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m][초단편선] 소정의 보석함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의 이야기

by 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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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케이팝 씬에선 양현석이 대표인 YG 엔터에서 소속 가수들의 신보 소식이 늦을 때 ‘양현석의 보석함’ 에 갇혀있다. 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양현석처럼 어느 기획사의 대단한 대표님은 아니지만 코너 속의 코너처럼 백패커 속의 나, 소정의 보석함에 잘 담은 소중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한 마디 챌린지


나는 내향형이지만 나보다 더 내향형인 사람과 지독히도 엮이고 싶은 앙큼한 마음이 늘 있다. 지난 해 일련의 이슈로 (…)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쩔 수 없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어쩌다가 상상 속 유니콘과 같은 셀과 옆 자리를 하게 됐다. 분명 가장 협업을 많이 하는 셀이지만 캠퍼스가 달랐고 얼굴도 자리를 옮긴 후에 이제서야 N년 만에 처음 보게 됐다. 아 이 분이 A님이구나, 이 분이 C님이구나 이제 와서 아는 체 하는 거다. 그 중 B님은 내 뒷자리였고 이전에 업무 협업을 했지만 정말 업무 이야기만 해왔다. 하지만 나의 보석 레이더에 걸린 것.



B님은 수줍음이 많았다. 수줍음 인간, B님을 놀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한 어그로, 더 나아가 우정 플러팅. ‘한 마디 챌린지’. 4인 이상이라면 말을 안 한다는 B님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부담스러울 것 같아 정말 하루에 한 마디만 했다. 9시 30분 이전에 출근하면 간신히 일찍 출근하는 B님과 독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 때 한 마디씩 거들어보는 거다.



“B님, 안녕하세요. 그간 밤 사이 평온하셨나요.”


“네 ㅎㅎ. (수줍)”


“다행이네요. 오늘의 한 마디 끝 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수줍)”



내 말 같지도 않은 챌린지를 수줍게 받아주셨다. 정말 3달 정도는 이 챌린지를 했던 것 같다. 이러면서 한 마디가, 두 마디가 되었다가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이면 “아 오늘은 한 마디 이상해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거다. 얼마나 앙큼한 행동인지…! 이런 시도가 모여, B님과 단둘이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싸! 그리고 반전. 나는 이제까지 B님이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내 멋대로 추측했습니다. 미안해요.) 업무도 야무딱지게 잘하시길래. “어린 분이 정말 대단하시네”라며 남몰래 기특해 했다. 하지만 대반전.. 나보다 인생도 연차도 선배님이셨다. 그 날 충격에 밥 먹다가 뒤로 자빠질 뻔했다.



지난 챌린지 덕에 B님과는 한 마디, 더 나아가 한 시간도 떠들고 가끔 집 방향이 같아 퇴근도 같이 한다. 가끔 사람들에게 얼마나 회사 동료들과 친한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B님의 하루 한 마디 챌린지로 으스대곤 한다. 이곳에서 이뤄낸 나의 위대한 우정 트로피다.




/마치를 아세요?


보석함은 보통 내가 찾아서 넣는 건데, 오히려 보석이 굴러 들어온 적이 있다. S님이 그랬다. 음악 스펙트럼이 넓은 나는 (한국 대중가요 한정) 이것 저것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다양하게 듣는 게 취미다. 그 중 작년에 음악 페스티벌에 다녀온 뒤로 인디 락 음악을 즐겨 듣곤 했다.



회사는 최근 작가들의 영상을 메인 홈부터 다양한 지면에서 활용하도록 구현했다. 보통 음악을 들으며 온라인 서핑을 하는 내게 아이디어스 진입시 끊기는 현상은 더욱 예민하게 거슬렸다. 이를 영상으로 제보하기 위해 적당한 음악이 필요했고 그 중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듣기에 마이너 하지 않은, 음악 좀 듣는다 정도의 노래를 골랐다. ‘윤마치’ - 초록 이라는 신곡이었다. 관련 채널에 제보 했는 데, 하루 후에 보석에게서, S님에게서 DM이 온거다.



“소정님, 윤마치를 아세요?”


“대마치??! 당연 알죠.”



