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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의진 Jul 06. 2022

교육청은 무슨 일을 하는가? #3 위원회·회의 운영

공정·투명한 행정을 위한 합리적 절차인가? 아니면 책임의 외주화인가?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큰 심리적·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의사결정은 아무리 옳은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큰 피로감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특히, 이해 당사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의 경우에는 제발 누군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민주적 절차, 이른바 회의를 통한 의사결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취지와 좋은 인적 구성으로 회의를 한다고 해도 너무 빈번하게 하게 된다면 역시 피로감을 주게 된다. 때로는 정말 세종대왕님 같은 성군께서 알아서 모든 결정을 잘 해주었으면 하는 백성들의 마음에도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인류 역사를 되돌아봐도 공화정과 독재는 돌고 돌았다. 공무원으로서 장학사로서 각종 위원회와 회의를 운영하면서 했던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장학사에게 회의란 무엇인가


공무원이 일을 하다보면 담당 업무와 관련된 위원회를 운영하게 되는 일 역시 맡게 된다. 특히, 장학사들은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꼭지도 많고,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얽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많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다른 공무원들보다 위원회와 회의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운영하게 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장학사는 해당 회의의 간사가 되어 회의에 참여하여 회의가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안내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는 것은 곧 다음과 같은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회의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사전에 회의 안건을 분석하고 정리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회의를 위해 어떤 사람들을 위촉해야 보다 타당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참석자를 추천받고 검토받아 결정해야 한다. 회의 내용과 참석자에 따라 적절한 회의 장소를 섭외하는 것 역시 중요한 사전 작업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립된 계획은 체계적인 서식의 문서로 정리되어 부서장 또는 기관장의 결재를 받음으로써 공식적인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 이렇게 수립된 계획은 다시 회의 참석 대상자의 소속기관에 공문으로 발송된다.


계획에 따라 실제로 회의를 운영하는 것은 이 과정의 하이라이트다. 일반적인 경우에 간사인 장학사는 회의 직전에 회의 참석자들의 참석여부와 불참시 그 이유 등을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참자의 의견 역시 수렴하여 회의자료로 정리하여 참석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회의 장소에 참석자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회의의 성격에 따라 의전이 중요하기도 하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의가 매끄럽게 운영되도록 절차에 따라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 간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임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회의가 예정된 시간 안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타당한 결론에 도달했다면 장학사는 일을 잘 한다는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진행된 회의라고 해도 회의 내용을 정해진 양식에 맞게 정리하여 최종적으로 결재를 받기 전까지는 관련 업무가 끝났다고 할 수 없다. 이것도 끝이 아니다. 만약 회의 결과에 이의가 있는 이해당사자가 있다면 회의 이후의 후속 절차까지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다보니, 회의 한 번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장학사의 입장에서 '이건 이렇게 하면 되는 건데, 굳이 무슨 회의를 또 해야 하는 거야?'라고 투덜대며 회의를 준비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회의가 시작되고 전문가들이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하나하나 짚어주며 더욱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타당한 결론으로 도달해가는 과정을 목격하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회의를 운영하는 일은 아주 힘든 과정이기 분명하지만, 보다 타당한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라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법정 위원회 - 법령(법률·시행령·시행규칙 등)과 조례에 따라 운영하게 되는 위원회


위원회(委員會, committee) - 일반 행정과는 달리 어느 정도 독립된 분야에서 기획, 조사, 입안, 권고, 쟁송의 판단, 규칙의 제정 따위를 담당하는 합의제 기관. 특수한 행정 분야에서 일반 행정청의 권한에 소속시키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행정 사무를 맡아보기 위하여 등장한 제도이다. (출처-표준국어대사전)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의 모든 공공기관은 법률에 근거하여 운영된다. 행정부의 조직과 편제도 법령에 명시되어 있고, 시도별 초·중·고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모든 사항도 법령에 명시되어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한 말씀 하셨다고 다음 날 뚝딱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조직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새롭게 추진하는 사업을 위해 필요한 조직이 있다면, 국회의 협조를 받아 법률에 근거하던지, 아니면 기존의 법률에 따른 시행령을 개정하던지, 이것도 아니라면 시행규칙 또는 지방의회의 도움을 받아 조례를 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법령에 따라 조직을 구성하고 예산을 편성하여 운영하게 되는 것이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 역시 법령에 따라 운영된다. 공공기관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운영하는 위원회는 거의 없으며, 법령에 근거하지 않는 위원회라면 기관 내의 내부 계획을 수립하여 결재 후 운영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법령, 그 중에서도 특히 법률에 근거하여 운영되는 위원회는 법적으로 권위를 가지게 된다. 법적인 권위라는 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원회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때는 법적 근거를 확인하고 전문가들의 협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의사결정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만약, 어떤 이해당사자가 위원회의 결정에 이의가 있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청구한다고 해도 위원회에서 내린 판단이 존중받을 가능성 역시 높다. 어떤 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없다면, 위원회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모아서 내린 결정은 기본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9.8.20.일부개정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지원청에서는 2020.3.1.부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모든 교육지원청에서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2020년 예산부터 편성하였고, 법률과 시행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의 자격 역시 시행령으로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교육지원청은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가들을 가능한 공정한 행정 절차를 통해 위촉하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구성 및 운영 방법(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이렇게 법령에 근거하여 운영되는 위원회를 이른바 '법정 위원회'라고 부르는데, 위원회 운영의 정당성(타당성과 효과성 등)은 법령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법정 위원회는 법령에서 세부적인 운영 방법과 기준을 명시하고 있는 만큼 위원회 운영을 위해 필요한 비용 역시 일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예산이 편성되고 지출된다. 법정 위원회의 경우 법령과 지침에 근거한 절차를 통해 안정적인 운영의 계속성을 자연스럽게 확보하게 된다. 기관장이 누가 되느냐, 업무 담당자가 누가 되느냐에 관계없이 위원회 운영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다.


