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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Mar 13. 2024

스포츠윤리 주제와 쟁점 #08

스포츠는 정의를 실현하는가

*이 글은 [ 스포츠 윤리 주제와 쟁점 ] 책의 목차에 따라 생각을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불공정에 분노하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주장이 우세한 시대다. 현실이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공정한 경쟁에 대한 판타지'가 실현되는 정의의 세계, 불합리한 현실과는 다르게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순수한 세계로 여기지는 분야가 바로 스포츠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 선수에게 더 높은 윤리의식을 기대하고, 스포츠 세계가 그 어떤 분야보다 더 깨끗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지저분하고 추잡한 시도들이 사라진다면, 정의를 실현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스포츠의 모습을 지켜낼 수 있을까. 혹시, 스포츠가 본질적으로 불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다른 논의들은 애초부터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저자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운(Luck) - 타고난 신체적인 특성의 차이, 날씨 등의 서로 다른 환경


저자는 우수한 스포츠 선수들이 일반적인 사람들, 대다수의 다른 선수들과는 다른 신체적 우월성을 타고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한, 동일한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이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서로 다른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공정한 것인지 묻는다. 즉, 스포츠 경기의 결과가 노력이나 최선으로 이룩한 경기력이 아닌, 일종의 운(Luck)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스포츠는 정해진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누가 더 뛰어난 기술을 가졌는지를 겨루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것을 스포츠의 '기술원칙(Skill thesis)'이라고 부른다.


스포츠의 기술원칙에 따르면, 선수들은 노력의 결과로 얻은 기술을 발휘할 때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 스포츠 경기에서는 타고난 신체적인 특성의 차이를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종목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신체적 특성은 무엇인지 연구하여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선수를 발굴해내기 위한 노력도 끊이지 않는다. 스포츠 현장에서 기술원칙에 위배되는 일들이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신체적 특성의 차이에 대한 부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느낌이다. 스포츠에서 신체적 특성의 차이는 규범적으로 용인되는 것이다. 


날씨와 같은 운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위기다. 물론, 100m 달리기의 기록을 세계적으로 공인받기 위해서는 바람의 속도 등의 환경적 수치를 범위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온전히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상대적인 경쟁을 할 때는 이조차도 고려되지 않는다. 심지어, 예선 경기에서 우수한 기록을 보인 선수에게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레인에 배정하는 원칙도 존재한다. 최고 수준의 경쟁을 할 때는, 핸디캡을 고려하여 비슷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보다 잘 하는 선수가 더 잘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스포츠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운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더 좋은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운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주 당연한 전제로 공감을 얻고 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스포츠 세계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스포츠에서의 공정함이란 무엇인가


공정한 스포츠란 모든 사람에게 참여의 기회가 열려있고, 참가한 선수들은 동일한 조건에서 경기를 해야 하며, 경기규칙을 지키지 않는 선수에게는 벌칙을 주는 것이다. 모든 선수가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똑같은 규칙의 적용을 받으며,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하여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마땅히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스포츠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실현되는 세계다. 스포츠는 곧 능력으로만 인정받는 순수한 분야다. 이것이 사람들이 스포츠에 기대한 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능력이라는 것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 능력은 마땅히 인정받아야 하는 것일까. 스포츠에 대한 능력주의 접근은 운평등(luck egalitarianism) 관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운적인 요소로 이룬 것은 인정받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운적인 요소를 극복한 진정한 공정을 위해서는 '핸디캡'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반대로,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선수가 그 재능을 노력과 융합하여 발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포츠에서 선수가 이루어 낸 것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본질적으로 스포츠 선수와 유전적 이점은 분리될 수 없으며, 그 이점으로 성취한 보상과 칭송도 마땅히 그의 권리라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신체적 특성은 눈에 잘 보인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스포츠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이다. 메시와 신체적인 조건이 동일한 선수가 메시와 똑같은 훈련을 한다고 해도, 경기에서 메시와 같은 플레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메시만이 가지고 있는 창의력이며 메시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을 우리는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스포츠 팬들은 바로 이러한 천부적인 재능을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 


최근 NBA 농구에는 엄청난 키에도 불구하고, 키 작은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날렵한 움직임까지 겸비한 '웸반야마'라는 이른바 사기캐릭터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웸반야마의 퍼포먼스를 보며 키가 클뿐 훌륭한 선수는 아니라고 폄하하는 여론은 의외로 적은 듯하다. 농구 경기에서는 높이가 재능이며 그 재능을 활용하여 상대적으로 우수한 경기력을 발휘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스포츠에서 재능과 노력을 완벽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농구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재능은 바로 '높이'다. 그 높이는 선천적인 키일수도 있지만, 체계적인 근력훈련으로 얻어낸 점프력일 수도 있다. (*출처-슬램덩크 만화의 한 장면)


스포츠의 근간은 바로 공정성이다. 사람들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스포츠에서 공정성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때로는 미디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팀이나 선수를 악으로 묘사하고 여기에 도전하는 팀이나 선수를 정의로 묘사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절대적인 수준에 도달한 선수에게 감동을 받고 경외감을 느끼는 이유도 공정한 경쟁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능력, 천부적인 경기 감각 등의 재능이 노력과 융합되어 경기력으로 표출된다면 그 자체로 인정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포츠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그 어떤 문화보다도 더 인간성이 드러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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