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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Jun 14. 2024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월드클래스 축구 선수의 아버지는 왜 독서를 강조하는 것일까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책읽기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책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진중하게 읽으며 깊이있게 곱씹어봐야 하는 책보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정리된 에세이나 검색엔진의 알고리즘이 귀신같이 찾아서 보여주는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글들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간간히 책을 읽고, 이 공간에 독후감을 쓰고는 있지만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글쓰기의 소재로 억지로 책을 읽는 느낌이 강하다. 계속하다보면 습관이 되리라 생각하고 해 왔지만, 브런치에 주1회 글쓰기도 최근 2~3개월 동안은 잘 못지키고 있는 걸 보면 독서라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최근에 내가 일하고 있는 조직의 최고 결정권자께서 독서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북웨이브(Book Wave)' 캠페인인데, 각 학교와 모든 조직이 각자의 특성에 맞게 독서 관련 사업을 녹여내고 있다. 우리 부서 역시 2021년부터 추진해왔던 '학생선수 맞춤형 독서교육'의 맥락에서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맥락에서 올 해는 학생선수들의 글쓰기와 책읽기 습관 형성을 돕기 위하여, 서울특별시교육청 관내의 모든 학생선수에게 글읽기(학생선수 추천도서 목록)와 글쓰기가 포함된 '학생선수 맞춤형 학습플래너'를 제작하여 배부하기도 하였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2499106?sid=102



이러던 와중에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스타를 길러낸 아버지가 독서 전도사가 되어 나타났다. 학생선수 글쓰기 교육에 이보다 더 좋은 사례가 어디 있을까. 얄팍하지만,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말하는 독서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학생선수들이나 그 보호자들이 교육청 장학사가 하는 이야기는 꼰대들의 이야기라며 한 귀로 흘려들으려 하지만, 그들 모두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는 귀를 귀울여 듣기 때문이다. 그의 교육철학, 아니 그의 독서론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여 이 책을 읽게 되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4974069?sid=10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925307?sid=103

https://m.sports.naver.com/kfootball/article/586/0000077547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3889574?sid=103




축구선수 손웅정의 삶과 아쉬움


저자는 먼저 손흥민의 아버지로서의 자기자신이 아닌 축구선수로서의 자기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었다. 손웅정이라는 축구선수는 선수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선수생활을 그만하게 될 때까지 아쉬운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아쉬움들은 일종의 '한(恨)'이 된 듯 하며, 이러한 한이 모여서 결국에는 현재 손웅정이라는 사람의 삶의 철학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이며 왜 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학교운동부를 담당하는 장학사의 입장에서 그가 느꼈던 학생선수 생활의 아쉬움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40여 년이라는 세월이 더 지난 지금에도 그나 느꼈던 아쉬움이 존재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학교운동부가 본질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해당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수십년 전이나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제도적인 밑바탕과는 별개로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좋지 않은 그림자는 망령처럼 실존하고 있다.


체육특기자 진학 문제만 해도, 예나 지금이나 학생의 배정 권한은 교육감 또는 교육장에게만 있다. 경우에 따라서만 학교장이 일부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학교운동부는 학교체육진흥법에 따라 해당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로 구성하여 운영되는 운동부일 뿐이다. 선수를 주고받으며 보다 강한 경기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선수를 거래하는 스포츠팀과는 구별되는 학교의 교육활동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학교운동부는 학생의 교육활동 전반에 걸쳐 교육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의 관점에서 학교운동부와 학교 밖 스포츠팀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려는 시도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최소한, 학교 안의 사람들은 학교가 선수를 공급하는 도구적인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80~90년대처럼 각 스포츠 종목에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학교가 알아서 선수를 양성하여 공급해주는 식의 체계는 이제 더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부조리와 불합리를 참아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손웅정 씨가 실제로 자신의 교육 철학을 어떻게 펼쳐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 표현한 그의 생각처럼 축구를 하던 농구를 하던 배구를 하던 사람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의견에 공감한다.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그도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데, 국가에서 체계적인 제도를 통해 운영하는 학교의 운동부가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에게 독서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이 여러가지로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 이야기한 것처럼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그것을 채우는 일의 시작이며,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는 그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 책을 더 잘 이해하고 완벽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독서 노트'를 썼다는 사실이다. 그의 독서 루틴은 '삼독(검정색 펜, 파랑색 펜, 빨간색 펜)을 하고, 독서노트를 쓰고, 책을 버리는 것'이다. 그의 독서 루틴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이 방법이 최선의 습관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특히, 책을 버리는 것이 놀라웠다. 책이 물리적 부피를 가지고 있어 정리하기 어렵다는 그의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물리적인 부피를 가지고 있는 책은 버리더라도, 그 전에 디지털화하여 물리적인 부피 없이 영구보관 하는 방법을 활용하는 중이다.


