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7.(토) 신학년도 첫째 주

by 김의진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 일주일의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교사로 살아오다가 교육청에 들어와 장학사로 적응하는 과정은 길고도 힘들었다. 하지만, 학교에 다시 적응하는 과정은 힘들어도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든다. 나이가 먹어서 감수성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교육청에서 닳고 닳은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서툰 일처리를 반복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지지는 않는다. 2월에 처음 만난 우리 학교는 교육청과 같은 사무실 느낌이었지만, 3월의 학교는 학생들이 있기에 생동감과 에너지가 있는 역동적인 곳이었다. 교사들이 다른 직업인들보다 젋게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월 첫 날. 아침에 방송으로 진행된 개학식에서는 전입 교원을 대표하여 인사를 했다. 오후에 체육관에서 진행된 입학식에서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의 부장교사와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하는 순서를 맡았다. 몇 주 전까지만해도 담당하는 업무의 행사를 직접 추진하고, 하나하나 챙기며 예행연습을 하고 의전까지 신경을 썼었다. 그런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내가 해야 할 일을 담당 교사가 하나하나 챙겨준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챙겨야 할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일어나서 직접 하나하나 챙겼을 때 담당교사가 느끼게 될 압박감을 고려하면 쉽게 입을 뗄 수도 없었다. 자리가 그 사람의 행동양식을 만든다더니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교감의 하루는 역시나 정신없었다. 가정으로 비유하자면 엄마가 되었다가 아빠가 되었다가를 끊임없이 왔다갔다한 느낌이었다. 학년도 초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이 있는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보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교육청에서 과장님·국장님 등의 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가능한 빠르게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잘 모르니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소중한 시간을 내서 찾아온 교사들을 고려하면 하루 빨리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책무성이 생겼다.


사람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때라고 쉴틈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공문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여 적절한 담당자에게 분류를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 양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하나의 공문을 열어보고 이해하려고 애쓰다보면 금방 십여 개의 공문이 또 쌓인다. 학년도 초 교육활동이 시작되는 시기에 맞추어 반드시 필요한 안내사항도 많고, 상규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사업들의 타임라인에 따라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가운 공문들도 많았다. 내 예측범위을 벗어난 이유는 교육청이 아닌 기관과 단체들로부터 쏟아지는 공문들이었다. 누구나 공문을 생산하여 공공기관에 전자문서를 발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대한민국이 미워졌다. 단순히 마우스 클릭 실수로 공문의 분류를 다른 사람에게 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왜 이 공문이 나한테 왔을지 고민하게 되기에 정확하게 판단하고 조심스레 일을 해야 했다. 우리 학교의 업무분장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 공문을 누구에게 보내야 적절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공문도 참 많다.


나는 장학사가 하나의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모든 학교에 안내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어떤 맥락을 반영하여 작성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년도 단위로 기본계획 수립하여 연초에 시행하고 이후에는 하는 일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기본계획에는 다음 학년도까지의 수 많은 피드백과 논의과정이 숨어있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악성 민원들, 그리고 시의회와 국회 등까지 어우러진 결과물이 바로 그 기본계획 공문이다. 여기에 따라 학교는 해당 정책분야의 일 년을 실천한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와보니 교감이 그 내용을 하나하나 다 살펴보고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보직교사가 있고 그래서 각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가인 선생님이 있구나싶었다. 실무자에서 중간관리자의 역할로 넘어가야하는데, 나는 아직 개별 분야 실무자의 마인드로 접근하고 있었다. 기어 변속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토요일 오전. 기한에 맞추어 추진해야 할 행정 업무들을 위해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 평화롭게 앉아서 한 주를 돌아보며 주간 일기를 쓰고 있다. 장학사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노트북을 펴고 일을 했었다. 화면의 크기가 작던 크던, 책상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기에 사무실로 출근하여 일을 처리하는 과정 자체가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교감으로 학교에 와보니 학교에서만 해야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우리 학교, 우리 학생, 우리 선생님들에 대해서 더 빨리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학교에 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한 주에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겁다. 젊은 시절 출전했던 스포츠 경기대회에서 경기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그 느낌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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