법정 위원회 참석 수당 지급 기준(2022 서울특별시 교육비특별회계 예산편성 기본지침)


법정 위원회 운영은 사례를 통해 비용적 관점으로 들여다 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고 법률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해당 사안이 A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B소위원회(위원 수 10명)에 배정되었다면, 학교폭력 사안 1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만원(10만원x10명)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비용을 산출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보안이 확보된 회의실과 회의록 작성 시스템의 비용 등이 추가로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조치 결정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심의위원들은 모든 관련학생들의 출석 진술과 질의응답을 통해 심도있는 논의를 하게 된다. 따라서, 2시간 이내에 종료되는 회의는 거의 없다. 위의 기준표에 따르면 결국 1건의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최소한 150만원이 되는 것이다. 만약, A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연간 100건의 학교폭력 사안을 처리한다면 기본적으로 1억 5천만원의 예산을 편성해야 할 것이다. A교육지원청은 이러한 방식으로 예산을 산출하여 예산 편성안을 작성하고 제출하게되며, 지방의회의 예결산 심의를 통과하면 예산이 편성되고 이를 활용하여 위원회를 운영하게 될 것이다.


법정 위원회는 이러한 방식으로 다양한 규모와 형태로 운영된다. 법률과 정부조직법에 따라 특별하게 편성되는 위원회는 행정부처와 마찬가지로 장차관급 조직 되기도 하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처럼 기존의 단위조직(여기서는 교육지원청)을 통해 운영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공무원의 삶에 관련된 법정 위원회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으며, 공무원은 각각의 업무에 따라  많은 위원회를 운영하게 된다




수 많은 위원회, 협의회 - 중요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합리적 절차


장학사로 일을 하다보면, ~위원회 또는 ~협의회 등의 이름으로 수 많은 회의를 기획하고 운영하게 된다. 가끔은, 이 정도 일은 장학사의 전문적인 역량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차원에서 장학사에게 결정권한을 준다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필요로 하는 업무일수록 한 명의 전문적인 역량에 근거한 판단보다는 다수의 전문가들이 함께 고민하여 판단하는 방법이 상대적으로 더 옳은 더 바람직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공공 기관은 그 특성상 가능한 빈틈을 두려 하지 않는 경향, 즉 '무결성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해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했을 때를 가정하고 법률적으로 행정적으로 상식적으로 근거를 들어 답변할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과정을 한 명이 혼자서 하기 보다는, 전문적인 역량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로 구성된 회의기구를 통해서 판단을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의제기 절차를 통해서 결정사항이 변경될 가능성을 처음부터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협의 과정을 통해 결정된 사항은 안정성이 높고, 신뢰를 받으며 권위를 획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관내 학교 중 5개의 학교에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을 때는 어떤 학교를 지원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런 경우에는 심사계획을 수립하여 부서장의 결재를 받고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가 된다. 징계, 인사 등의 아주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의 경우에는 해당 사안을 결정하는 위원회의 운영에 상대적으로 더욱 신경쓸 일이 많을 것이다. 위원회와 같은 전문가 집단 회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은 민감한 사안일수록 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회의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은 합리적인 판단과 안정적인 행정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너무 많은 위원회 운영은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인 절차에 불과하며, 공공기관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비겁한 꼼수라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책임의 '외주화'를 위하여 불필요한 소모적인 절차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이 타당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판단을 위해 전문가들이 모여 협의를 하는 방법이 여전히 타당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등에 의해 학교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직원으로만 구성된 조직이 아니기 사안을 처리하기 위해 언제나 즉시 소집할 수 있는 회의가 아니다. 학교에서 결정해야 하는 일의 분야에 따라서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아닌,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된 별도의 위원회에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경우도 많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법령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사항을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기도 하다. 학업성적관리위원회, 교원인사자문위원회 등의 수 많은 전문적인 위원회를 학교에서 운영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善)이 모인다고 반드시 더 큰 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 공정성이나 타당성과 관련된 이슈가 발생하면 의사결정을 위한 위원회를 운영하게 하는 것이 공정하고 투명한 해결책으로 자연스럽게 주목받게 된다.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위원회 운영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해지면서 더 좋아지겠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것들이 오랜 기간 계속적으로 누적되다보니 결국에는 학교가 너무나도 많은 위원회를 운영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버리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교복과 관련하여 별 다른 이슈가 없던 평화롭던(?) 시절에는 학교별로 자유롭게 교복을 정하였고, 한 번 정한 교복은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업체와 다년 계약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학교에서 교복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교직원의 비리가 있었다는 이슈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례를 예방하기 위한 해결책은 교복을 선정할 때 학부모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이것이 최종적인 해결책이 되었다면 아름다웠겠지만, 학부모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도 교복을 선정할 때도 비리가 있었다는 이슈가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학교가 주관하여 매년 위원회를 통해 교복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학교에서 교사는 행정 전문가가 아니지만, 최종적으로는 결국 단위학교 내 교사 중 누군가는 교복을 선정하는 업무를 담당해야 하며, 학교는 매년 동일한 위원회를 반복적으로 운영해야만 했다.


