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스포츠 2022년 1월호 (서울특별시체육회 월간 매거진)
이 글은 서울특별시체육회 월간지 '서울 스포츠' 2022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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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31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탄소중립기본법은 기후위기의 심각한 영향을 예방하기 위하여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위기 적응대책을 강화하고 탄소 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환경적·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며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의 육성·촉진·활성화를 통하여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태계와 기후체계를 보호하며 국제사회의 지속가능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탄소중립'이란 대기 중에 배출·방출 또는 누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에서 온실가스 흡수의 양을 상쇄한 순배출량이 영(零)이 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관련된 대책들은 미래세대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하여 현재 세대가 져야 할 책임이라는 세대 간 형평성의 원칙과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에 입각하여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스포츠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이며, 다양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따라서, 스포츠 문화 역시 탄소중립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활동이며, 아마츄어리즘에 입각한 자발적인 신체활동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생산성과는 관련이 없다. 더욱이, 인간은 스포츠를 즐기며 신체활동에 몰입할 때 많은 산소를 소모하고 많은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지구라는 자연환경의 입장에서 스포츠는 탄소를 배출하는 해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물리적인 탄소배출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의 스포츠 문화는 더욱 큰 문제다. 스포츠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스포츠 문화를 누리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포츠는 정말 지구의 미래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문화일까. 탄소중립을 위해 스포츠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이러한 논의의 주제 중 하나로 학교 운동장의 변화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초ㆍ중등교육법에 근거한 학교를 설립할 때 최소한의 시설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기준 중 하나가 일정 크기 이상의 체육장(운동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장년층 세대라면 학창시절의 운동장을 떠올렸을 때, 100미터 달리기가 가능할 정도로 넓은 면적의 흙으로 만들어진 운동장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의 학교 운동장은 그 때에 비하면 면적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추세다. 2000년대 들어 대부분의 학교 부지 내에 식당과 체육관 등이 들어서고 각종 특별 교실 등을 확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장 면적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신축되는 학교의 경우에는 학교 부지 확보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처음부터 운동장 면적이 작은 사례가 많다.
운동장의 크기만큼이나 형태 역시 많이 달라졌다. 2002년 월드컵 즈음부터 시작된 인조잔디 운동장의 확산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 지원 사업 등과 융합되면서 학교 운동장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학생들은 인조잔디 운동장이 있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 했고, 각 학교에서는 해당 사업에 선정되기 위하여 경쟁하였다. 학교의 구성원과 지역사회 모두가 만족하는 아주 좋은 사업이었고, 학교체육 현장에 새로운 바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상황은 반전되었다. 인조잔디 운동장의 수명이 5~8년 정도에 불과했고, 험하게 사용될 수밖에 없는 학교의 특성 상 원래의 수명만큼도 버텨내지 못했던 것이다. 2015년에는 인조잔디 운동장의 중금속 성분이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큰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학교는 유지 보수 또는 전면교체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고, 인조잔디를 다시 걷어내고 흙 운동장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학교운동장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정답이 흙으로 만든 운동장일까. 관리의 용이성이라는 단순하고 실제적인 장점을 넘어, 흙 운동장은 활용 가치 측면에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공간의 구성을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 내용에 따라 흙 바닥에 나뭇가지로 선을 긋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한 곳이며, 나무, 꽃, 길, 구조물 등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도심 속 공원처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에, 학생의 건강 측면에서 보면 하루의 대부분을 교실에서 보내는 학생들에게 호흡기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학생들의 몸을 통해 교실로 들어와서 축적되는 흙과 모래가 미세먼지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서 필요한 실내화라는 소모품과 청소라는 노동행위가 발생하는 것도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생태적 사고에 따르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어떤 성분이 인체에 무해한가 유해한가를 근거로 친환경적인가 반환경적인가를 평가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 천연잔디 운동장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물이 소모되고 탄소가 배출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잘 관리되는 인조잔디 운동장이 천연잔디 운동장보다 환경보호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학교 현장에 시공되고 있는 인조잔디 운동장의 경우 과거와 같은 고무칩 충전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연 상태의 흙을 충전재로 사용하여 인체에 유해하다는 단점을 극복하고 있기도 하다. 친환경의 개념은 단순히 유기물인가 무기물인가 등의 본질을 넘어, ‘지속 가능한 생태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는가'의 보다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
탄소중립 기본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탄소중립의 핵심은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것보다는, 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를 상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스포츠가 지구의 관점에서 유해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관점에서는 건강하고 풍성한 삶을 영위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스포츠이기 때문에 스포츠를 멈출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포츠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스포츠’를 위한 노력은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직접 즐기는 스포츠의 차원이다. 더 많은 사람, 새로운 시설과 교구가 필요한 스포츠 보다는 기존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 당장 배드민턴, 탁구, 골프 등을 멈추고 자연친화적인 등산이나 걷기, 자전거 타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인공적인 시설물과 교구가 필요한 스포츠라고 하더라도, 더 나은 장비를 갖추기 위해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비용 등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스포츠에 투자하는 시간의 가치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실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학교 체육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 내에 학생들만을 위한 시설을 완성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미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체육 시설을 내실있게 활용하는 방법을 적극으로 연구해야 한다.
둘째, 스포츠 산업의 차원이다. 지금까지 상업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더욱 재미있는 스포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 앞으로는 대중적인 관심 너머에 있는 미래지향적인 가치에 대한 책무성을 실천하는 일에 관심을 확대해야한다. 예를 들면, 손흥민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토트넘 구단은 홈 경기가 열릴 때 팬들에게 대중교통 이용 장려, 자전거 제공, 로컬푸드 공급, 맥주컵 재사용, 일회용품 지양 등의 실천을 장려하고 있으며, 경기 중 선수들이 마시는 물의 용기 역시 플라스틱이 아닌 소재를 활용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스포츠용품 브랜드에서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개최되는 마라톤 대회 등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이미 시작된 상황이다.
2021년 8월 10일 제정된 ‘스포츠기본법’ 제4조는 모든 국민이 스포츠 및 신체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며 스포츠를 향유할 권리, 즉 ‘스포츠권'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동법 제5조에서는 스포츠권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성을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국민 모두가 스포츠를 향유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스포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협력하여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아직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이기에 정답이 없는 어려운 길이지만, 지속 가능한 스포츠 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모두가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