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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Mar 27. 2024

스포츠 리터러시 교육론

스포츠문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체육교육을 전공하며 고민하고, 학교 현장에서 체육 교사로 근무하며 공감했던 부분이 바로 '스포츠는 문화적으로 접근하여 종합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추상적인 생각은 '스포츠 리터러시(Sports Literacy: 운동소양)'이라는 개념으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관련 문헌을 참고하고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스포츠 리터러시는 무엇이며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었다.


https://brunch.co.kr/@sobong3/28


https://brunch.co.kr/@sobong3/29


시간이 흘러,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틀에 대한 책이 나왔다기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서 읽어보게 되었다. 스포츠 리터러시의 개념이 방법적이기보다는 철학적이었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스포츠 교육의 개념


스포츠교육은 신체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그 체험이 자기성장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다(최의창, 2018)


저자는 스포츠 교육을 세 가지 표현으로 종합하고 있다. 첫째, '운동향유'는 운동을 향유하는 것이다. 둘째, '자기성장'은 배우는 이(또는 가르치는 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셋째, '공동행복'은 행복한 삶을 살아나가되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 세가지는 수평적 관계이기도 하며 수직적 관계이기도 하다. 서로 동등한 규모의 중요성을 지니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의 전단계로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운동향유가 시작이자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운동향유가 가장 먼저 실천이 되어야 한다.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항상 첫번째 일이고 목적이다. 농구 교육은 농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일이며, 수영 교육은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스포츠를 즐기다'는 말은 그렇게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즐기다는 말 앞에 다양한 수식어가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을 '15+ 향유'라는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이 15가지 이상 있다는 뜻이다. 15가지 방법이 흔하게 이루어지는 즐기는 방법이고, 그 외의 다양한 방식들도 있다는 의미다. 기본이 되는 15가지 방법은 바로 '하기, 읽기, 쓰기, 보기, 듣기, 말하기, 그리기, 부르기, 만들기, 느끼기, 모으기, 나누기, 셈하기, 생각하기, 사랑하기'이며, 이 기본적인 15가지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것이 스포츠교육의 기초라고 주장하였다. '15+ 향유'는 배우는 사람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 배움은 전보다 나아지는 것 즉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성장'이 바로 이런 뜻이다. 배우기 전보다 어떤 방향으로나 어떤 수준으로나 나아진 상태로의 변화가 바로 성장이다. 


학습자로서의 인간은 '체성, 지성, 감성, 덕성, 영성'을 총체적으로 지닌 존재다. 이를 '오성'이라고 부른다. 사람이이다섯가지성향(자질, 특성)을지니고있음을살펴보는방식은여러가지가있을수있다. 사실,  이 다섯가지는 각각 이미 신체활동(작은 스포츠, 엑서사이즈, 댄스 등) 이 사람의 여러 측면에 미치는 영향들을 연 구하는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그 정체에 대한 인정을 받고 있다. 체성(체력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 지성(사고력과 뇌기능)에 미치는 영향, 감성(심미성과 공감력)에 미치는 영향, 덕성(협동심과 이타심)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영성(자연애와 인류애)에 미치는 영향 등이 각각, 때로는 두 세 성향들(체성과 지성, 체성과 감성, 지성과 감성과 덕성 등)이 함께 탐색되고 확인되고 있다.


신체활동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게 되면, 얻어지게 되는 행복감의 종류도 그에 따라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된다. 마치 감각적 행복감이 흑백텔레비전이라면, 오성적 행복감은 칼라텔레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포츠리터러시가 함양되면 오성적 행복감은 OLED텔레비전급으로 선명하고도 강렬하게 그 색채감을 감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숙된다. 이 세상의 모든 칼라가 삼원색의 융합으로 만들어지듯,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모든 행복감은 오성의 다양한 융합으로 창조되어진다.


스포츠 리터러시를 기르기 위해서 스포츠를 가르칠 때에는 개인적인 행복한 삶의 추구와 함께, 다른 이들과 함께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때의 "함께"라는 표현은 직접적으로 함께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하는 것을 포함한다. 스포츠리터러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음을 새롭게, 넓은 지평으로 펼쳐주는 개념이다. 스포츠를 문화로서 다채롭게 체험하도록함으로써, 스포츠문화를 풍요롭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스포츠 애호가들과 일반인들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그래서 행복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도록, 돕는 것이다.




