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모임에서 제출한 소설
“연우야, 나 3반 김희태 마음을 알고 싶어.”
“3반 김희태? 어제는 5반 이우혁이라며.”
“어제 썸 깨졌어. 오늘부터 김희태야.”
“···그래?”
정말 이번엔 김희태가 맞을까?
금사빠인 소현이는 매일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살며시 소현이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익숙한 감촉과 함께 소현이의 눈이 감긴다. 그리고 마음이 읽혀진다.
‘나 진짜 이번엔 김희태든 누구든 사귀어서 축제 같이 간다. 꼭!’
소현이 눈가에 손을 떼며 혀를 내둘렀다. 얘는 진짜 사랑에 진심이구나.
내 나이 열여덞. 금사빠인 소현이 덕에 벌써 알게 되었다. 가끔 사랑은 톡 터지는 여드름처럼 빨리 지나간다는 사실을. 수업이 끝나자마자 내 자리로 달려온 소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반을 다녀와야 한다. 귀찮고,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하연우, 이 언니가 매점에서 초코 빵 쏜다.”
“빵? 그거 점심 먹고 가면 안돼?”
“엥. 빵순이가 왜 그래?”
“오늘은 아침을 많이 먹었어. 지금은 별로.”
“너 아침 먹어도 또 먹잖아.”
아, 소현아. 이 언니도 사랑 때문에 바쁘다. 곧 기다리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체했냐고 아니면 몰래 매점 이미 다녀왔냐며 보채는 소현이가 오늘따라 너무 성가시다. 그나저나 이 아이는 다음 수업까지 2분 밖에 안 남았는 데 왜 이렇게 늦게 오지? 뒷 문을 소현이 몰래 힐끔힐끔 바라봤다.
드르륵-
그리고 드디어 열렸다. 그 아이가 성큼성큼 내 옆자리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그 리듬에 맞춰 내 심장도 뛴다. 두근, 두근. 우리는 2분 안에 매점을 다녀올 수 있다고 결의를 다지는 소현이의 말소리보다 그 아이가 당기는 의자 소리가 크게 들린다. 온 신경이 그 아이로 가득 찬다.
“하연우 짝꿍 왔네. 나 간다.”
“어어, 잘 가!”
본인을 빨리 자리로 보내는 듯한 내 행동이 수상한지 소현이가 뒤를 돌아본다. 멋쩍게 웃었다. 지금 소현이가 수상하게 생각하던 말던 이미 신경을 쓸 틈이 없다. 어서 소현이를 보내고 재빠르게 다음 수업 책을 꺼냈다. 오늘 수업은 보조 교재가 필수라 미리 꼭 꺼내둬야 한다. 왜냐하면 내 짝꿍이 내가 챙겨 놓은 책을 보고 따라서 챙기니까.
늘 그렇듯 짝꿍도 내 책상 위에 놓인 교재들을 따라 준비한다. 방금까지 다른 반에서 어떤 수업을 듣고 왔는지, 오늘은 왜 하복에 가디건을 입고 왔는지, 이따가 저녁에는 야자를 할껀지, 좀 이따 점심은 누구랑 먹는지 물어 보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한데···. 매정하게 수업 종이 울린다.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똑, 똑, 똑-
그 아이가 내 책상을 두드렸다.
“어?”
그리고 내 책상에 조심스럽게 글씨를 남겼다.
‘이번 수업 문제풀이 숙제 있었어?’
글씨도 어쩜 이렇게 멋있지? 아,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말해줘야 해. 부랴부랴 필통에서 샤프를 꺼내 그 아이의 책상에 답장을 남겼다.
‘없어. 오늘 쌤이 그냥 풀어주신대.’
아씨···. 너무 딱딱하게 썼나. 모솔티가 나는 답변이라 좌절. 머리를 싸매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괜히 훑어보고 있는 데 뭔가 쿡쿡 찔렀다. 그 아이다! 그 아이가 나를 불렀다.
‘고마워.’
맙소사, 지상 최대 가장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답변을 받았다.
사랑은 사고처럼 찾아온다.
라고 금사빠 소현이가 말했다. 소현이 논리대로 사랑이 사고라면 걔는 매번 뺑소니 일거다. 그래서 흘려들었던 명언이었는데, 글쎄, 내게 그 사고가 찾아왔다. 그것도 대형 사고.
사고가 났던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썸남 혹은 남친의 마음을 알고 싶은 아이들 속에 둘러 쌓여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단짝 친구였던 소현이는 일찍이 내가 눈을 만지면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함께 성장하면서 사랑에 먼저 눈을 뜨게 된 소현이는 내 능력을 본인의 사랑 찾기에 활용했고 이 능력은 슬슬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내 자리는 유명한 사랑 해결소가 되었다.
“야, 하연우. 왜 걔가 내 카톡을 씹냐니까?”
“나는 그 당시에 마음만 파악 할 수 있는 거고, 눈을 만지지 못하면 나도 지금 당장 마음을 알지 못해.”
