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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Apr 17. 2022

90년생 공무원이 왔다

나는 주니어인가 시니어인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40대 초반의 공무원이다.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서는 밀레니얼 세대가 되기도 하고, 아주 후하게 쳐주는 경우에는 MZ세대에 턱걸이로 끼워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전문직이라는 직업의 본질이 '꼰대질'이기에 항상 꼰대의 시각에서 모든  현상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은 공직사회 꼰대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제목이다. 더군다나 '정부혁신 어벤저스'라는 정체불명의 필명으로 집필되어 행정안전부에서 발간하여 완전 무료로 배포되고 있는 책이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동료 장학사님이 공유해 주셔서 읽어보게 되었다. 전지적 꼰대 시점에서 공무원이라는 단어를 교사로 치환하여 이해해보려고 하였다.


https://www.mois.go.kr/frt/bbs/type001/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12&nttId=81205




호모 리포투스, 보고 인류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다. 공무원은 보고하고 또 보고한다. 상급자에게 과잉보고해서 생기는 문제보다 보고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초안부터 시작하여 여러 차례 보고하는 번거로움이, 일을 완성한 후에 처음부터 다시하게 되는 비극보다는 낫기도 하다.


공무원의 보고는 그냥 보고가 아니다. 필자의 이야기처럼 보고의 형식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두로 하는 보고라면 보고를 하는 대상의 순서(직급 및 직위)를 지켜야 하며, 문서로 하는 보고라면 보고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공무원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이야 본능적으로 보고의 형식을 지키게 되지만, 공무원 사회가 처음인 사람은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반대로 꼰대적 시점에서 보면, 검토자나 관리자의 눈에는 보고내용을 접했을  보고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후속 절차나 보완할 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실무자는 담당 업무에만 집중하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검토자와 관리자는 직위에 따라 많은 업무들을 결재하며, 경력이 많기에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에 폭넓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실무형 공무원에 가까운지라 열심히 보고하는 축에 속한다. 지금이야 과잉보고가 오히려 마음이 편하지만, 시간이 흐름 뒤에는 과잉보고하는 후배들에게 이런 것 쯤은 알아서 하지라는 생각으로 돌아설지도 모르겠다. 공무원 사회에 보고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며, 권한과 책임이 중요한 행정 분야에서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회식은 왜 금요일 저녁이며, 워크숍은 왜 토요일인가.


십수년 전 교직에 처음 발을 딛기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되뇌였던 의문이다. 토요일은 수업이 없거나 수업이 있더라도 교과수업이 아닌 동아리활동이나 다른 창체활동이 진행되기 때문에, 금요일 저녁이 부담없이 마음껏 술을 마시는 회식이 가능하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 같다. 아직 토요일 오전 수업이 존재하던 시절에 토요일 오후를 활용하여 워크숍을 떠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이었다. 회식을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할 때도 부담스러웠지만, 교사들의 의견 같은 것은 묻지 않고 당연히 무조건 다 참가하리라고 여겨지는 분위기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흐르며 동료 교원들과 래포가 형성되고 추억이 쌓여가면서,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소중하기에 거부감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그렇게 서서히 조직문화에 녹아들었나보다.


업무 외적인 친목 도모 활동에 대한 주니어 공무원과 시니어 공무원의 인식 차이


회식이 너무나도 싫어 회식을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나를 어떻게든 회식에 참석시키려고 노력하는 선배들의 모습 속에서 너무나도 죄송했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 후배가 있을 때 선배들 역시 난처해지지 않을까를 고민하던 나에게, 한 선배교사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가기 싫은 회식 억지로 가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눈치 보지 말아라. 이들은 직장 동료일 뿐이다. 인생의 짧은 몇 년 그것도 하루에 여덟 시간 정도를 함께 보내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는, 평생을 함께하는 하루의 열 여섯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소중하니까. 


그렇다고 그 선배님이 학교에서 다른 교사들과 융화되지 못하는 분도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고 후배들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이런 분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학교문화 역시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 사실 남성 교사였던 내가 느끼기에는, 학교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에 다른 공무원 사회와는 다르게 회식이나 워크숍 등의 문화도 빠르게 개선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 가족, 직장에도 가족이 있다고?


회사의 사장은 모든 사원들이 가족같이 화목하게 잘 지내는 회사를 꿈꾸기 마련이다. 소속감과 애사심을 가지고 우리 회사를 위해 모든 역량을 발휘해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모든 사원이 창업주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단지 생계를 위해 취직을 했을 뿐인 사원들도 존재하고, 자신이 꿈꾸던 삶을 위해 잠시만 이 회사에 몸을 담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원들도 있을 것이다. 회사원도 이럴진데, 자신의 근무처와 담당업무를 예측할 수도 없는 공무원들은 오죽할까. 업무를 위해 협력하는 동료들이 있고,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을 뿐인데 가족같은 사무실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싸우는 상대는 바로 가족이다.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 동료들과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는 가족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TV에 나오는 정신의학과 전문의들이 부부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두기 필요하고 부모 자식 사이에도 반드시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서로 잘 지내기 위해서라도 직장에서 동료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선을 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일 것이다. 