인문적 스포츠교육의 특징


첫째, 스포츠교육은 온전한 모습의 스포츠를 중요시한다. 스포츠교육에서는 스포츠가 핵심이다. 그것을 배우는 사람이 최우선 핵심이 아니다. 스포츠 자체가 잘 가르쳐졌는지, 배워졌는지가 제일차적 관심사다. 기능, 건 강, 인성 등 배우는 사람의 필요에 근거해서 스포츠교육의 중요성이나 가치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스포츠의 가치 그 자체가 바로 스포츠를 가르치고 배우는 근본 이유, 기본 근거다. 스포츠라는 인간의 문화유산이 그것의 필요성을 뒷받침해준다. 다만, 스포츠는 게임활동을 훨씬 넘어선다. 온전한 스포츠(호울스포츠)란 바로 이런 문화유산, 실천전통으로서의 스포츠를 말한다.


둘째, 스포츠교육은 스포츠의 인문적 차원을 중요시한다. 온전한 스포츠는 과학적 차원과 인문적 차원의 융합체로 되어있다. 스포츠의 역사적, 철학적, 문학적, 예술적, 종교적인 차원에 대하여 주목하고, 이것이 교육의 과정에서 그 가치에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철저한 조치를 취한다.


셋째, 스포츠교육은 가르치는 과정의 인간적 차원을 중요시한다. 가르치는 활동/행위는 가르치는 주체, 즉 교사, 코치, 강사 등의 인간됨과 분리될 수 없다. 오성의 총체적 융합으로 만들어지는 하나로서의 그 사람이다. 이 사람됨은 어쩔 수 없이 가르치는 방식에 드러나고 실제적 영향을 미친다. 가르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규범적, 도덕적 활동이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 훌륭한 성품을 지녀야 함을 기본으로 한다.


넷째, 스포츠교육은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교육을 중요시한다. 스포츠라는 교육 내용을 온전한 형태로 학습자의 몸과 마음에 안착시키게 되면, 그 내용은 학습자의 인간됨 전체(오성)에 스며들게되며 그로 인한  생각과 행동과 태도의 변화가 생겨나게 된다. 개인마다 다른 수준과 정도로 나타나지만 반드시 안과 밖으로 전인적 영향을 미친다.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데에 도움을 준다.


다섯째, 스포츠교육은 융합적 가르치기를 중요시한다. 스포츠를 온전히 체험하고 이해하여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행)하기만으로 충분치 않다. 축구하기가 직접 체험이라면, 하기 이외의 학습활동들은 간접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온전한 축구는 직접 체험과 간접 체험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융합으로 가능하다.




스포츠교육의 내용


스포츠교육으로서 스포츠 가르치기는 스포츠라고 통칭할 수 있는 내용(신체활동 포함)을 가르치는 것을 본질로 삼고 있다. 스포츠교육은 스포츠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자 노력이다. 스포츠라는 내용을 학습자에게 온전히 전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 가르치기이며 스포츠교육이다. 


스포츠는 대표명사로서의 스포츠와 내용범주로서의 스포츠, 이렇게 두 가지 수준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전자는 큰 의미의 스포츠이고, 후자는 작은 의미의 스포츠다. 신체적 움직임 전체를 포괄하여 부르는 종합적인 명칭으로 '신체활동'이 있는데, 신체활동은 큰 스포츠와 동의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다. 가르치는 내용으로서의 신체활동을 저자(최의창, 2018)은 다음과 같이 7가지 양식으로 분류하며 '신체활동 스펙트럼'이라고 개념을 정의하였다.


첫째, 무브먼트는 가장 단순한 기계적 성격의 신체적 움직임이다. 둘째, 엑세사이즈는 건강과 체력을 위해서 개발된 특정한 동작들의 연속이나 동작의 집합이다. 셋째, 마샬아트는 무도, 무예, 무술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신체활동 유형이다. 넷째, 스포츠는 협소한 의미에서 현재 세계인이 열광하는 올림픽 경기나 월드컵 경기에서 보이는 운동이다. 다섯째, 레저는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신체활동으로서 경쟁보다는 흥미의 추구, 승리보다는 자기실현의 차원에 보다 더 관심을 갖도록 한다. 여섯째, 댄스는 예설적 지향성을 갖는 활동이지만 체육적 장면에서 널리 활용되는 신체활동이다. 일곱째, 플레이는 술래잡기, 잣치기 등 신체활동이 많이 관여되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지닌 놀이형 활동이다.



