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감으로 근무하게 된 학교의 신학년도 준비기간 시작일이자, 내가 학교로 처음 인사를 하러 가는 날이다. 여느 아저씨들처럼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거울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같은 날은 조금 더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는 날이다. 전날 밤에 다음 날 입고 갈 옷도 정리해 두었고, 아침부터 면도도 더 신경써서 했다. 집을 나서기 전 거울을 보니 스스로가 제법 멋지게 보였다. 아내에게 괜히 오늘 나 어떠냐고 물어봤다가,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학교로 향했다.
아무래도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은 교장님과의 만남이었다. 교감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가 뭐래고 교장님이다. 어떤 첫인상을 드리게 될지 걱정이었다. 물론, 5년 쯤 전에 교육지원청에 근무했을 때, 관내 중학교 교장님으로 만나뵌 적이 있었다. 교육지원청 회의나 행사에서 단지 몇 번 인사만 드리는 수준이었기는 했지만 말이다. 발령 이후 전화로는 편안하게 인사를 드렸지만, 막상 진짜로 만나뵙고 인사를 드리게 되니 떨리는 마음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첫인사가 부담스럽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왜 교사가 되고 싶었는지, 교사로 근무하면서 왜 그렇게 행복했었는지를 떠올려봤다. 학교는 일터이기도 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기 했고, 좋던 싫던 그동안의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는 점 그 자체로 가슴이 뛰었다.
무엇보다 설레이게 만든 일은 교사들과의 만남이었다. 제법 규모가 큰 고등학교라 교사도 많고, 기타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많은 학교다. 서울의 다른 일반고등학교와는 다르게 교사들의 나이도 비교적 젊어서 살아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고등학교 교감이 된 나에게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점이었다. 안정감은 적을지 몰라도 생동감이 있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든 교사가 모이는 신학년도 준비 기간의 회의 자리, 공식적인 교직원 회의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직전에 2026학년도 업무분장 및 담당학년 등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희망사항을 표현하고 그 결과를 기다렸을 것이다. 오늘의 교직원회의는 이들의 1년이 어떻게 될지 결정하는 날이다. 첫인사를 하는 나에 대한 관심은 사실 그리 크지 않을테니, 움츠러들 필요 없이 자신감을 가지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봤다.
회의장소인 시청각실로 이동하는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심장박동은 점점 빨라졌다. 회의장 안에는 많은 선생님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오랫만에 만난 동료들과 밝게 이야기를 나누는 교사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서로 알고 지내던 몇 몇 선생님들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어 고마웠다. 회의의 서두에 역시나 새로 온 교감의 인사 시간이 있었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좋은 첫인상을 줄지 나름 고민은 했지만, 막상 그 시간이 되니 준비했던 말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우리 학교에 발령을 받아 얼마나 기뻤는지, 앞으로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를 횡설수설 이야기했다. 조금 더 멋지게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럴싸하게 포장해봤자 금방 본질을 들켜버렸을테니, 어리벙벙한 것이 차라리 잘 된 것은 아닌지 싶었다.
누군가의 삶에 끼어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나로 인해서 누군가는 행복해질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세계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에서 정보가 집중되고 결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은 특히나 더욱더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실무자로서 현안을 이해하고 해결하며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고 추진하는 일에 전념했었다. 앞으로는 우리 조직의 사람 한 명 한 명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법령과 지침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판단을 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아직 경험도 없고 자신도 없다. 이럴 때는 인간관계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첫인상을 주고 싶었다. 오늘의 첫인사는 우리 학교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