학교문화가 달라진 만큼, 달라진 학교문화를 경험했던 교사들이 교육전문직원으로 들어와서 변화를 만들어간 시간도 쌓여갔다. 그래서인지, 교육전문직 사회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만 3년을 향해 가는 경력의 내가 느끼기에도 처음과 지금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이 느껴지는데, 더 오랜 시간 경험했던 선배들이 느끼는 변화의 폭은 더 클 것이다. 다양한 상급자들을 만나왔지만, 나의 퇴근을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퇴근'을 위해 노력하는 부서장님들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더라도, 너희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마무리로 후배들을 응원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감동하는 순간도 많다. 교육청에 들어온 이후 내가 특별히 좋은 분들만 계속 만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선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고, 나 역시 영향력이 있는 선배가 되었을 때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실천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꼰대들로 가득한 공무원 사회



젊은 공무원들이 꼽은 가장 흔한 꼰대의 유형은 바로 '라떼는 말이야형' 꼰대였다. 이 유형의 꼰대들은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지 않더라도 십중팔구, '너 000 알아? 그 친구가 예전에 말이야'로 꼰대질을 하기 마련이다. 모든 일의 최우선 가치는 경험이며,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식이야 말로 공무원 사회 최고의 진리라고 믿는다. 정확성이 중요한 공무원 사회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선배들의 경험은 정말 소중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만을 후배들에게 강요한다면 공무원 사회는 더욱 보수화되어 사회의 발전과는 괴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젊은 꼰대인 나부터 나만의 경험적 지식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다면, 젊은 공무원들의 꼰대 대처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아주 간단했다. 꼰대를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아니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꼰대는 결국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 질문의 해답 역시 젊은 공무원들의 대답과 동일한 맥락이었다. 적절한 선을 유지하고, 상대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X세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어서 애매하고, MZ세대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은 것 같아 애매한 40대 초반의 나로서는 양측의 의견에 모두 공감하게 된다. 모든 대인관계의 기본이 적절한 선을 넘지 않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면 한다.


나는 교직에 들어온 이후, 단 한 순간도 나의 직업적 선택에 후회를 해 본적이 없다. 물론, 교육전문직원이라는 직업적 선택에는 아직도 불현듯 후회가 될 때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을 때,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신나게 즐거운 마음으로 몰입하여 일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체육 수업이 그랬고, 아이들과 함께 스포츠를 즐기는 시간이 그랬다. 하지만, 이것은 '체육교육'을 전공하고 '체육교사'가 된 나같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이야기지,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게될지 예상하지 못하고 직업을 선택한 일반적인 공무원들에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공무원은 각 부처에서 공무원을 뽑기 위하여 공개적인 선발을 통해 상대적 경쟁을 이겨내고 발령받은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공무원은 선발분야는 있을지언정,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기 마련이다. 때문에, 구조적으로 자신이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이야기하는 공무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젊은 공무원들이 느끼는 문제는 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조직문화에 있었다. 그들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 그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일을 하는 절차와 방식, 말도 안되게 많은 일의 양 등이 그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금도 가끔씩 느끼는 조직문화의 답답함, 교육전문직원이 되어 교육청에 들어왔던 초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그 느낌이 떠올랐다. 어떤 선배님이 말씀해 주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법률에 명시된 내용 외에는 공무원이라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무원 조직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개인의 행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면 신속하게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을 만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신규 교사들은 수업도 잘 하고 일도 참 잘 한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 것이,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사가 되었으니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선배들 역시 마찬가지다. '튀는 교사', '나대는 교사'라며 눈치를 주거나 '함께 가야 한다'는 명목 하에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제지하려는 선배들의 모습 역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원격수업 국면에 접어들며, 선배 교사들이 후배 교사들의 이야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듣고 후배들에게 배우며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운 학교문화가 되었다. 꼰대적 시각의 발언일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교사들의 역량을 믿기에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미래는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야근이 당연한 것인가. 정시 퇴근이 당연한 것인가. 도대체 왜 이것을 고민해야 하는가.


장학사라는 단어는 야근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장학사가 되고 나서야, 왜 장학사가 야근을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일과 중에는 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과시간 중에는 내 일과 관련된 문의와 안내, 그리고 민원을 처리하느라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시 퇴근을 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정시퇴근을 위해 나는 매일같이 '조기출근'을 하여 일을 한다. 정시 퇴근을 하고 집에 가더라도 가족 모두가 잠든 평화로운 심야 시간에 내일의 정시퇴근을 위해서 일을 한다. 제3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조삼모사에 불과하며, 왜 저렇게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시퇴근이 하고 싶고, 그렇게라도 해야 행복한 삶을 조금이나마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하고 있다.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가 모셨던 부서장님들은 나의 이런 패턴을 이해해주시고 응원해주셨던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본인들이 장학사 시절, 매일같이 야근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내 모습을 인정해준다는 분들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젊은 공무원들의 고민처럼, 정시퇴근을 인정해줘서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분위기가 정상적인 것인가하는 물음에 공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전문직 사회의 현실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만났던 부서장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장학사 문화도 분명 달라졌고, 더욱 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젊은 공무원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선배의 모습에서 내 모습은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대부분 자신이 없다. 단, 끊임없이 공부하는 모습의 선배가 되고 싶기는 하다. 솔직히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보다는 실무형 후배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공무원 사회에서 그것도 교육전문직 사회에서는 선배가 얼마나 큰 책임을 가지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공부할 수 있기를, 어떻게든 공부하는 삶을 이어갈 에너지가 보충되기를 기도한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꼰대 자가 진단 테스트를 공유해본다. 나도 꼰대의 기질이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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