“순 엉터리 아냐? 너 나한테 받아먹은 초코빵 값 내놔.”
“야. 너 남친 양다리 인거 소문 파다한데 무슨 연우한테 돈을 내놓으래!”
“구소현! 너 하연우 덕에 강우준이랑 사귄다고 개나댄다?”
“뭐? 말 다했어? 너 저번부터 하연우한테 막 말할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아악! 안 놔?”
얘들아, 둘이 싸울꺼면 내 자리 말고 옥상가서 싸워줘.
오늘도 시끄러운 싸움에 진저리가 나서 책상에 엎드렸다. 물론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준다는 댓가에 받아먹은 초코빵이 수만 개지만 이런 분쟁이 있을 때마다 능력을 잃고 싶다.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이 억울하다. 나도 모르는 게 훨씬 많은데.
드르륵-
“거기 뒤에! 또 왜 싸우고 있어! 하연우 너도 포함! 셋 다 복도로 나와서 무릎 꿇고 손들어!”
“쌤! 저는 안 싸웠어요!”
“지난주도 너 자리에서 싸웠잖아. 포함이야.”
진짜 불공평하다. 저는 마음 읽어준 죄밖에 없다고요.
아직도 씩씩대는 소현이와 불평 가득한 의뢰인 친구를 따라 복도를 나섰다. 그나저나 복도에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면 진심 수치심 맥스인데. 선생님은 학생의 인권에 대해 정말 생각이 없나봐. 한숨 쉬면서 일단 무릎을 꿇었다.
“이것들. 전학생이 왔는데 부끄럽게 왜 저러는 지 모르겠네. 어휴.”
전학생이 왔다고?
선생님 옆에 멀대 같이 큰 낯선 남자애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어깨가 넓고 키가 큰 애는 아이돌 무대에서만 봤던 것 같은데···. 대박이다. 카더라로는 모델 제의도 받았다던 구소현 남친보다 키가 큰 것 같다. 얼굴이 좀 궁금한데?
“자리는 하연우 옆자리만 비어있어서 저 뒤에 앉으면 돼. 하연우는 저기 세 번째에 손들고 있는 애.”
선생님이 나를 가리키자 멀대가 드디어 뒤돌아봤다. 태어나서 한번도 운동장에서 뛰어다닐 것 같지 않은 새하얀 얼굴이 멀끔하게 정리된 흑색 머리색과 대비됐다. 내 미래보다 또렷한 콧대, 그 양 옆에 전생에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은, 우수에 찬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 보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음 속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났다. 눈이 마주치는 동안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 아이가 교실로 들어가 내 시야로 사라질 때까지 내 시선만 오랫동안 머물렀다.
“하연우, 니 짝꿍 개 잘생김. 잘해봐.”
“뭘 잘해봐. 애들 말론 싸가지 없게 인사도 안 한다던대.”
“하긴 우리 우준여보처럼 키 크고 착한 남자가 없지.”
“우웩.”
“우리 여보 보고싶다. 나 우준이네 반 좀 들렸다가 갈게. 먼저 가!”
그래. 커플은 꺼지시고요.
강우준네 교실로 달려가는 소현이의 뒷모습을 향해 몰래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덕분에 점심 시간이 끝날 때까지 여유가 있다. 반에 돌아가서 낮잠 때려야지. 오늘도 간헐적 다이어트 중인 소현이 덕에 급식을 넘겨 먹어서 배부르다.
드르륵-
아무도 없는 교실에 유일한 한 사람이 이미 낮잠을 자는 중이다. 그것도 얼마 전 퇴학한 일진의 자리였던 내 옆 자리. 충원이 나쁘지 않네. 맞아. 오랜만에 짝꿍이 생겨서 느낀 설렘일거야. 아까 그 사고는.
나의 새로운 짝꿍의 단잠을 망치지 않기 위해 조용히 한걸음씩 다가갔다.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이라 내 자리 쪽 창문의 볕이 달콤할 거다. 나도 곧 맛있게 자야지.
“헉···.”
잠든 얼굴이 이렇게까지 반짝일 수 있나. 하마터면 감탄사로 소리를 내서 그 아이의 잠을 깰 뻔했다. 양 손으로 입을 막고 세상에서 가장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유독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 아까 마저 보지 못했던 얼굴을 감상했다. 눈을 감아 보이는 곱게 내려 앉은 속눈썹 한 올 한 올 살펴보게 된다. 내가 지난 18년 동안 타인의 얼굴을 깊게 살펴본 적이 있었나? 없었지. 앞으로도 없을 거야.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얼굴에 손이 간다. 저주스러운 내 능력을 갑자기 시험해보고 싶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을까, 매우 궁금하다. 결국 손가락에 그 아이의 감긴 눈이 조심스럽게 닿았다.
‘···.’
다시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무음은 최초다. 절대 읽혀지지 않는다. 두 번째 사고 발생. 사고가 하루에 두 번 일어났다.
작가말 : 이번에는 진짜 연재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