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적 운동선수가 되는 마스터 플랜이 있다고?
운동선수에게 '마스터 플랜'이 있다니. 적어도 내가 아는 경험적 지식의 범위 안에서는 운동선수라는 직업적 경로에 마스터 플랜은 존재할 수가 없다. 아니, 우리나라의 아주 특수한 이 분야를 문화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국내에서 경쟁이 거의 없는 아주 특수한 종목(이른바 피라미드형의 정상적인 구조가 아닌 직사각형 형태의 선수 구조를 가진 종목)의 운동선수로 진로를 설계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특수한 종목은 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선수로의 길을 강요하는 종목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선수하면 떠오르는 인기있는 종목의 스타 선수가 되는 길에는 마스터 플랜이 존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운동선수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재능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열심히 훈련을 하지만, 누구나 다 메시가 될 수는 없다. 손흥민의 삶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도, 손흥민처럼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운동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능과 노력, 그리고 기회라는 운적인 요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아는 이 분야의 특성인데, 이 책은 이름부터 야심차게 '운동선수 마스터 플랜'이라고 지은 것이다.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다. 과연 운동선수의 마스터 플랜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운동선수라는 직업이란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라는 직업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으로 내용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학교운동부 또는 학교 밖 클럽에서 배우는 학생들은 '학생선수'라고 한다. 직업적 선수가 아닌 직업적 선수로의 진로를 탐색하는 학생인 것이다. 이 책은 그 이야기를 먼저 하면서 학생선수를 직업적 운동선수와 구분하는 것부터 설명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가 직업인 경우는 크게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해당 종목이 프로스포츠로 운영되어 선수 한 명 한 명이 일종의 개인사업자가 되어 팀과 선수로서 계약을 맺고, 계약 기간 동안 해당 팀에 소속되어 훈련하고 경기에 참가하는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이다. 이것을 프로팀, 프로선수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실업팀이라고 불리는 어떤 기업이 운영하는 스포츠팀에 소속되어 해당 기업의 직원 신분으로 선수생활을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팀과 비슷하게 운영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세미 프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생선수는 프로가 아니다
매일 저녁 TV 채널과 인터넷 방송 등으로 중계되는 수 많은 스포츠 경기 중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종목들이 바로 프로 스포츠로 정착한 종목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로 스포츠로 활성화된 종목은 이른바 4대 인기 종목인 축구(K리그), 야구(KBO리그), 농구(KBL), 배구(V리그)다. 이 책의 서두에서는 해당 종목의 연봉 등 간단한 현황을 소개하였다. 프로 스포츠로 활성화된 종목 중에는 골프(KPGA & KLPGA), 당구(PBA & LPBA), 프로 권투, 프로 볼링 등의 개인종목도 소개하고 있다.
이 밖에도 운동선수를 직업으로 할 수 있는 종목으로 수영, 배드민턴, 태권도, 씨름 등의 현황과 핸드볼, 테니스, 탁구 등의 국내 현황과 세계적인 추세 등도 소개하였다. 유도, 사격, 양궁, 펜싱 등의 개인 종목도 직업적 선수로의 길이 있다는 사실도 전달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이 운동선수로의 마스터 플랜을 보여주는 책인지 운동선수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책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 책의 기획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전반부 챕터만 읽고 든 생각은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제 수업에 활용하면 적절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라는 직업군이 대체적으로 어떤 종목들에 있는지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안내는 충분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운동선수의 직업 수명
꿈에 그리던 직업적 운동선수가 된 이후의 삶은 어떨까. 이 책은 운동선수가 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야기함과 동시에, 운동선수로서의 삶도 사실은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운동선수로 성공하지 못하는 선수가 아닌, 성공한 운동선수도 20대 중반이면 선수로서의 커리어가 끝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내가 학교운동부 관계자 교육, 특히 학교운동부 소속 학생선수의 학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하여 이야기하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공감이 되었다. 이 책에서 해당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활용한 데이터는 중앙대학교 김종환 교수의 연구결과다. 1983년부터 2010년까지 27년 동안 K리그에서 뛴 국내 선수 1,765명을 분석한 결과, 축구선수들의 평균 은퇴 연령은 27~28세로 나타났다. 일부 스타 축구선수들의 경우에나 30세 이후까지 선수로 경력을 유지할 뿐, 대다수의 선수들은 20대 중반이면 선수로서의 경력을 끝낸다는 것이다. 종목과 성별 등의 특성에 따라 최고의 선수가 10대 후반에 선수로서 정점을 찍고, 20대 초반에 은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실에 유의하여 선수 경력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은 학생선수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아이 마음껏 운동만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어떤 연구결과에 따르면 운동선수 이후의 삶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의 하나가 해당 종목 바운더리 밖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라고 한다. 즉, 학교에서 학교운동부 내 친구들말고, 학급이나 다른 교육활동 중 만나는 친구들과의 교류가 학생선수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학생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고등학교까지의 학교 생활에서 특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주는 것보다 학교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교육청에서 학교운동부 관련 정책을 운영하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며 학생선수들이 일반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융합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학교는 교육기관이며 적어도 고등학교까지의 학교생활은 사회적 경험으로서도 아주 중요한 보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가 되는 방법
