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보로 Jan 05. 2024

01.프롤로그 또는 일기

앞으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

에디터 참 멋진 직업이다. 에디터란 단어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있다. 기자보단 감성적이고 에세이스트보단 전문적이어 보인다. 대학을 졸업한 스물 다섯 살 인턴 에디터란 직함을 달고 서울로 올라왔다. 운 좋게 신사동에 있는 잡지사에 취업을 했다. 


7월 면접을 볼 때 정장을 입고 갔다. 대기업 면접도 아니고 더군다나 매달 한 달 빠르게 살아가는 에디터 선배들 눈에는 얼마나 촌스러워 보였을까. 그래도 클래식은 진리라는 생각으로 검정 치마 정장과 검정 구두를 신고 문을 두드렸다. 편집장님은 내 글이 군더더기 없다고 했지만 그건 심심한 거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칭찬 뒤에 이런 글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용케 알아들었다. 감사히도 편집장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셨던 것 같다. 여기가 어떤 매거진을 내는 곳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잠깐 시간 줄테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건 나에게 한 번 더 주어진 기회였다.


그리고 정확히 6일 뒤 면접을 봤던 직장에 내 자리가 생겼다. 그때는 선배들이 참 무서웠다.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혼난 적도 있다. 왜 죄송하지 않을 일을 죄송하다고 하는 거냐는 거다. 선배들이 먹고 난 도시락을 내가 치워야 했다. 인턴 월급은 80만원이었는데 그마저도 3.3% 원천세를 떼었다. 첫달 월급 76만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점심을 먹고 선배들 뒷꽁무니 쫓아다니며 점심시간마다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엔 턱 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희한하게 마감 때면 막내가 선배들 점심 값을 계산했다. 바쁜 선배들을 대신해 계산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물론 청구하면 돈을 돌려줬지만 영수증을 잃어버리면 내가 밥 한끼 한 것이 됐다. 그것도 모르는 엄마가 첫 월급은 할머니 내의 사드리라고 했을 때 속으로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하루는 편집장님이 따로 호출했다. 내가 일을 잘해 인턴 기간을 줄이고 정직원으로 채용한다는 말이었다. 미친 듯이 기뻤다. 이제 내가 리드해 아이디어를 내고 한 페이지를 기획하고 포토그래퍼와 협업해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니. 그리고 정확히 세 달 후 그토록 바래왔던 직장을 그만뒀다. 배운 건 없었다.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라는 것들 뿐이었다.


회사를 그만 둔 초반엔 선배들 탓을 하기에 너무 바빴다. 적은 월급도 노동착취라며 그만 둔 이유를 떠벌리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길을 몇 년이나 겪어온 선배들처럼 인내심이 있지도 않고 글빨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지금도 만들었던 매거진 최신호를 들춰보는데 참 표현을 기깔나게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내 자리가 아니였다.


아무튼 회사를 그만두고 당장 본가로 돌아둘 순 없었다. 이모집에서 신세를 지다 자취방을 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부모님이 월세를 내주셨기 때문에 당장은 큰 돈 들어갈 일이 없었다. 그때부터 취업 준비를 다시했다. 운좋게 대기업 계열사의 매거진을 만드는 계약직으로 취직을 했고 지금은 직장을 옮겨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을 한다.


그간 느꼈다.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에디터와 기자 사이의 일을 물어본다면 내가 꼭 대답해줘야지를. 지금도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나처럼은 갈팡질팡하지 못하게 도와줘야지를. 그래서 내가 몇 년간 겪었던 회사 일들을 써보려고 한다. 꾸준히 써야할 텐데 잘 쓸 수 있을까.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찬바람이 분다 ‘알배추’의 계절이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