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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디지털 리터러시, 그 가벼움에 대하여 #1

학생들의 디지털 문화를 이해해보고 싶어 나를 돌아보다.

by 김의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요즘 학생들의 삶과 문화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디지털 문화 속에서 기기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아이들의 모습. 하지만, 막상 학교 현장에서 디지털 리터러시를 활용한 교육을 하려고 보면 아이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지 않아 놀라는 교사들이 많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원격수업이 시작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흔히들 말하는 컴맹 출신의 교사보다도 낮은 수준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과연 요즘 학생들은 어느 정도의 폭과 깊이를 디지털 리터러시를 쌓아가고 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연구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먼저 나라는 사람 한 명의 사례를 통하여 학생들의 입장을 추측해보려고 한다. 따라서, 이 글은 나라는 사람의 별 볼일 없는 일기, 또는 한 없이 주관적인 견해가 가득한 내용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디지털 리터러시를 쌓고 활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보시기를 권한다.




기억이 나는 시절부터 나의 디지털 라이프를 돌아본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저학년 때와 미취학 아동 시절의 기억이 뒤범벅되어 있어 정확한 시기는 확신하기 어렵지만.


아주 어린 시절,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정말 하루종일 신나게 놀았다. 주로 밖에서 미친듯이 움직이며 뛰어놀았지만, 아주 가끔은 동네 친구들의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어느 집엔가 놀러갔을 때 처음 본 비디오(VHS 테이프 재생용 기기)라는 기계는 정말 신세계였다. 그 집에 함께 있던 리모콘TV와 무선전화기 역시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내 물건이 아니기에 그게 뭔지 물어보기만 했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는 만져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친구의 집에 MSX컴퓨터라는 재미난 ‘전자오락기’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떻게든 건수를 만들어 그 친구의 집에 놀러가서 마침내 접한 그 기계 MSX컴퓨터, 그리고 벽돌게임.


국내에 정식 출시되었던 대우전자의 MSX 컴퓨터 (출처: 꿀단지 곰 겜덕연구소)


일명 ‘벽돌 깨기’ 게임, 정식 명칭은 ‘ARKANOID’. 친구집에서는 초록색 흑백모니터로 했었던 기억이다. (출처: 꿀단지 곰 겜덕연구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이거 하나 해보겠다고 애들은 그 집에 놀러가려 줄을 섰고, 그 친구는 영웅이 되었다.

뭐, 재미있기는 했지만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가 훨씬 많았기에 그냥 조금 부럽다는 마음만 들었던 것 같다. 아이스크림 사 먹으면서 거스름돈 계산도 잘 못하던 내가 느끼기에도, 저 비싼 걸 우리 부모님은 사주기 어렵다는 것은 알았기에 사달라고 조를 수도 없었다. 그냥 그 친구 집에 가면 ‘전자오락기’가 있다는 기억. 그리고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기계라는 기억. 이 때만 해도 MSX컴퓨터가 ‘컴퓨터(computer)’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그저 게임기인줄만 알았다. 내 기억 속 최초의 컴퓨터에 대한 기억이다.




시간은 흘러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께서 우리 삼남매를 위하여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XT컴퓨터’를 사 주신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손을 잡고 갔던 나진상가의 기억은 너무나도 강렬하여, 내 머리 속에 컴퓨터를 살 때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공식처럼 각인되었다. 물론, 지금은 하루종일 용산을 돌아다니며 부품을 하나하나 구입하지 않지만.


누나, 형과 함께 했던 테트리스, 알프, 더블드래곤 등의 게임은 지금도 기억이 선하다. 알파벳도 잘 모르던 형제는 알파벳을 외웠고, 컴퓨터 잡지를 사서 궁금증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동네 컴퓨터 복사 가게에 가서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장당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고 게임과 프로그램을 구입(이라고 쓰고 복사라고 해석)하였다. OS의 개념도 몰랐지만, 게임을 자동실행하기 위하여 형과 함께 티격태격하며 autoexec.bat 파일을 수정하기도 했다. 목적은 단 하나, 더 재미있는 게임을 어떻게든 편하고 즐겁게 해 보는 것. 목적이 명확하니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알아서 학습했던 것이다. 그렇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알아서 배운다.


금성전자에서 출시했던 XT컴퓨터, 대기업 제품은 언감생심. 아버지께서는 용산 나진상가에서 ‘대만산 조립식’이라고 표현하신 컴퓨터를 사 주셨었다. (출처: 게임톡 모바일 사이트)




초등학교 4학년 때 즈음이었을까. 아버지께서 우리 형제에게 대만산 패밀리 호환 게임기(닌텐도 패밀리 게임기의 해적판, 당시에는 아주 많았음)를 사 주셨다. XT컴퓨터가 영어와 미국의 세계였다면, 패밀리 게임기는 일본어가 난무하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수많은 게임이 있었고, 형과 함께 돈을 모으고 모아서 동네 게임 가게에 가서 기존의 게임팩과 웃돈을 함께 주고 원하는 새로운 게임을 받는 ‘교환’을 주로 했었다. 게임팩을 바꾸러 가서 원하는 재미있는 게임과 바꾸어 집으로 돌아갈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슈퍼마리오와 같은 단순한 게임부터, 드래곤퀘스트나 메탈기어같은 복잡한 롤플레잉 게임까지 정말 끝도없는 신세계였다.


