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전하게 도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스포츠
안전을 추구하는 본능
어른이 아이와 함께 놀아줄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바로 위험요소를 사전에 발견하여 안전한 놀이가 가능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상일텐데, 어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아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안요소로만 보이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집 안의 위험한 요소들을 하나 둘 씩 개선하다보니 신혼 때 구입했던 멋진 가구들이 한낱 방해물로 여겨졌던 기억이 있다.
아이가 커 가면서 부모로서의 역할도 점점 달라지는 것 같다. 일단, 내가 자녀들에게 가장 크게 화를 내는 순간이 무엇이었을까를 돌아보면, 아이가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할 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을 높이는 행동, 몸을 다칠 것이 명백해 보이는 행동,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 명확한 행동, 다른 사람의 화를 돋우는 행동 등 '위험한 행동'의 개념은 상황에 따라 다르고 그 범위가 크다. 그래서인지, '하지마'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된다. 정리하면 할 수록 세상은 위험한 곳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생존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FnYT4uQQu0c
시계를 돌려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려 본다.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수 많은 일들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살아왔다. 부모가 된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바보스럽고 위험한 행동들을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했었고, 정말 많이 다치면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 무엇인지 후회하며 배웠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해보고 싶었다는 이유로, 또는 분위기에 휩쓸려 하고 또 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 같다. 선을 넘고 싶어하는 마음, 좋게 해석하자면 도전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독일 축구, 브라질 축구. 사람들의 호감도는?
브라질, 독일. 두 나라의 공통점은 축구를 잘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잘 하는 수준을 넘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주 잘 하는, 말 그대로 축구라는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국가들이다.
그런데, 독일의 축구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독일 축구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뭘 잘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뭘 못하는지 단점을 찾기도 어려운 축구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독일과 경기를 하는 팀이 경기를 아주 잘 한 것 같은데도, 경기가 끝나면 신기하게도 독일이 승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는 저렇게 해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장면을 적절한 순간에 실수없이 정확하게 실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축구가 바로 독일 축구인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 나온 송강호의 명대사처럼 한마디로, '독일 축구는 다 계획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브라질 축구는 독일 축구처럼 계획이 느껴지는 축구가 아니다. 물론 계획이 없는 축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브라질 축구는 계획적이고 완벽한 장면보다는 즉흥적이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장면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아, 여기서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어? 저건 다른 선수들하고 뭔가 다른데?' 등의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들었던 브라질 축구의 역사적인 장면들과 전설적인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나우지뉴의 '플립 플랩(Flip Flap)', 호나우도의 '헛다리 짚기(Step Over)', 히바우도의 극단적인 왼발 사용 등 브라질 선수들의 플레이들은 사람들을 놀라고 즐겁게 해 줬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RHtq2DTdhk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가 느끼기에는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의 경기를 보는 것보다는 브라질의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스포츠 문화를 즐길 때, 스포츠의 본질적인 요소들 중에서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을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 선수가 공을 잡으면 뭔가를 보여줄 것 같다.'는 기대감.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스포츠를 사랑하고 재능있는 선수들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더 나아지고자 하는 도전과 노력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적으로 주관적인 시각이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브라질 축구의 매력은 도전의 시작점이 외부로부터의 주입이 아닌 호기심과 본능적인 즐거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도해 보는 것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나라 농구계에서는 승리를 위해 내가 잘 하는 것보다 상대를 못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했던 문화가 있었다. 슈팅을 지나치게 많이 던지는 선수에게 '볼을 아끼지 않는다.'며 비난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했었다. NBA의 전설적인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가 전성기에 엄청난 활약을 할 당시에도, 국내 농구팬들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슛을 난사한다며 '코난사'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시대가 흘러,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현실에서 보여준 '트랜지션 오펜스', '스플래시 바스켓볼'이 대세가 되면서 더 많이 더 빠르게 시도하는 것이 미덕이 된 지금의 모습은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플레이를 보는 사람들이 용기내어 시도(Try)하는 것을 꿈꾸었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계획하여 여러 차례 모의실험을 한 후에 이를 근거로 성공을 확신하는 시점에야 움직이는 것은 도전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일상 속 모든 순간에 이러한 패턴으로 행동하려는 성향의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 옆에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보면,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공통된 느낌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매 순간 서로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완벽하지 않기에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똑같은 대화는 존재 할 수 없기에 모든 대화의 순간마다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싶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선수생활 전반기에 등번호 8번을 유지했었다. 