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될 준비

혹은 나의 변명 일지

by 소보로


부모가 될 준비는 언제 끝마칠 수 있는 걸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이란 무엇이며 과연 정량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걸까. 누군가 말한 ‘아이가 없는 때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말이 나를 세게 내리쳤다. 조금 무서워졌다고 할까. 지금의 여유로운 삶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출산과 육아다. 신혼 1년만 즐기고 새로운 가족을 준비하자던 우리의 계획은 결혼 후의 편안함과 풍족함 속에서 살짝 흐릿해졌고 어느덧 결혼 만 3년을 지나고 있다.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계속 부딪힌다. 이제는 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는 경계심.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감정이 핑퐁 공처럼 오간다.


가끔 우리 집을 둘러보면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는 따뜻함을 잃고 소파 위에 쌓여 있고, 저녁 8시 지친 몸으로 주문한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현관 한쪽에는 빈 택배 박스가 쌓여 있고, 철 지난 크리스마스 전구는 아직도 반짝인다. (와중에 전구는 매번 꼭 켠다.) 각자 혼자 살아온 시간도 짧지 않은데 생활력은 영 빵점이다. 쌓인 설거지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재앙 같은 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사는 공간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인데 약하디 약한 하나의 생명을 어떻게 잘 챙길 수 있을까.


스스로를 검열하다 보면 괜히 아쉬워질 것들도 떠오른다. 매년 한두 번 가던 해외여행도 아마 한동안은 사라지겠지. 회사 일에 지쳐 있을 때면 문득 더운 나라에 가서 마음껏 수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말을 꺼내면 누군가 무기력한 이를 대신해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우리는 그 나라로 날아간다. 아침에는 수영을 하고 낮에는 호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여행지에서 모범적인 태도는 아니다.) 밤새 맥주를 마시는 그런 삶도 한동안은 없을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도 가끔 머리를 스친다. 둘이 벌어 둘이 살기에는 모자람이 없지만 둘 중 한 명이 벌지 못하고 입은 하나 더 늘어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머릿속으로는 내가 자라면서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우리의 아이에게는 모자람 없이 혹은 그 이상 넉넉하게 해주고 싶은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어쩐지 요즘 명품을 걸친 아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만두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며 다니고 있지만 괜스레 직장인으로서 경력에 대한 고민도 있다. 물론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는 선택지도 있지만 남편의 수입이 훨씬 큰 우리 집에서는 셋 다 같이 고생하자는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태어날 아이가 과연 행복할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분명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마음고생했던 시간들도 떠오른다. 태어나지 않는다면 행복도 모르겠지만 슬픔도 모를 것이다. 무(無)의 상태라면 어떤 힘듦도 감당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무엇보다 인생의 8할을 어영부영 시간 때우며 살아온 나인데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야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죽인다 아주.


일찍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에게 육아의 행복을 물어봤다. 친구들은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는 수평선을 기준으로 적당한 높낮이의 곡선을 그리는 그래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은 수평선 아래에 있고 가끔 아주 정말 아주 높은 곳을 찍는다고 한다. 아이가 처음 말을 할 때, 아이가 처음 걸을 때와 같은 순간들. 다만 곡선이 정점을 찍는 순간 수평선 아래의 순간들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적당한 행복과 적당한 불행 사이에서 (불행이 없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살아가고 싶은 나에게는 어쩐지 상상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친구들은 힘들면서도 행복하다고 한다. 웃기면서 슬픈 감정과 비슷한 걸까. 도무지 감이 영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은 꼭 믿기로 했다. 말하는 친구의 표정이 설레 보였다. 괜스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이런 미지의 영역에 대한 궁금증은 영영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데 나는 굴 밖에 서서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아무튼 낳으려면 빨리 낳으라는데. 나의 이런 마음이 언젠가는 또 홱가닥 돌아버릴 것 같아 남기는 짧은 기록이다. 차라리 잘 알지 못했던 때라면 더 겁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도 가끔은 일종의 슬픔인 것 같다.


2025년 2월에 쓴 글


한참 고민이 많았던 봄을 지나 여름을 맞고 가을을 실컷 즐긴 후 겨울이 되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지금은 이상하게도 셋이 꾸려갈 가정이 궁금해 진다. 마음이라는 게 참 오락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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