어떤 종류의 신체활동이든지, 그것이 인간의 문화 속에서 오랫동안 행해져 온 것이라면 그것은 3가지 층위(차원), 즉 '기능, 지식, 정신'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기능의 층위는 기술의 측면이다. 몸을 사용하여 기술을 발휘하는 차원이다 둘째, 지식의 차원은 기능과 그 발휘에 관여하는 인지적, 명제적 지식의 측면이다. 모든 신체활동 안에는 이러한 지식의 차원이 녹아들어 있고, 그것들은 추출되거나 정제될 수 있다. 셋째, 정신의 차원은 신체활동의 본령과 가치에 해당하는 차원으로서 기능이나 지식처럼 가시화되지 않는 느낌과 정서의 측면이다.


스포츠는 즉 모든 신체활동은 그것이 온전한 모습일 때에는 기능, 지식, 정신의 세 층위(부분, 국면, 측면)로 구성된다. 저자는 각각을 편의상 '기, 식, 혼'이라고 부르며, 이 세 차원이 골고루 잘 발달되어있는 신체활동을 '온전한 스포츠(Whole Sport)'라고 정의하였다. 스포츠 가르치기는 호울 스포츠 가르치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 식, 혼 중 어느 하나에 함몰된 가르치기는 그것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가르치는 내용을 매우 크게 생각한다. 유형적인 것과 무형적인 것의 결합으로 생각한다. 가르치는 내용을 '실천전통(a practice)'으로서 간주한다. 실천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능의 집합체를 넘어서는 실체다. 실천전통은 그 안에 지식체, 규범체계, 공동의 가치, 기능 등등이 모두 들어있는 종합 세트와 같은 존재다. 다시 말하면, 스포츠 가르치기는 실천전통으로 스포츠를 가르치는 일이다. 어떤 스포츠를 가르치는 것은 해당 스포츠라는 실천전통에 입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입문이라는 표현은 습득, 숙달을 훨씬 뛰어넘는 의미를 갖는다. 실천전통의 다양한 특징과 요소들을 함께 내면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포츠를 배운다는 것은 실천전통, 즉 하나의 총체, 하나의 인간문화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축구를 실천전통으로 가르침으로서 학생은 축구라는 실천전통에 입문하게 되며, 학생은 '축구인'이 된다. 이 때의 축구인은 대한축구협회에 선수로 등록된 소수의 특정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축구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축구팬, 축구애호가를 의미한다. 실천전통으로서의 축구에 입문된 사람이다. 축구라는 인간의 문화활동 공동체 안으로 발을 내딛은 이를 말한다. 인간의 문명된 삶의 한 전통, 하나의 문화를 내면화한 사람으로서의 축구인이다. 




스포츠교육의 방법


저자는 가르치는 일을 가르침의 내용물이 그것의 성격에 합치한 상태대로 그것을 배우는 사람의 몸과 마음 속에 그대로 내면화되도록 하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스포츠를 가르친다는 말은 스포츠가 그것의 특징을 소실하지 않고 배우는 사람의 몸과 마음 속에 깊숙이 들어앉도록 돕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방법은 내용에 의존하며, 내용은 방법을 규정한다. 배움이란 것은 결국 내용이 배우는 이에게 온전히 전달된 상태를 말한다. 온전하게라는 의미는 기·식·혼 전부가 흠집나지 않은 상태로 전달된 것을 뜻한다. 


모든 교육방법에는 두 측면(차원) 즉 '테크닉(technique: 기법)'이라는 표면적 측면과 '퍼스닉(personique: 심법)'이라는 이면적 측면이 있다. 교육방법은 사람이 펼쳐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기법적 차원과 심법적 차원이 함께 펼쳐지게 된다. 스포츠를 가르치는 일은 기법과 심법의 동시적 구사 행위다. 가르치는 이가 잘 가르치고 제대로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매우 강렬하고, 주변 상황이 우호적이라면, 시간이 지나갈수록 가르치는 방법의 이 두 차원(측면)에 대한 의식이 뚜렷해진다. 그것의 자유자재로운 구사력이 높아진다. 구사력의 상승, 이것이 바로 가르치게 되는 상태다. 축구를 가르치고 싶다면, 축구지도 테크닉과 축구지도 퍼스닉을 모두 체득해야만 한다. 두가지 방법(방법의 가지 차원)을 모두 터득해야만 한다. 그래야 잘 가르칠 수 있게 된다.


