어려운 문제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적당한 수준의 경기력만 발휘해야 상대를 존중하는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최선을 다 해서 큰 점수차이로 승리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인지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마츄어 야구 경기의 '콜드게임(Called Game)' 규칙처럼, 그 선이 명문화되어 지켜야 할 규칙이 되는 경우도 있다. 참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다.


https://brunch.co.kr/@sobong3/38




스포츠 경기에서의 불문율이란 무엇이며,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인가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정해진 규칙 속에서 해당 스포츠 종목의 특성을 실현하는 형태로 경기가 진행된다. 선수들은 어떠한 범위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행동하며 경쟁에 참여할 수 있다. 바로 이 제한된 범위의 자율성 안에서 다양한 장면과 감동적인 역사들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규칙을 잘 지키며 경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마음이 불편한 상황들을 맞이할 때가 있다. 불문율이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선수들이 관습적으로 만들어 온 문화다.


불문율은 주로 승패가 거의 결정난 상황에서 생겨난다. 농구 경기에서 큰 점수차이로 승리하고 있는 팀은 마지막 공격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남아있는 공격제한 시간을 그대로 흘러보내며 선수들과 인사를 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경기에서 두 팀간의 점수 차이가 크게 날 때는, 두 팀 모두 무의미한 도루를 시도하지 않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탁구 경기에서 10:0으로 리드하고 있는 선수는 고의로 서브 상황에서 실수하여 11:0 경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도,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관중들도 모두 이러한 불문율을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때로는, 스포츠맨십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라며 칭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스포츠 경기의 불문율은 승패가 결정난 상황에 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에서는 홈런을 친 타자가 '너무 좋아하거나, 세레머니를 지나치게 길게 하거나, 베이스를 천천히 달리거나' 등의 행동을 하면 홈런을 맞은 투수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이런 행동을 한 선수가 다음 타석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선수를 향한 '빈볼(Bean Ball)'이 날아온다. 축구 경기에서 기술이 뛰어난 선수가 상대 수비수를 조롱하는 듯한 기술을 사용할 때 그 선수는 비난을 받거나 강한 태클을 당하게 된다. 이런 다양한 맥락의 디테일한 불문율은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이 책의 이번 주제는 승패가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의 불문율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진정한 경쟁, 좋은 경쟁이란 가치 있는 상대로부터의 도전을 필수로 한다. 압승의 경우에는 이런 요소가 일시적으로나마 결여되어 있다. 좋은 경쟁이란 탁월함, 선수와 팀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끌어낸다. 이러한 퍼포먼스야말로 막상막하의 격렬한 경쟁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진기하고도 멋진 순간들, 스포츠가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이다. 좋은 경쟁을 통해 선수들과 팀은 그들이 참여하는 스포츠에 대한 존중을 드러낼 수 있다.


경기를 대강한다는 것은 상대와 관중, 경기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에 반하는 행동이다. 따라서, 저자는 '대강하기'는 노력이라기보다는 전략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였다. 압승이 결정된 상황에서의 대강하기란 점수를 내기 위한 전략을 피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농구 경기에서는 이 주장을 그대로 실천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른바 '가비지타임(Gabage Time)'용 후보 선수를 투입하는 문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비지타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돈을 내고 멋진 경기를 기대하고 입장한 관중들이 가비지타임이 펼쳐질 때 기분나빠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 수준의 경기, 최고 수준에 도달한 선수와 팀간의 경기에서는 해당 경기의 결과와 선수 개인의 기록 등이 단일 경기 수준에서 정리되지 않는다. 한 시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압승을 하는 팀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때가 있다. 선수 한 명 한 명 역시 그들의 기록이 그들의 역량을 증명하며 그들의 수입과도 직결된다는 측면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마땅하다. 단순하게 스포츠맨십을 실천하는 가치를 넘어, 상업적인 성격이 짙어져있는 프로화된 스포츠 경기에서는 압승의 맥락을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프로야구 경기에 콜드게임 규칙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대강하기'의 적절한 선이란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을 보유한 팀, 예를 들면 스타 선수들로 구성된 유럽 최고 수준의 축구 클럽이 상대적으로 축구 실력이 뒤떨어져있는 아시아권에 '투어 경기'를 하러 방문할 때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팀을 상대하는 선수들의 바람은 큰 점수차이로 지더라도, 자신들과의 경기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두 출전하여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관중들 역시 마찬가지의 기대감을 가지고 경기를 보러 온다. 우리 팀이 세계적인 팀에게 승리하도록 응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 같지만, 오히려 세계적인 선수들의 '제대로 된 진짜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더 크다. 그래서, 엄청난 티켓값을 지불하고도 구름같은 사람들이 그 경기를 보겠다고 현장으로 달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감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경기, 이른바 '대강하기' 전략으로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배신감과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게 된다. 2004년 수원 삼성과 친선경기를 치르기 위해 내한했던 스페인 축구의 자랑 FC 바르셀로나는, 호나우지뉴 등 주전 선수가 모두 출전했지만 졸전 끝에 수원 삼성에 1-0으로 패배하고도 크게 기분나빠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2019년 전설이 되어버린 '날강두' 사태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https://sports.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6835300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대강하기' 전략보다는 '자비규칙'을 정교하게 만들어 공식적인 규칙으로 도입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자비규칙은 압도적인 차이로 이기는 승리를 없애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대신 의도적인 압승에 수반되는 해로움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자비규칙은 이기는 팀이 자비규칙이 적용될 때까지 최손얼 다해 경기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득점을 덜 하려고 대강하는 것보다 더 정직하고 바람직한 방식이다. 스포츠맨십이 패자는 승자에게 박수와 축하를, 승자는 패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존중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스포츠에서 자비규칙은 장려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챕터는 바로 직전 챕터의 스포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행동'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스포츠에서 최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선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것일까. 때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의도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스포츠란 정말 다양한 상황이 있고, 다양한 맥락이 있어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어려운 분야다.


학교체육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학교스포츠클럽대회 야구 경기에서 두 팀간의 격차가 너무 커서, 1~2회에 콜드게임으로 경기가 종료되면 모든 학생들이 아쉬움을 토로한다. 승리한 팀에서는 제대로 경기를 해 볼 기회도 없이 순식간에 경기가 끝나버려 기회를 빼앗긴 것 같아 아쉽고, 패배한 팀에서는 경기를 길게 하면서 자신들이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못 해보고 경기가 끝나버려서 기회를 빼앗긴 것 같아 아쉽다. 지도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제대로 된 스포츠 경기를 경험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참 어렵다.


이럴 때 교사들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게 된다. 때로는 심판에게도 협조를 구한다. 경기는 규칙에 따라 결과를 내기로 하고, 경기결과와 관계 없이 콜드게임 이후의 나머지 이닝을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학생들에게 경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다 이렇게 아름답고 교육적으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다만, 교사가 스포츠를 교육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일관된 철학과 분명한 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렵지만, 학생들은 이렇게 또 스포츠를 통해서 삶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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