선수생활 후반기에 등번호를 24번으로 바꾼 이유가 인상적인데, 하루 24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등번호 24번을 선택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사람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영감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꿈꾸게 되었다는 글을 확인할 수 있다. 2020 도쿄올림픽 육상 높이뛰기 경기에서 보여준 우상혁의 도전이 감동을 준 이유 역시 특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전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경기의 규칙을 모르고 우연히 TV를 본 사람들까지 감동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도전의 가치를 실현하는 체육 교과 수업
우리나라 학교교육과정은 현재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지향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실천하고 있다. 체육 교과는 '건강관리, 신체수련, 경기수행, 신체표현'이라는 네 가지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건강, 도전, 경쟁, 표현, 안전'이라는 다섯 가지 영역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네 가지 영역은 가치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지만, '안전'영역은 가치 보다는 실제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는데, 이는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던 2014년의 아픈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라는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도전 영역이 추구하는 가치와 안전 영역이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체육 교과 교육과정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재상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과 다르지 않다.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란 자주적이고, 더불어 사는, 창의적이고, 교양있는 사람이다. 체육 교과는 특히 더불어 살 줄 아는 창의적이고 자주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것과 깊숙하게 연계되어 있는 교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체육 교과의 역량 중 '신체수련 능력'은 자신감과 적극성을 기를 수 있는 가치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자기관리 역량과 창의융합 사고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스포츠에서의 도전(Challenge)은 우리나라 체육 교과에서 '도전' 영역으로 편성되어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도전 영역 다음과 같은 원리에 의해 설계되며, 국가교육과정에 명시된 성취기준이 각 학교의 교사 수준에서 구체적인 수업으로 실천되어, 최종적으로는 학생의 입장에서 도전의 가치를 경험하고 성취하게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체육 교과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설계하지 않은 일개 장학사의 입장에서 우리나라 체육 교과 교육과정은 보면 볼수록 체계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 많이 고민하고 연구하여 만들어낸 교육과정을, 현장의 훌륭한 교사들이 실현하고 있기에 학생들이 진정한 도전의 가치를 학교 체육 교과수업에서 배우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다시 도전을 해야 할 시간, 스포츠는 도전을 배우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가장 빠른 추격자(일명 '패스트 팔로워')로 엄청난 역량을 보여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한다. 어떤 목표가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일을 진행하면서 빠른 시간에 선구자들을 위협해 왔던 노하우가 출중하다는 것이다. 첫째, 해당 분야의 최고는 어디인지 사례를 연구한다. 둘째, 우리의 현재 수준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단계적이고 명확한 계획을 수립한다. 셋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구성원들이 협력하여 집중한다. 이러한 방법이 모바일 시대 I.T. 강국을 만들어낸 우리의 공식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혼란 그 자체였던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따라가야 할 사례연구가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오히려, 우리의 움직임을 벤치마킹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법률과 지침에 따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최우선의 거치로 하는 공무원 조직에 몸담고 있기에, 이 혼란한 느낌은 정말 새로웠다. 미래교육을 꿈꾸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가까운 미래를 찾아다녔던 교육 분야 역시 큰 폭의 변화가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협력하며 소통해야 했기에 조직문화도 바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프론티어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교육 당국이 추진하고 실천하고 있는 수 많은 정책들이 확신보다는 기대감 속에서 실천되고 있기에 시행착오를 피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실천되는 정책들이 있기에 학교교육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교육 정책이 더욱 신중하게 기획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전의 가치를 경험하며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끊임 없이 도전해야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전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도전의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스포츠 속에서 도전에 계속 실패한다 하더라도 현실에서의 우리 삶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며 안전하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두렵고 혼란스러운 시기, 스포츠와 학교체육이 사람들에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 학교에서의 스포츠가 다시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