축구의 퍼스닉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기를 수 있다. 첫째, 테크닉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퍼스닉은 테크닉을 구사하는 방식에 묻혀서, 실려서 발휘된다. 축구기술과 전술을 배울 적에 그것의 메카니즘적 차원과 정신적, 철학적 차원을 함께 배워야 한다. 축구기술에는 이런 차원이 들어있다. 둘째, 퍼스닉은 그것을 구사하는 사람의 사람됨과 스타일 그 자체다. 가르치려는 이는 자기자신의 인간됨을 드높여야 하며, 사고와 행동의 세련됨을 가다듬어야 한다. 축구코치가 되려는 이는 스스로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가르친다. 참 좋은 어른이 참 좋은 축구 교육자가 된다.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그 사람들 곁에 머물고, 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일해야 한다. 셋째, 스포츠에 대한 인문적 지혜와 체험을 많이 깊게 가져야 한다. 테크닉과 퍼스닉을 하나로 버무려 맛깔난 가르침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세상과 인생에 대한 속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다. 


저자는 스포츠 가르치기를 가르침의 내용물이 그것의 성격에 합치한 상태대로 그것을 배우는 사람의 몸과 마음 속에 그대로 내면화되도록 하는 일로 정의하였다. 축구의 기술과 관련 지식은 직접적 방식과 형식적 방식의 테크닉들로 효과적인 지도가 이루어질 수있다. 하지만, 축구의 정신(영혼)의 측면은 그성격상간접적방식과 비형식적 방식의 퍼스닉들로 지도되어야만 한다. 기술과 지식은 기법들로 직접 전달 가능하지만, 정신(영혼)은 심법들이 발휘되어야만 간접 전달로 가르쳐질 수 있다. 배우는 사람의 몸과 마음 속에 그대로 내면화 되도록 하는 것은 이러한 기법과 심법의 적절하고도 균형잡힌 구사와 발휘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이 구사와 발휘는 정해진 원칙이라든가 규칙이라든가 프로토콜이라고 할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가르치는 이의 경험과 경륜, 그리고 당시의 상대와 상황의 상태에 의하여 즉시적이고 즉각적인 대응과 반응으로 이루어질 뿐이다축구의 기·식·혼을 모두 가르치는 것, 즉 호울 축구를 가르치는 일은 호울 코칭(티칭)이다. 제대로 된 가르치기, 올바른 가르치기는 축구의 세 차원을 모두 가르치는 노력이다. 기만 있는, 식만 있는, 또는 기와 식만있는 축구라는 것은, 현실과 현장의 실제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축구는 언제나 호울 축구다.




스포츠교육의 목적


스포츠의 목적은 내재적이며 삼중적이다. 바깥에서 안 쪽으로 게임층, 문화층, 전통층의 세 차원으로 겹겹이 되어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가장 바깥쪽인 게임층만 맛볼 뿐이다. 그 것으로 만족하고, 거의 대부분 충분하다고 여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안 쪽으로 들어가면서, 문화층을 만나고 찾게 된다. 하는 맛과 보는 맛에 덧붙여, 읽는 맛, 쓰는 맛, 그리는 맛, 듣는 맛, 모으는 맛 등등 다채로운 스포츠 맛의 세계를 알게 된다. 그리고, 더 깊은 쪽으로 들어가면, 스포츠의 전통층을 맞닥뜨리게 된다.


스포츠란 운동기술의 집합체다. 스포츠를 만난다는 말은 그것을 몸에 익힌다는 말이다. 결국, 스포츠를 배운다는 말은 스포츠와 나 개인의 일대일 만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첫째, 스포츠를 배우는 것은 운동기술을 습득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기본이다. 둘째, 스포츠를 배우는 것은 운동소양을 함양하게 된다는 뜻이다. 운동소양은 스포츠를 잘 하고 잘 알고 잘 느낄 수 있는 자질이다. 스포츠를 배우는 것은 이 종합적 자질을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갖추게 되는 것이다. 셋째, 스포츠를 배우는 것은 스포츠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는 뜻이다. 스포츠라는 하나의 문화세계, 즉 실천전통의 거주민이 되는 것이다. 