일명 ‘짝퉁 패미컴’ 게임기와 ‘해적판 통합 게임팩’, 짝퉁 패미컴의 모델은 너무나도 다양했는데 저렇게 생긴 기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은 무슨 글씨인 줄은 읽을 수 없지만, 일본어를 종이에 그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똑같이 옮겨적으며 이 게임 저 게임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러고 싶어서 일본어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외운 것은 아니었다. 게임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일본어를 몰라도 화면에 나온 일본어 문장을 똑같이 잘 그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예를 들면, 당시에 ‘캡틴츠바사2’라는 만화책 기반의 필살기가 난무하는 황당한 축구게임이 있었는데 형과 함께 짱구를 굴려가며 정말 재미있게 했었다. 문제는 이 게임이 지금과 같은 세이브 시스템의 게임이 아니라 각 스테이지별로 일본어 문장으로 된 패스워드를 주고, 나중에 그 부분부터 다시 하고 싶으면 그 문장을 그대로 입력해야 하는 시스템의 게임이었던 것이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화면에 있는 일본어 문장을 그대로 따라서 그려 놓았는데, 나중에 다시 입력하니 그게 아닌 경우가 많아서 큰 좌절을 맛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든 게임을 계속 하고 싶었기에, 일본어 히라가나 카타카나를 어떻게든 외워서 옮겨 적는 문장의 정확도를 높여야 했고, 덕분에 엔딩을 감상할 수 있었다. 게임의 엔딩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 일본어 공부도 하게 한 것이다. 덕분에 지금도 무슨뜻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일본어를 소리내어 읽을 줄은 안다.


축구게임 ‘캡틴츠바사 2’. 세이브 시스템 대신에 일본어 문장 수십자를 그대로 입력해야 원하는 시점부터 게임을 다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게임기도 전자기기이고, 조이패드라는 물리적 입력장치로 작동하는 일종의 컴퓨터이다보니 당연하게도 고장이 자주 났었다. 뭔가 고쳐보겠다고 드라이버로 나사를 돌려가며 열어보고, 아는 것은 없으니 후후 불어보고 닦아보고 별 짓을 다 했던 기억도 난다. 일종의 샤머니즘같기도 한 모기약 뿌리기, 바퀴벌레약 뿌리기로 게임기를 부활시켰던 기억이 분명히 있는데, 지금도 그게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는 미스테리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접촉 불량을 해결해주는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기기를 자주 열어보니 게임기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는 대강이나마 추측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게임이 디지털 리터러시의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하는 내용이 되었다. 아마, 요즘 아이들에게도 게임은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닐까.




중학교 때인가 플로피 디스크의 시대는 가고, 컴퓨터에 CD-ROM이 대중화되는 시기였다. 당시 정말 재미있게 했던 게임 중 FIFA, NBA 등의 EA스포츠 게임들이 있었는데, 친구들과 절체절명의 대결을 자주 했었다. 문제는 CD에서 게임을 돌리다보니, 결정적인 순간에 로딩이 걸려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게임을 즐겁게 즐기는데 방해가 되는 부분을 해결하고 싶었다. 당시에 내 컴퓨터에는 하드디스크가 없었지만, 게임을 하드디스크에 복사해서 실행하면 로딩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아버지 컴퓨터에는 하드디스크가 있었지만 아버지 컴퓨터로 게임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EA Sports ‘NBA Live 95’, 클라이드 드렉슬러!!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철없는 사춘기 남자아이에게 불가능이란 없는 법. 어느 날, 아버지께서 몇칠간 집을 비우신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과감하게 아버지 컴퓨터에서 하드디스크를 탈거하여 친구 집으로 들고 갔다. 친구 컴퓨터를 열고 하드디스크에 선을 연결한 순간, 신나게 게임을 하게 될 거라는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하였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컴퓨터는 먹통이 되었고 이 선 저 선 다 꽂아봤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컴퓨터에 하드디스크를 그대로 꽂아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려 했다.하지만, 사춘기 남자아이의 행동은 너무도 어설펐고, 수 년간 기록해 두셨던 수 많은 아버지의 파일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아버지께서 플로피 디스크에 자주 백업을 해 두셔서, 많이 혼이 나는 선에서 잘 마무리가 되었지만, 나는 데이터가 날아가버린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지만 여러가지로 공부해보니, 내가 하드디스크를 날린 이유는 바로 ‘점퍼(jumper)’ 설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스터와 슬레이브에 따라 점퍼를 바꾸어주어야 하거늘, 그런 설정을 알 리가 없었던 내가 사고를 쳤던 것이다. 흔히들 하드가 밀렸다고 이야기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인데,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컴퓨터의 부품설정과 조립, 도스 재설치 방법 등에 관하여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이후에는 자신있게 컴퓨터를 조립하고, OS를 설치하고 세팅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던 예전의 하드디스크 인터페이스와 문제의 ‘점퍼’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디지털 리터러시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 이야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성장 과정에서 게임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들,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추고 싶다는 동기부여 등의 영향이 컸다는 점이 아닐까. 다음 글에서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의 경험들을 정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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