교육청은 행정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니 이런 위원회를 운영하는 역량이 축적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업무의 양이 문제지 업무의 질이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물론 업무의 양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는 하지만). 인력과 시간·비용 등만 뒷받침이 된다면 어떻게든 운영을 할 수는 역량이 충분하다. 그런데 학교는 다르다. 학교의 교직원 중 대부분은 교사이며, 교사는 근무 시간의 대부분을 수업과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교사들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다보면 아무리 중요한 의사결정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 운영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학교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 추진되고 있는 정책이 학교 내 위원회 통폐합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 개정 등의 방법으로 위원회 운영의 주체가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변경되기도 한다. 


과거(2020.3.1.이전)에 학교폭력을 각 학교에서 구성하여 운영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처리했을 때, 행정소송이나 행정심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결정사항이 번복되는 사례의 대부분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절차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경우였다. 조치결정 수준이 사안의 내용에 비하여 과하거나 경하기 때문에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보다는, 행정적인 절차에 하자가 있기 때문에 결정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법률적 판단이 많았다. 학교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 현장의 황폐화를 막고 법률적 절차에 취약한 학교를 위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교육지원청에 설치하고 학교의 부담을 덜어주게 된 것이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게 되면서, 학교는 부담을 덜게 되었고 많은 생활교육 담당 교사들이 교육청과 장학사들에게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법정 위원회의 교육청 이관은 모든 경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모든 위원회를 교육청으로 이관할 수도 없으며 바람직한 해결책도 아니고, 학교 안의 구성원들끼리 협의하여 결정해야 할 민감한 사안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정성보다는 즉시성이 중요한 사안도 있을 수 있다. 골치 아픈 일은 제발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는 하지만, 공무원이 수동적인 편안함에 익숙해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업무를 어떤 기관의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단위학교의 자율적 권한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교의 자율적 운영과 관련된 문제는 아주 오래된 고민거리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학교장의 권한은 더 크다. 이미 우리나라는 법률적으로 학교장이 소신있게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다른 학교와 비교하며 목소리를 키우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이 지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학교 운영을 잘 하는 학교가 있을 때, 학교를 칭찬하는 목소리 보다는 우리 학교는 왜 저 학교와 다른가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교육 당국이 학생을 학교에 배정하는 우리 나라 교육 제도에서, '학교의 역량이 동일하다'는 문장은 교육청과 학부모가 다른 느낌으로 해석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의 옆 반 담임 교사가 훌륭한 교사라는 사실이 미담으로 전해지기보다는, 왜 우리 아이 담임교사는 옆 반 담임교사와 다른가하는 민원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이런 맥락의 민원들이 모이면 교사들에게 자율적 권한을 보장해달라는 목소리보다는 통일된 지침과 매뉴얼을 달라는 목소리가 더 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매뉴얼화 하는 것은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옥죄는 악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전략적으로 세부적인 규정을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이라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례들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나을 가능성도 크다. 학교 교육, 교육 정책은 그래서 참 어려운 문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리 속 한 켠에서는 담당 업무와 관련된 어떤 회의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장학사와 회의는 아무리 멀어지고 싶어도 멀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좋은 분들이 좋은 이야기 좋은 결론을 내주시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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