신체활동을 가르쳐서 모종의 변화를 도모하는 스포츠교육은 '습득·개발·성숙'의 수준에 해당하는 교육을 펼친다. 습득은 표층적 수준, 개발은 내층적 수준, 성숙은 심층적 수준에까지 도달하는 스포츠교육의 목적이다. 스포츠교육이 표층적 수준에 머무를 때 그것은 습득 수준의 변화에 머무른다. 내층을 넘고 심층까지 도달하면, 그것은 각각 개발 수준의 변모와 성숙 수준의 변신에까지 이른다. 


저자는 '반려 스포츠'의 개념을 결혼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애완의 차원이 아니고 반려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축구는 공놀이지만 그것을 넘어선다. 축구는 반려 스포츠다. 축구는 그냥 놀이에 그치지 않고, 내 옆에서 내 인생을 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존재다. 나의 운동이자 스포츠 반려자이다. 그러니 결혼과 마찬가지로 당사자는 물론 일가친척까지도 고려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다. 내 가족이고 친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 즉 우리와 같은 체육교육 전문가라면 스포츠 가르치기의 다층적 의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애완스포츠를 넘어서는 반려스포츠의 차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스포츠를 단층적 수준에 제한시켜서는 안 된다. 모든 스포츠 애호가들이 스포츠의 다층적 이해를 갖추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호울 스포츠는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류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리터러시 교육론은 스포츠교육의 삼위일체를 추구한다. 가장 포괄적인 수준에서 말하여, 스포츠교육은 배우는 이들에게 호울스포츠를 제대로 가르쳐서 호울퍼슨으로 성숙하도록 도와 호울라이프를 영위하도록 안내하는 노력이다. 이것을 가늠하는 척도로서 스포츠리터러시(운동소양, 운동향유력)라는 개념이 핵심적이다. 호울스포츠를 배웠다는 증거가 스포츠리터러시라는 아이디어로 대표되기 때문이다. 스포츠리터러시는 인문적 자유교양체육의 교육적 척도다. 배우는 이가 스포츠리터러시를 올바로 함양하면, '호울스포츠-호울퍼슨-호울라이프'의 삼위일체가 성취되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동안 내가 문헌 등으로 접해 왔던 저자 최의창 교수님이 강조하는 체육교육의 맥락은 '인문학적 체육교육'이었다. 인문학적 체육교육을 위한 방법론으로 '하나로 수업'을 주창하였고,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는 수업의 실천방법으로 자리잡기도 하였다. 현장 교사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로 수업의 취지와는 다르게 '수행하기' 비중의 축소 즉 '실제체육학습시간(ALT-PE)'이 줄어든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결과적으로는 현장 체육교사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는 못했었다고 기억한다. 


나 역시 교사의 수업연구와 수업준비에 대한 부담이 큰 하나로 수업은 감히 설계하고 실천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다만, 그 철학에는 공감을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영상을 활용한 체육 수업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학교체육 전반을 챙겨나가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도 '스포츠는 문화이며, 그 문화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철학은 완전히 공감하고 동의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방향이 요약된 문장이 바로 '스포츠 가치 실천'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정책들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여러가지 사안들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머리 속에 떠나지 않던 물음은 '어떻게 스포츠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가?'였다. 스포츠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해당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핵심이었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스포츠를 제대로 배우며 경험한 사람이라면 '체화된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스포츠를 제대로 배웠다면 원래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온 몸으로 경험하며 실천했던 것들이 태도가 되어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한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교사가 좋은 교육을 하려면 스포츠문화 속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며, 내용과 방법을 구분하여 가르치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스포츠가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경험했던 학교 현장에서도, 교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스포츠가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 잘 이루어졌을 때 학생들의 배움도 커졌었다. 


내가 담당하는 업무, 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가끔 답답함을 느꼈던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다. 스포츠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스포츠를 종합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수준에서 경험하거나, 스포츠가 목적 그 자체가 아닌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인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움이 컸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호울스포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스포츠는 종합적으로 문화적 관점에서 하나의 유기체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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