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친구에게 주는 소설
올해로 서른둘. 김 PD는 무거운 마음으로 기상했다.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한국과 다른 기온 차로 본인이 해외 촬영을 왔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가장 만만하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직항이 없는 이 먼 나라에 촬영을 왔다. 사실 ‘만만하다’는 건 핑계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굉장한 매너리즘에 빠진 김 PD는 다음달 퇴사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정확한 퇴사일까지는 모르겠지만, 퇴사 발표를 정해둔 것으로 한 시름 놓았다. 그런 김 PD의 속내를 아는지 이 먼 나라, ‘로자비아(Rosavia)’로 차출됐다.
“피디님, 저희 촬영은 자택으로 오면 같이 밥 먹고 시작하자고 연락 왔어요.”
“그래? 그건 좀 고맙네.”
김 PD는 한국에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만 도착하는 이 섬 국가에서 살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 여성 두 명을 취재하러 왔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나라였지만 이 두 사람 덕에 관광지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민지로까지 관심을 받았다. 이 나라만의 특별한 제도 때문이다.
‘로자비아에서 합법적 동거가족이 된 40대 한국인들’
촬영은 시리즈물로, 특별한 나라에서 이주하여 살고 있는 한국인들을 그리는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로자비아에서 살고 있는 이 두 명의 주인공은 대중이 가장 궁금한 인플루언서다. 이민 전부터 다양한 타지 생활로 입소문을 타던 그들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국가에서 이민을 성공했다. 로자비아는 부부, 가족 외에 서로에게 법적인 근거가 되어 줄 수 있는 ‘동거가족’ 이라는 제도가 있는 데, 이를 유일하게 외국인이 인정 받게 됐다.
촬영팀은 시간에 맞춰 그들의 자택에 도착했다. 워낙 유명한 두 사람이라, 촬영이 확정되기 전에도 구독하여 그들의 영상을 챙겨보던 김 PD는 자택을 보자마자 익숙함을 느꼈다. 낯익은 빌라 입구가 보였다. 초인종을 눌렀더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누군가 인사했다. 소정이었다.
“헬로!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최우리가 수저만 놓으면 된다고 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많이 배고프셨죠?”
소정은 영상 속 그대로 목청이 아주 컸다. 김 PD는 두 사람이 카페에서 그저 소소하게 대화를 했을 뿐인데 시끄럽다는 이유로 쫓겨났던 브이로그 영상이 생각났다. 진짜 쫓겨날 만하네.
“어서오세요! 이리 와서 앉아요. 제가 근데 김치를 좀 태워 먹었는데, 새 김치로 바로 해 드릴 테니까 한 10분만 더 기다려줘요!”
“그냥 먼저 밥부터 퍼드리자.”
“아? 그래? 그러면 엄… 엄.. 그릇에 밥부터, 헤이, 조니! 그거 물어뜯으면 안 돼!”
정신이 없었지만 그들이 키우는 강아지 조니를 마주할 수 있었다. 로자비아는 길고양이, 들개들이 많은 편인데 그 중에서 공항부터 그들을 무섭게 쫓아오던 강아지를, 사랑으로 품었다. 조니는 사료보다 소정이 성심껏 키우는 식물을 더 많이 씹어 먹었다.
“이제 진짜 앉으시죠!”
“아, 넵. 감사합니다.”
“야, 최우리. 그냥 볶음김치 안 먹어도 되니까 그냥 앉아, 너도!”
“아, 좀만 시간 주면 할 수 있는데. 좀만 기다려줘!”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눈 앞의 광경이 김 PD에겐 믿기지 않았다. 목청이 큰 사람과 부엌에서 고집을 피우는 사람. 이 두 사람이 외지에, 본인 이름으로 된 자택 아래에서 들개였던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니. 괜히 몇백만 유튜버들이 아니네. 그래, 이건 찍어야 한다. 아침까지도 어깨에 쌓였던 매너리즘이 사라지고 어떻게든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을까라는, 직업적 사명에 김 PD는 오랜만에 눈을 떴다.
덕분에 아침 든든하게 잘 먹었습니다. 다큐멘터리 형태라 자연스럽게 거실 소파 위에서, 아, 네, 조니랑 함께 편안하게 앉아서 제 질문에 자유롭게 답변해주시면 됩니다. 먼저 카운팅 하면, 자기소개 해주시겠어요? 유튜브 영상에서처럼요. 이 컷만 세 번 정도 갈게요.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저는 최 우리..
-안녕하세요, 전 소정.. 아니, 우리 각자 자기소개 말고 영상 처음 자기소개 해야 되잖아.
-아, 너가 그냥 인사하길래 그대로 했지.
하하, 평탄하진 않네요. 이대로 컷 딸게요. 이제 바로 본격적인 질문 드릴게요. 편하게 대답해주세요. 로자비아에서 최초 한국인 동거가족이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덕분에 로자비아로 여행하거나 이민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이에 대한 영향력도 실감하시나요?