그 날 고백하자면.. 1시간 동안 슬랙 DM으로 ‘윤마치’ 에 대해 회사 입사 후 최대 한 두마디 했던 S님과 떠들게 됐다. 운명의 장난처럼 음악 친구를 이 백패커 안에서 찾게 된거다. 그렇지 않아도 윤마치가 참여하는 음악 페스티벌에 가게 되어 나의 흥분 상태는 맥스가 됐다. 사실 최애 곡은 ‘항복’ 이었고, 초록은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슈 제보를 위해 적당한 음악을 찾게 됐다고. 이런 저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취향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 업무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 동료 이야기도 나누다가 결론이 났다. 오늘 점심 같이 먹어요!



나도 내가 이렇게 저돌적일 줄은 몰랐다. 옆에 있던 슬기님은 당연하다는 듯 S님이 내 취향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내 취향? 내 취향이 도대체 뭘까. 살짝 의문을 품으며 그날 첫 DM을 나누고 첫 점심을 단둘이서 바로 먹었다. S님은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적 친밀감이 쌓여서 이미 머리 속에서 친밀하다고 학습한거지… 점심을 먹고 나서는 친구비처럼 커피를 쐈다. 그 날은 S님과의 대화가 매우 재밌고 기뻐서 친구비를 지불하고 싶었다. (??)



최근에 자의적으로 떼굴떼굴 굴러오신 보석 S님. 앞으로 더 친해져야지. 룰루.




/오타쿠끼리 통한다.


올해 1분기는 멤버십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무지 바빴다. 오늘 기획하면 내일 바로 오픈해야 하는, 빠른 액션이 필요한 업무라 어쩔 수 없이 데이터도 그 속도로 필요했다. 처음에는 일회성이었지만 한 달간 단기 프로젝트 형태가 되었고 원래 요청 하던 분께 계속 문의 하다보니 J님을 계속 찾게 됐다.



얼굴은 알지만 묘하게 어색했던 사이… 그 날도 오전 내내 J님께 요청을 했고, 우리는 어쩌다가 우연히 조우했다. 슬랙에서는 나눴던 대화가 많았지만 사적으로는 대화하지 않아 어색한 눈 인사가 오갔다. 하지만 그 때! J님이 말을 걸어주었다.



“그 프로젝트는 성과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J님과 육성으로 대화하는 최초의 순간! 업무 이야기지만 반가웠다. 업무 이야기는 업무 이야기로 답변 드렸지만 나는 느꼈다. 이 대화로 친밀해졌다는 것을! 프로젝트가 마무리가 되어갈 때 쯤 우리는 슬기님과 셋이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 점심 식사를 계기로 내가 평소에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버츄얼 아이돌 그룹을 좋아한다는 취향을 알게 됐다. 대중문화 호사가(?)로써 버츄얼 그룹의 팬을 직접 만나게 돼 J님에 대한 호기심이 급상승 했다. 마치 우리가 함께 봤던 그래프처럼!



어느 날 그 그룹의 한정판 포토카드를 얻게 되었는 데 J님께 드렸더니 크게 감명 하시고 좋아하셨다. 업무 미팅 직전 시간 임에도 잊은 것 같은 화사한 미소와 행복감을 느끼니… 문득 지난 과거, 내가 좋아했던 그룹에 대한 애정 기간들이.. (일명 덕질 기간) 파라노마처럼 지나갔다. 이 마음을 타인을 통해 느낀 건 진짜 오랜만이야. 사무실에서 복도든, 화장실이든, 싱크대 앞이든 만날 때마다 버츄얼 아이돌 그룹에 대한 소식이 있다면 J님께 말을 걸었다. 행복한 J님의 얼굴을 보면 과거의 내가 보였고 나도 행복이 느껴졌다.



이번엔 둘이서 점심을 먹게 됐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가 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아이돌에 대해 이야기 했다. 각자 어떻게 좋아하는 지 그 마음을 알고 있어서 애정을 표현하면 이해가 갔다. 마침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그룹의 한 멤버를 지금 차애급으로 좋아한다고 하셔서 돌아오는 주에 굿즈를 드리기로 했다. 그걸 받고 기뻐하실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웅장해졌다.



서로가 애정 하는 것을 나누는 것. 이 시간 만으로 온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칠흑같은 회사에서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우정이라고 생각해요. 암요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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