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만지면 (2)

소설 소모임에서 제출한 소설

by 김서

이번 학교까지 다섯 번째 전학이다. 지금까지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내색 한번 안하고 나를 위로해주셨던 어머니도 이번에는 길게 다녀보라고 넌지시 권유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를 학교의 전경을 살피며 어머니의 말에 늘 그렇듯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어머님은 이제 돌아가주셔도 됩니다. 이제 곧 제가 담임인 교실 수업 시작이라 같이 들어갈게요.”

“잠깐,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네, 말씀해주시죠.”

“아니요, 잠시만···. 현아, 잠깐 엄마가 선생님이랑 이야기 해도 될까?”

“···.”


의아해하는 선생님과 난처한 어머니의 표정을 뒤로 한 채 말 없이 교무실을 나섰다. 복도는 이제 막 쉬는 시간이 시작되어 상기된 아이들로 북적였다. 교무실 앞에 서있는 낯선 인물. 딱 봐도 전학생인 나를 지나가는 애들마다 훑어본다. 매년마다 이 시선도 이젠 귀찮다.


“연우야, 좀 이따 점심 시간에 시간 있어? 나 진짜 알고 싶은 애가 있어서.”

“에헤이! 점심 시간은 안 돼.”

“또 구소현 먼저야?”

“아니, 그냥 점심 시간은 내가 귀찮아.”

“아, 연우야! 나 두쫀쿠 3개 걸게. 제발 해주라!”

“오, 두쫀쿠라고?”


한 아이를 두고 무려 네 명이 둘러싼 무리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말은 귀찮다면서 흥미롭게 나머지들을 붙들고 다닐 일이 있나. 참 신기하다. 우두커니 교무실에 서있었지만 귀가 향한다. 그리고 군중 속에 파묻힌 연우라는 애와 눈이 마주쳤다. 무심한 듯 던지는 말투에서도 해맑게 웃는 그 아이의 웃음을 보게 됐다. 귀찮음이 웃을 일인가. 잠깐 생각해봤지만 공감이 되지 않는다.


드르륵-


“어머님이랑 이야기 끝났다. 교실로 이제 가자.”

“···.”

“현아, 엄마 이제 가볼게. 선생님, 우리 현이 잘 부탁드려요.”

“네, 어머님. 현이 잘 지낼 수 있을 겁니다. 조심히 살펴가세요.”


모든 선생님들은 괜찮을 거라 대답하고 나도 당연히 괜찮다. 어머니만 늘 걱정할 뿐. 나는 그런 어머니를 걱정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늘 설명하기 싫어지고 사람들의 위로가 듣기 싫어지고···. 그렇게 감정이 멸망됐다.




“뭐 일단 들을 수 있고 대답만 안하는 것 뿐이라는 거지?”


교실로 가는 길에 넌지시 물어보는 선생님 말씀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알겠다. 선생님은 어른이라 이해할 수 있는데 애들은 너도 알다시피 말을 씹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

“···.”


새로운 교실은 생각보다 교무실에서 가까웠다. 그리고 이번 담임도 나의 상황을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다. 덜 귀찮아서 다행이다.


“이 부분은 너가 잘 알 수도 있으니. 일단 지금처럼 애들이 묻는 질문에는 고개라도 끄덕여줘.”

“···.”

“혹시 시비가 심한 애들은 나한테 따로 말해주···. 이 자식들 또 저러네!”


드르륵-

교실 안에서 목격한 무언가가 차분하던 담임을 격분하게 만든 것 같았다. 이번 학급에서도 차분하지 못한 아이들과 티격태격 하다가 다음 전학을 가게 될 시뮬레이션을 그려본다. 그래, 항상 최악이지.


“거기 뒤에! 또 왜 싸우고 있어! 하연우 너도 포함! 셋 다 복도로 나와서 무릎 꿇고 손들어!”

“쌤! 저는 안 싸웠어요!”

“지난주도 너 자리에서 싸웠잖아. 포함이야.”

‘어?’


담임의 호통으로 교실 뒷 문에서 고개를 숙이며 나온 아이들 중 한 명은 초면이 아니었다.

연우. 헤실하게 웃던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이것들. 전학생이 왔는데 부끄럽게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어휴.”

“···.”


역시 문제아였군. 시선을 거두었다. 아까 느꼈던 타인의 궁금증이 지속될 리가 없다. 나는 진짜 사람들이 싫으니까.


“자리는 하연우 옆자리만 비어있어서 저 뒤에 앉으면 돼. 하연우는 저기 세 번째에 손들고 있는 애.”

‘에?’


저 문제아 옆에 앉으라고요? 담임의 알 수 없는 선택에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연우, 그 아이를 뒤돌아봤다. 세상에서 가장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에 동그란 코와 입을 가졌다. 아까 교무실 앞에서 봤던 웃음도 동그랬던 것 같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당황하는 사이에 하연우와 눈이 마주쳤다.


“···.”


나를 골똘히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정말 동그랗다. 그 동그라미 속에 빠지기 싫다. 신경질적으로 시선을 돌려 교실로 들어갔다. 뒤통수가 뜨끈뜨끈 하다. 동그라미의 시선이 계속 닿아 있는 느낌이다.




전학 첫 날이라 식욕이 없었다. 옆 자리 하연우는 정각이 되자마자 급식소로 뛰쳐나갔다. 음식에 목숨 거는 야만함이 느껴졌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동그라미 문제아. 나는 왜 그 동그라미에 집중하는 거지? 첫 날이라 긴장해서 그런거야.


“이름이 안 현이라고 했나? 밥 같이 먹을래?”

“···.”

“뭐야. 사람 말 개무시하네.”


이어서 다른 학급 친구들이 찾아와 급식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지만 대답 대신 나는 자리에서 엎드렸다. 이후에도 아이들이 찾아와서 깨웠지만 읊조리는 비난과 함께 사라졌다. 한참 시간이 흘러 조용해지고 교실 창문에서 쏟아지는 볕과 함께 잠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드르륵-

누군가 교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굳이 깨고 싶지 않아 가만히 남은 볕을 느끼며 눈을 감고 있었다.


“헉···.”


옆에서 자리에 앉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동그라미 문제아가 돌아왔나본데? 깨는 척도 웃기고 아는 척도 귀찮고. 가만히 있으면 본인도 얌전히 있겠지. 하지만 이 선택이 안일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뭐야.’


따듯한 감촉이 감겨있는 내 눈을 어루만졌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말도 안되게 눈을 떠버렸다. 나보다 더 당황하는 하연우가 보였다.


“미안! 나는 그냥 진짜 자고 있나 확인 하려고···.”

“···.”


동그란 얼굴로 정신 없이 해명하는 하연우를 보는 데 심장박동이 주체할 수 없다.


“···.”

“많이 화났어? 아니, 나는, 진짜 궁금해서··· 어,야! 어디가!”


벌떡 일어나서 달려 나가는 나를 찾는 하연우의 음성을 뒤로 한 채 그 자리를 뛰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멈춰 있던 내 감정에, 예고 없는 침입이 들이닥쳤다.




작가 말 : 내년에도 무사히 연재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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