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계속 다니는 중입니다
매주 주일 미사를 드린다. 어떤 날은 눈을 뜨는 것조차 수행에 가깝다. 이불 밖으로 몸을 빼내는 데만 한참이 걸린다. 그럴 때면 미사를 마친 뒤 먹을 점심 메뉴를 떠올리며 겨우 몸을 일으킨다. 조금 세속적인 동기지만 어쨌든 성당에는 도착한다. 아무튼 꾸준히 다닌다.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어쩌다 보니 모태신앙인 애인을 만났지만 그는 썩 신실한 신자는 아니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처럼 달력에 종교력이 찍혀 있을 때에야 아, 얘 종교가 있었지 하고 떠올리는 정도랄까. 어느 날 그에게 어떤 이유로 종교를 가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천국 가려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당도 잘 안 가면서 천국은 무슨 천국인가 싶었고 동시에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후세계 이야기에 우리는 대화를 접었다. 각자의 평화를 위해.
3년쯤 만났을 무렵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럽게 성당 결혼식을 알아봤다. 그는 무척 고마워했지만 사실 나에게도 편한 선택이었다. 결혼식이 하나의 쇼처럼 보이기보다 단정하고 클래식했으면 했고(무엇보다 나는 하객을 감동시킬 만한 이벤트를 준비할 성격이 못 된다) 종종 이런 불순한 의도를 흘리며 나의 세례 받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코로나19 시기라 교리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점심시간에 노트북 한편에 강의를 틀어주자 동료가 물었다. “갑자기 인생 2회차예요?” 괜히 들킨 사람처럼 웃었다. 신부님과의 면담을 앞두고는 주기도문과 영광송을 깜지 쓰듯 손으로 적어가며 외웠다. 당시에는 매주 성당에 나가 도장을 받아야 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도장만 찍고 집에 갈까 진지하게 고민한 날도 있었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놀랍게도 우리는 여전히 주말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향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경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주를 정리하고 숨을 고르는 시간처럼.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주말에도 출근하듯 씻고 단정히 옷을 챙겨 입고 목적지로 향한다는 것. 주말에도 나를 붙잡아주는 루틴이 있다는 것. 오늘도 빠지지 않았다는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이 남는다는 것. 나의 사소한 노력 덕분인지 설령 소망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졌잘싸’ 같은 묘한 위로가 남는다는 것.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세상을 조금 더 평화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
같은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면 눈이 마주친 모두에게 진심으로 한 주의 안녕을 빌게 된다. 그 순간 문득 깨닫는다.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의 안녕을 빌어줄 수 있구나. 그리고 저 사람들도 나의 평화를 빌어주고 있겠구나. 그 단순한 교환이 이상하게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기도에는 여전히 저부터 잘 되게 해주세요 같은 유치한 부탁이 빠지지 않고 이 기도만 잘 들어주시면 더 열심히 나오겠다는 거래도 습관처럼 따라붙는다. 강론 속 빛나는 말을 발견하고 그래 이번 주는 좀 더 선하게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월요일 아침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에서 금세 무너진다.
나는 여전히 미천한 인간답게 내 삶에 충실할 뿐이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미사는 계속될 것 같다. 꾸준히 가다보면 언젠가 딱 깨닫는 날이 오겠지.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기독교인 아내를 따라 교회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시작한 일이었지만, 진화생물학자로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지점도 있지만, 그 안에서 공동체를 만나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듣는다고 했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이번 주도 일요일 아침 알람을 맞춘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