손웅정 씨의 독서노트(*출처-한국일보 2024.4.17. '수천 권 읽은 애서가 손웅정 "손흥민에 독서 강요 안 한다" 이유는?)


그에게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일종의 저항이기도 하였다. 무엇에 대한 저항인가 하면, '운동 선수 출신은 무식하다는 편견'에 대한 저항이었다. 물론, 단순한 자존심 차원을 넘어 실제로 자신의 배움과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독서라는 습관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 이 책을 읽는 나 역시 '체육 교사들은 무식하다.'는 시선이 기분이 나빠서 독서를 하고 배움을 찾고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비판적인 시각과 논리적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선수 최저학력제도'가 시행되고, 점점 더 그 기준이 강화되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대다수의 학생선수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소흘히 여겼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상대적 비교에 의한 판단이 합리적이로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다시 따져보고 싶지만, 여러가지 데이터와 눈에 보이는 현상들 앞에서 제도를 더욱 강화해서라도 학생선수들의 정상적인 학교생활 참여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타당하고 바람직한 취지에 대한 공감대가 더 컸기에 지금의 시스템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문맹의 시대, 초등학교 의무교육의 시대, 중학교 의무교육의 시대를 넘어 최소한 고등학교까지는 보통교육의 성격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지금의 시대에, 초중고 시절의 학교교육을 통해 특정 분야의 직업기술을 구체적으로 함양하여,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수십년의 직업에 입문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국가교육과정 역시 지식과 기술이 교육이 아닌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잠재력 즉 역량을 길러주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시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디지털 시대의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독서교육은 더욱 강조되는 분위기다.


재미있는 사실은 학생선수에게만 독서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는 모든 학생들이 책을 읽는 경험과 습관을 쌓기를 바라며, 궁극적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역량을 함양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모든 시도교육청과 교육부가 다양한 형태로 학생들의 독서교육 내실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사회적인 공감대 역시 크다. 과도기적인 성격으로 학생선수 맞춤형 독서교육을 기획하고 실천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어쩌다보니,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를 길러낸 부모'로서의 저자가 아닌 '독서 전도사'로서의 저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어보니,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읽다가보니, 이 책의 문장 하나하나가 출판사의 교정이 아닌 그의 문장 그대로 담겨있는 것일지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 책의 대부분의 문장을 그가 직접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독서노트 습관을 통해 길러진 글쓰기 역량을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학생선수가 되었건, 일반적인 학생이 되었건, 내 사랑하는 자녀이건 간에 모든 학생들이 글쓰기를 더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학생이 머리에 든 것이 하나도 없어서 글씨를 못 써서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형편없는 글솜씨라서 부끄러워 글을 못 쓰겠다고 하더라도, 학교가 학생들에게 더 많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억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손웅정 씨도 아들에게 책읽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부모로서 자녀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진다. 하지만, 이것이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기대한 효과는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학창시절 수험서 외에는 전혀 책을 보지 않던 나도 최근에는 제법 책을 읽는다.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조급함은 버려야한다는 점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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