-네, 실감해요.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지인들도 DM으로 문의하더라고요. 뭐 절반은 쌩깠어요.
-야, 방송인데 쌩깠다고 말하니. 얘 말은 편집해주세요. 네, 실감합니다. 저희도 당시 신청했을 때는 ‘설마?’라는 생각으로 법적 승인을 기다렸는데 ‘진짜 이게 되네?’가 되더라고요. 그게 가장 신기했어요. 하지만 절대 쉽게 이뤄진 건 아니니. 이민을 꿈꾸신다면 꼭 고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네,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태초로 돌아올게요. 처음 타지에 살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서도 말씀해주시긴 했지만, 방송을 보고 계시는 시청자분께도 다시 한번 설명해줄 수 있을지요.
-원래 얘가 먼저 외국 생활을 해보긴 했어요. 먼저 졸업해서 취업 전에 해외 인턴 프로그램을 다녀왔거든요. 다녀온 애가 우연히 방황하고 있는 저에게 말하더라구요. 해외 가면 나보다 더 잘 살 것 같다고. 그때는 제 상황을 보고 함부로 얘기하는 것 같아서 화부터 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시발점 같네요.
-내가 뭐랬어. 된다 했지.
-이렇게 말할 것 같아서 그 때 화를 낸 것 같아요. 으휴. 그래서 저는 이후에 호주로 워홀을 갔어요. 함께 타지 생활을 시작한 건 아니고 각자 따로따로 다른 이유로 시작했어요.
두 분이 각자 타지 생활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함께 하고 있네요. 함께하게 된 계기도 알 수 있을까요?
-제가 호주에 있었고 이 친구가 갑작스러운 퇴사로 힘들어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둘 다 국내든 해외든 일이 잘 안 풀리고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였거든요. 어느 날 통화를 하다가 한국에서도 함께 하지 않았던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네, 최대한 일주일 내내 만나다가 일이 있으면 일주일에.. 다섯 번쯤? 함께 공부를 하면서 종종 노가리도 깠는데, 잘 안 풀리는 너와 내가 만나서 얼마나 인생이 안 풀리는 지 지켜보는 건 어떨까 라는 발상이 떠올라서 만났습니다.
가장 힘들 때 만나서 얼마나 힘든지 지켜보자는 결심이 인상 깊네요. 다음에 어떻게 만나셨나요?
-일단 제가 결국 한국에서 예상했던 기간 내에 이직을 실패 했구요. 바로 수중에 가진 돈 탈탈 털어서 해외로 도피하기로 태세 전환 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가 호주에서 워홀비자가 만료되어 어려웠던 때에 캐나다에서 한번 살아보자고 했어요.
-맞아요. 제가 호주에서 워홀비자에서 학생비자로 전환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인생이 제 때 풀리지 않더라고요. 이렇게 된 거 그냥 계획에 없던 옵션으로 행동해보자. 평소 제 방식이긴 한데, 그 때 가장 임팩트가 컸던 옵션이었어요.
그래서 캐나다에서 만나 두 분이 동거 유튜브를 시작했군요.
-네. 원래부터 이 친구가 같이 살면서 유튜브 하면 대박날거라고 말하긴 했어요. 저도 하고 싶긴 했는 데 사실 용기가 나지 않고 말 주변이 없어서… 둘이서 말하면 재밌는 데 막상 카메라 앞에서는 낯가리더라구요.
-그러니까요. 얘가 카메라 앞에서는 맨날 절어요.
-내가 연예인이 아니니까 그렇지!
-이렇게 가끔 제가 긁어줘야 원래 텐션이 나옵니다.
여기서도 두 분의 케미가 돋보이네요. 티격태격 하면서도 두 분이 누구보다 아끼는 게 보여요. 비결이 있을까요?
-글쎄요. 잘 싸워요. 잘 싸운다는 건 자주 싸운다는 뜻이 아니고, 싸우면 그날 끝장을 보고 갈 때까지 가서 결국 푸는 것 같아요. 이것이 잘 싸우는 거죠.
-잘 싸운다고 생각하는 거 보니까 제가 봐주는 건지 모르나봐요.
-뭐래.
이런 티키타카가 영상에 잘 담아져서 구독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제작했던 콘텐츠 중에 각자 마음에 들었던 영상이 있을까요? 조회수가 적어도 좋아요.
-최근 영상이긴 한데 조니 시야에서 본 저희 브이로그가 인상 깊어요. 얼마나 하루 종일 싸우는지 모르겠네요. 조니도 질릴 정도로 싸우는 데, 댓글들이 조니가 가출할 것 같다고 했던 게 생각나요. 획기적인 영상이면서도 반성했어요.
-그니까 나 좀 그만 긁어.
-긁을만 하니까 긁지.
