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주지 않아도 돼
규칙성과 대칭
장애라고 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지금은 더 편안해졌지만- 규칙과 대칭에 대한 강박이 있는 편이다. 현관의 신발이 가지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손바느질로 박음직을 할 때면 간격이 거의 재봉틀 급으로 맞도록 했다. -많이 내려놓았다-
지금은 건조기를 쓰기 때문에 빨래 건조대에 일일이 빨래를 널 일이 없지만 예전에 빨래를 널 때는 빨래들이 줄과 각이 완전하게 맞아야 했다. 친정엄마가 내 빨래 건조대를 보고 "너 강박있니?" 라고 물으신 적이 있다.
시어머니께서 방문하셨던 어느 날이다. 내가 잠시 슈퍼를 다녀온 사이에 세탁기가 세탁을 마쳤고 감사하게도 어머니께서 빨래를 다 널어주셨다. 아기의 몸을 닦는 부드러운 가제 수건이라는 것이 흔히 쓰는 직사각형이 아니다. 정사각형이라 일반적인 빨래 건조대에 널기에 사이즈가 애매하다.
어머니는 이것을 넓게 넓게 펼쳐서 건조대에 너셨다. 나의 방법은 정사각형의 귀퉁이를 딱 맞서 직사각형이 되면 그것을 오와 열을 맞춰 너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한 몸짓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머니께서 널어놓은 빨래를 하나하나 다시 접고 모양을 만들어 널었다. 편안
주차를 할 때에도 직사각형 안에 반듯하게 차가 들어가지 않으면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를 않는다. 다시 차에 올라타서 납득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반듯한 주차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꼭 주차칸 좌우 앞뒤 공간의 여백이 완벽하게 1미리의 오차도 없이 대칭으로 맞아떨어져야 하는 정도는 아니니까 강박증은 아니다.
이런 규칙성과 대칭성에 대해 예민한 편이어서인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바흐'이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슴이 콩닥거릴 때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으면 빠르게 안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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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칠 피아노 곡을 고를 때에는 당연히 내가 듣기 좋은 곡으로 고르게 마련이다. 입시준비를 할 것도 아닌데 억지로 참아가며 원하지 않는 곡을 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연주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비슷한 레퍼토리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도전한 곡은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른손 왼손을 분리해서 연습할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둘을 합치기 시작하면서 나의 신경계와 정서상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6:8 폴리리듬의 양손을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3:4는 쉬우니까 나누어 생각하면 간단했다. 문제는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를 너무 배려한다는 것이다.
-너 먼저 가
-내가 기다릴게
-아냐 내가 기다릴게, 먼저 가
기다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 어느 한 손이 한 손을 배려하고 기다려주려고 한다.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구간이 고전주의 음악에서도 중간중간 나온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엇박은 오히려 재미를 주는데 지속적인 엇박은 심적으로 굉장히 불편하다. 혼돈 속에도 규칙이 있다고 하니 6:8 폴리리듬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지만 오른손 왼손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이 불편함. 등이 간질간질해 온다.
함께 연습중인 베토벤 소나타 15번의 2악장을 대하는 편안한 마음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극복하고 싶은 마음 반, 갈아타고 싶은 마음 반이다. 내 마음은 과연 어느 쪽을 배려하게 될까?
표지그림: “Pimpernel,” design 1876. Designed by William Morris (English, 1834-1896), produced by Morris & Co., London (English, 1875-1940)