이 책은 운동선수가 되는 방법으로 학교운동부에 소속되어 운동하는 방법과 함께, 학교운동부 외 클럽에서도 동일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꿈은 다른 것이라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으며, 직업적성검사 등의 방법을 통하여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것도 안내하고 있다. 대한민국 학교운동부 문화가 일본 만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는 사실과, 생각보다 더 힘든 과정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안내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체육고등학교를 안내하면서, 체육고등학교를 특성화고등학교로 분류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체육고등학교는 법률 상 특수목적고등학교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특성화고등학교 중 교명에 스포츠나 체육을 넣는 경우나 체육 관련 학과의 전공을 운영하는 특성화고등학교가 많아지면서 혼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체육교육과정 특성화학교(체육 중점학교 포함)와의 구분도 명확하게 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학교구분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설립되어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체육고등학교의 특수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 선수로 입문하는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체육특기자 대학교 입학 전형'이 스카우트 중심의 과거와는 다르게, 공정한 경쟁 선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안내하였다. 최종 단계에서의 직업 선수 선발 과정도 드래프트로 운영되는 종목이 있으며, 자유계약 제도를 통하여 운영되는 종목도 일부 있다. 실업팀 등의 경우에 공채 형식의 선발 과정을 거쳐 직업 선수로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운동선수가 되기까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는지도, 대략적인 계산법으로 이해하기 쉽게 안내하고 있다. 학교운동부나 스포츠클럽의 월회비를 직업선수로 입문하기 직전까지의 시간(월)으로 곱하여 대략적인 비용을 산출하였다. 과거와는 다르게 최근에는 단체 종목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레슨을 추가로 받는 문화가 확산되어,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되고 있는 분위기라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선수라는 직업은 투자 대비 성과가 낮은, 즉 비효율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잇다. 운동선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될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많은 비용을 투입한다고 해도 성공할 확률은 아주 낮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 중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군이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취업률이 낮은 분야가 바로 스포츠 즉 운동선수다. 골프, 승마, 피겨스케이팅 등의 종목은 특히 엄청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하였다.
이렇게 해서 운동선수가 되고, 스타 선수로 성공하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도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스타 선수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며, 연봉은 얼마나 받게 되는지 등의 내용을 몇 가지 사례로 소개하였다. '프로 운동선수의 과거와 현재'라는 주제로 골프의 박세리와 최경주를, 야구의 박찬호, 우리나라 축구 산업의 발전 과정, 4대 프로 스포츠의 출범 과정 등이 주요 사례였다.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국제대회에서의 퍼포먼스가 중요하지만, 입단 테스트 과정에 직접 도전하여 꿈을 이룬 선수들도 있음을 소개하였다.
여자 스포츠의 현실도 축구와 야구 등을 통해서 일부 소개하고 있는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는 않고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아마도, 여자 스포츠 분야의 활성화 등을 고려하여 긍정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실제로는 너무나도 힘든 현실에 놓여있는 종목을 그 사례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 1위가 스포츠 선수라는 언론 보도는 이제 너무나도 친숙한 뉴스가 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문화를 즐기는 사회가 되었다. 어린 학생들이 스포츠 선수로의 성공을 꿈꾸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이해된다.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것도 아마 그러한 맥락이었으리라 생각해본다.
하지만, 학교운동부의 현실과 운동선수라는 직업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스포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환경 속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스포츠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수한 선수가 배출되는 선순환 구조를 아직 만들어주지 못하여 마음이 무겁다. 어떻게 보면 참 쉬울 것 같지만, 정말 많은 것들이 얽혀있어 쉽지 않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스포츠를 그 자체로 즐기는 사람들이 부모가 되었고, 어린 나이에 한 길에 모든 것을 걸어야한다고 채찍질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더 교육적이고 바람직한 학교운동부 운영을 기대하는 학부모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속도는 답답하지만, 어쨌든 과거보다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도 분명하다. 거창한 마스터 플랜을 세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즐기는 과정에서 더 많은 재능들이 유입되고, 그 재능이 발현될 기회가 많아져 각각의 스포츠 종목들에서 우수한 선수들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