-저는 한마디도 안 하는 홈메이드 쿠킹 영상을 좋아해요. 다른 영상보다 조회수 안 나온다고 얘가 욕하기는 하는데 저에게는 애정이 많아요. 저희 채널에서 한 가지 맛이 아닌 다양한 맛을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유독 쿠킹 영상에만 나타나는 구독자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을 위해서, 아니, 제 만족을 위해서라도 계속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저는 가끔 그거 보다가 자요. 드르렁.
-내 영상이 그렇게 달콤한가보지.
저도 두 분께서 말씀해주시는 영상들 모두 본 적이 있는 데 애정하시는 이유가 이해가 되네요. 영상은 항상 유쾌하게 풀어내지만 이면에는 해외 생활 혹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시면서 쉽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힘들었던 부분을 나눠주실 수 있나요?
-미혼 여성 둘이서 사니까 자꾸 결혼은 언제하냐는 댓글들이 있었어요. 할 때 되면 하겠죠. 라고 했더니 애는 언제 낳냐고 하시더라구요. 대신 낳아달라고 답글을 달았더니 사라지셨어요.
-그건 그분이 힘들었던 부분이겠다. 음, 저는 영상 편집을 하다 보면 너무 잘 만들고 싶어서 시간이 무지 오래 걸리거든요. 그 때마다 옆에서 욕하고 긁고 재촉하면서 나름 기운을 북돋워 주는 이 친구가 고마워요. 인간 스톱워치 같은 이 친구가 없었다면 여러분들이 찾아와서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렇죠. 제 덕이죠. 하지만, 이 친구 덕도 있어요. 저는 얘가 말하는 시계에 맞춰서 매번 빠르게 달려가지만 가끔은 심하게, 빠져나올 수 없을 지경까지 지치거든요. 그때마다 천천히 0부터 시작하게 도와줘요. 제가 당연하게 넘어갔던 것도 이 친구는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요. 거기서 긍정의 힘을 얻어요.
두 분의 장단점이 각각 뚜렷하게 있으면서도 채워주는 퍼즐 같네요. 이 점이 채널이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고, 두 분의 해외 생활을 한국에 계시는 구독자분들도 응원하는 이유 같아요.
-네, 가끔은 가족보다 감사해요. 가족보다 저희 걱정도 많이 해주셔서 악플도 남겨주시고.
-얘는 자꾸 뭐래. 구독자 분들에 대한 아낌 없는 사랑과 관심으로 저희도 이곳에서 최대한 힘이 되는 영상을 찍어볼 예정이예요.
두 분이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함께 하는 해외 생활을 결정하셨다고 들었어요. 우연하게도 제가 10년 전 두 분의 나이인데요. 10년 전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또는 10년 후 본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 그려지는 미래.. 전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까요?
-헉, 피디님! 그러면 아직 서른 둘 밖에 안 됐어요? 아직 충분히 젊으시다고 말하고 싶어요. 뭐 듣기로는 여기 촬영만 하시고 후반 편집은 못할 수도 있다고 귀띔해 주셨는데… 아마 일을 쉬시나봐요?
엇, 어떻게 아셨어요? 아.. 자세하게 말하기는 곤란하긴 한데, 다른 스텝들도 있고..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립니다. 저 다음달에는 퇴사한다고 말할 겁니다.
-퇴사 예정인 사람의 표정은 미묘하게 다른 직장인과 달라요. 얼굴이 그런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어쩌다 보니 맞췄네요. 음, 10년 전 나이의 피디님. 제 성격 아시겠지만 긍정적인 편이 아니라 어렵게 말씀드리면, 이 과정이 끝난다고 잘 해결되진 않아요. 고통은 다시 돌아옵니다. 하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돌아오는 고통을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 지 준비하면 되는 거예요. 고통이 다시 돌아온다고 그 사실에만 깊게 빠지지 말고요. 고통은 다시 돌아오니 더욱 든든한 샌드백이 되자. 이게 10년 전 저에게 전하고 싶은 신조네요. 피디님께도요.
-얘가 10년 전 이야기 했으니 10년 후 이야기 할게요. 저는 누구보다 하루라도 무탈하길 바랬던 사람인데요. 운명의 장난처럼 평탄하지 않았어요. 매번 사고가 터졌죠. 한 때는 이 사고들이 제 탓인 것만 같았지만, 이젠 인정하게 됐어요. 제가 무난한 하루를 보내지 않는 비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요. 10년 후에도 무탈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비범해서요. 이렇게 정신승리 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사실 제 동거인도 비범해서요. 이미 무탈은 글렀다고 볼 수 있죠.
-왜 또 내 탓이야?
두 분 싸우기 전에 마무리하겠습니다. 하하. 정말 끝까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열 살 어린 저에게 해주신 말씀, 10년 후에 저에게 해주신 응원도 잘 새겨 듣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분 지금 여기 카메라 앞에 오기까지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두 분만의 방식으로 살아가시길 응원합니다. 여기까지.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